[오피니언] 총장님도, 총학생회장도, 중대신문도, 너도 나도 ‘Say 소통’

 | 충치

 

‘소통’, 이 아름다운 마법의 단어가 만든 열풍은 끝날 줄 모른다. 정치계는 물론 기업에서도 소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마법의 단어는 사람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물론 중앙대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총장님께서 학생대표자와 밥을 같이 먹고, 공연을 같이 보셨다. 게다가 술자리까지 같이 하셨다. 총학생회는 어떠한가? 카우V 총학은 페이스 북을 통해 학생들에게 사업을 홍보하고 학생들은 여기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가끔 댓글을 달기도 한다. 중대신문은 최근 인터뷰를 대폭 늘리면서 소통에 나섰다.

그런데 이때 이루어지는 소통을 곰곰이 생각해보자. 흔히 소통을 한다면서 진행하는 그 ‘특별한(?)’ 의사소통은 모두가 매일같이 하고 있다. 친구들과 부모님과 지겨울 정도로 하는 것이 바로 이 의사소통이다. 안부를 묻거나, 불편한 점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담소를 나누면서 웃고 떠드는 것. 그런데 이렇게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의사소통을 하면서 ‘나는 소통을 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대중들은 거기에 박수를 보낸다. 이상하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처럼 나타나는 소통이 단지 ‘대화하는 것’이었나? 총장님, 총학생회, 중대신문 모두 소통을 했기에 무언가 크게 달라진 게 있었는가?

기본적으로 소통은 일상적 대화를 나누는 것도, 홍보하는 것도 아니다. 소통은 태생적으로 매우 정치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으며 변화에 대한 열망을 내포하고 있다. 불편한 점을 대표자 혹은 의사결정권자에게 이야기함으로써 변화를 전제한 뒤 변화의 방향성을 논하는 것이야말로 소통의 본질이다. 최소한 지금처럼 사람들이 모여서 일상적 대화를 나누는 것이나 일방적으로 정책을 홍보하는 것은 태생적 의미가 완전히 왜곡된 형태의 소통이다. 그리고 이렇게 소통이 왜곡될 경우 그 역할은 변화와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향한다. 그저 담소나 나누고 밥 한 끼 먹으면서 ‘나 소통하고 있소.’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변화에 대한 열망을 봉쇄하는 행위일 뿐이다.

중앙대학교에서 현재 이루어지는 소통이 바로 왜곡된 형태의 소통이다. 안국신 총장은 소통을 통해 변화를 추동할 의지가 없으며 이는 이미 출범 당시부터 비권을 표방한 카우V 총학도 마찬가지이다. 총장도, 총학생회도 가끔씩 행사 공지나 하면서 ‘듣고 있다’는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소통이라는 단어로 학습권 침해와 같은 불합리한 현실마저 정당화 하려 할 뿐이다. ‘언론’이라 불리는 중대신문 역시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힘을 거세한 뒤 학우들의 일상적인 생활만을 지면에 싣는 등 왜곡된 소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왜곡된 소통은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은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불만이 있으면 소통하자’면서 정작 불만을 이야기 하면 ‘나는 충분히 들어줬다.’ 라고 하면서 끝난다. 이런 식의 결론은 불만의 목소리,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을 막는다. ‘교육권리찾기운동’의 당사자들이 안국신 총장과 소통을 했을 때 이미 왜곡된 소통의 문제점은 드러났다. 총장 면담까지 간 이후 ‘교육권리찾기운동’의 움직임은 둔화되고 보다 더 확장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대신문은 왜곡된 소통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소통을 하고자 한다면, 변화를 추동하는 목소리를 서슴없이 넣어야 한다. 어떠한 학생들에게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들었다면 거기서 멈추기보다 나타나는 문제를 짚어내고 당당히 지적하여야 한다. 단순히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소식지’의 역할이지 ‘언론’의 역할은 아니기 때문이다. 카우V 총학 역시 섣불리 소통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그 진정한 의미를 왜곡시키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 애초부터 ‘비권’이라면 진정한 의미의 소통은 불가능하다.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는 진정한 의미에서 소통을 하고자 한다면 ‘비권’이라는 수식어를 미련 없이 버려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은 정확히 소통의 의미를 이해한 뒤 변화를 억제하는 왜곡된 소통에 대해서는 서슴없이 비판을 가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중대신문, 총학생회, 총장 외에도 왜곡된 소통은 주변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현실의 불합리마저 정당화시켜버리는 왜곡된 소통을 근절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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