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나이트] 다큐가 미래다

 | 마이콜 뭐

 

캠퍼스에 스크린이 넘쳐난다. 교정의 곳곳에서 대문짝만한 학교 로고가 박힌 52인치 대형 TV들과 마주친다. ‘발전하는 중앙의 위상을 대내외 각종 매스컴을 통해 널리 알림으로써 세계 속에 웅비하는 중앙대학교의 이미지 제고에 최선을 다한다’는 홍보실에서 관리하는 화면 속 세상에는, 자체 제작 영상이 약속하는 장밋빛 미래만 가득하다. 학생식당 메뉴와 오늘의 주요 뉴스는 있어도, 현재 진행 중인 우리 주변의 갈등은 철저하게 감춰진다. ‘학교 발전 이데올로기’라는 유령은 성공적으로 대형 TV에 빙의했다. 오늘날엔 영상이 바로 인민의 아편이다.

주말마다 매진되는 멀티플렉스의 블록버스터들, 웹하드에서 다운로드 받은 ‘최신영화.avi’, 유튜브에서 클릭 한 번에 재생되는 고화질의 뮤직 비디오. 주말 예능 챙겨 볼 시간도 없는데, 세상의 모순엔 언제 귀 기울이나. 우리가 수없이 많은 스크린으로 파편화되는 동안, 골방에 누워 노트북 속에 매몰되어 있는 동안, 학교에서, 평택에서, 용산에서, 제주에서, 참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부끄러움을 가르쳐드립니다

 

지난 5월 25일 새내기 교양학교에서는 <사람이 미래다?>(권혜미, 조예환 공동 연출)를 상영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2008년 두산 재단이 중앙대학교를 인수한 후 벌어진 일련의 강압적인 구조조정 과정과, 그 부당함에 투쟁한 학생들이 어떤 징계로 ‘보답’ 받는지를 여실히 묘사한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허울 좋은 광고 카피와 달리, 기업화된 학교는 저항하는 주체를 철두철미하게 분쇄한다. 교내에서 상벌위원회는 학생에게 퇴학과 무기정학 등의 징계를 결정하고, 교외에서 기업은 학생을 사찰하고 고소한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가 학생들을 지배하고, 침묵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협박이 공공연히 자행된다.

“투쟁하는 학생들에 대한 미안함과 부채감에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었어요.” 권혜미 감독이 말했다. 우리는 부끄러워야 한다. 노트북으로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보며 주인공 에다드 스타크의 죽음에는 눈물을 흘리면서, 22명의 쌍용 자동차 희생자들의 죽음에는 무관심했다. 픽션 속 칠왕국의 통치권을 둘러싼 거대한 전쟁에 몰두하느라, 평택의 쌍용 자동차 공장에서 벌어진 ‘당신과 나의 전쟁’을 잊고 있었다. 가정과 일터를 지키려고 나온 노동자들은 94일을 굶었고, 전기와 가스, 물이 끊긴 공장에서 77일을 농성했다. 닿으면 살이 녹는 최루액이 헬기에서 투하되고, 크레인에 컨테이너를 매달은 공성 무기가 동원됐다. 볼트와 너트가 새총으로 쏘아져 전장에 빗발치는데, 우리는 드라마 속 전쟁 Scene의 스케일과 리얼함을 말하고 있었다.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대한문의 분향소는 시시각각 철거 위기를 맞는다. 매일 조문객보다 많은 전경들이 분향소를 방문한다. 부끄러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골방에서 나와 우리의 시네마 테크로

 

매주 화요일마다 시대의 상처들을 관통하려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 한다.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고 토론하려 한다. 얼마나 더 부끄러워질까. 첫 시간 6월 5일, 우리는 아트센터 지하 강의실에 모여 함께 용산에 다녀왔다. 그 곳에서 2009년의 화재와 그 이후 철거민에게 벌어진 폭력을 목도했다. “다큐멘터리를 찍다보면 사회의 불합리한 면을 누구보다 깊이 접하게 됩니다. 찍는 내내 얼굴이 검었는데, 혼자 속앓이를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이걸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하는데.” <마이 스윗 홈 – 국가는 폭력이다>의 상영 후 김청승 감독이 말했다. 다음 주 6월 12일엔 바삐 제주도에 가려고 한다. 강정 마을과 해군기지, 구럼비 바위에 대해 8명의 감독들에게 들을 이야기가 있다. 우리의 체념이 불러온 작은 마을의 비극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볼 계획이다. 이후의 여행일정은 함께 결정하고 싶다. 상처받은 삶이 있고, 배워야 할 앎이 있다면, 어디라도 좋다. 숱한 스크린 중 하나를 점거해 우리의 창, 우리의 시네마테크로 삼는다. 그 곳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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