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읽기] 독일에서 만난 ‘상상하는 젊음’

 | 최동민

 

 

“FC 바이에른이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승리했습니다!”

스포츠신문의 머리기사나 라디오 뉴스에나 어울릴 법한 오프닝 멘트로 이 날 <하이델베르크 문화이론 강연>이 시작됐다. <하이델베르크 문화이론 강연>은 특수한 문화적•미학적 현상을 문학, 음악, 역사학 등의 다양한 방향에서 접근해 분석하는 강연회로서, 이번 학기에는 “멜랑콜리”가 주제로 선정된 바 있다. 평일 저녁 7시 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대강당(Aula)은 백 명이 넘는 청중들로 가득 차 있어서 다소간 여유 있게 앉아서 강의를 들으려 했던 내 기대는 허망하게 깨어지고 말았다. 행사의 성격에 당최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인사말로 강연을 시작한 이는 이 행사의 주관자이자 독문과 명예교수인 보르히마이어 교수다. 그는 18-20세기 문학 및 음악 비평의 대가로 한국에도 얼마간 알려진 바 있다. 엄격한 학자의 대가적 풍모를 기대한 나로서는 그의 소탈하고 대중적인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참 재미난 양반이구만.’하고 혼자 중얼대는데, 강연은 시작되고 있었다.

 

“어, 저 사람들이 학생인가?!”

 

보르히마이어 교수가 이 날의 강연자인 함부르크대학의 그라이너 교수를 소개하는 중에야 나는 황망함을 수습하고 주위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근데 좀 이상하다. 백여 명의 청중들 중에 백발이 눈에 하나 둘 띄기에 감히 수를 세어보니 나를 포함한 젊은 학생의 수를 세는 것이 빠를 듯하다. 청중의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장년층이었던 것이다. 보르히마이어 교수가 대중들에게 친근한 축구 이야기로 행사를 시작한 것은 아마 이 때문이었으리라! 놀라움도 잠시 이내 ‘뭐..이 행사는 원래 대중강연인가 보구나.’라고 넘겨짚고 강의에 집중하려는데 그 수준이 장난이 아니다. 강연은 세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에 나타난 멜랑콜리에 대한 논의로 시작되어 이내 독일문학사에서의 <햄릿>의 수용으로 넘어가더니, 햄릿이 독일에서 멜랑콜리적 인물로 오독되어 수용되는 과정과 이유가 상세히 설명되었다. 요컨대 괴테 등의 18-19세기 독일 지식인들이 17세기 초의 햄릿에게서 ‘고독하고 고립된 지식인상’, 즉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를 햄릿에 투사했다는 것이었다. 햄릿을 멜랑콜리적 인물의 예로 보고 행사를 기획한 보르히마이어 교수도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더 놀라운 것은 대중의 수준과 반응이었다. 강연장을 찾은 많은 백발의 장년들은 서로 의견을 주고받기도 하고 메모에 열중하기도 하며 자유롭게 강연자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자유로우면서도 이성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그들의 모습은 한국의 대학 강의실에서 좀처럼 보지 못한 그것이었다. 갑자기 ‘가스통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떠올라 괜시리 씁쓸해졌다.

 

“저는 청강생입니다!”

 

코스워크가 필수인 영미, 한국 대학과 달리 독일 대학에서 박사과정생은 수업을 수강할 의무가 없다. 따라서 필요한 수업이 있으면 자유롭게 수업에 들어가 청강생으로 등록하면 된다. 이처럼 청강생들이 섞여있다 보니 수업시간에 과제 및 발표자를 정하기 위해 종종 스스로 정체를 밝혀야 할 때도 있다. 이 때면 청강생들은 “저는 청강생입니다!”라고 밝히게 되는데, 이 청강생들 중에 —특히 철학과 수업에는— 나이가 많은 분들이 종종 눈에 띈다.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바로 이런 분들이 그 대형강의실에서 보았던 내공 ‘백 갑자’의 노인들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하이델베르크 대학 도서관에도 저마다의 삶의 역사를 간직한 노인들이 ‘열공’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일천만 원의 후원금을 지불해야 도서관 사용이 가능한 한국의 사립대학과 달리, 이곳은 소정의 수수료만 지불하면 일반인들도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도서를 대출할 수 있다. 때문에 대학의 도서관에는 학구열에 불타는 장년의 청년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내 하나 같이 삼성 SSAT 시험 책과 토익 책을 앞에 펴고 쓴 물 마신 얼굴로 앉아 조로해버린 한국의 청년을 떠올린다. “아참, 독일 노인들, 그래도 박사과정생인 나보다 더 열심히 하시면…”

 

“대학과 사회 그리고 대학생”

 

독일 대학에서 목격한 몇몇 장면을 반추하며 자연스레 한국 대학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대학은 어떤 의미이며, 우리 대학생들은 대학 및 사회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을까. 시민들에게 개방되어서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양질의 지식에 접근할 길이 열린 공공적 성격의 독일 대학과 달리, 판매자-소비자 관계 하에 사적•폐쇄적으로 ‘지식상품’을 거래하는 한국의 대학은 시장을 닮았다. 고액의 ‘교육상품’을 구입할 자본이 없는 국민들은 근본적으로 고등교육으로부터 배제되는 시스템인 셈이다. 때문에 이러한 한국의 기형적 고등교육 시스템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우리 대학생들이다. 고액의 등록금을 감당하느라 알바와 대출금에 시달리고, 온당한 대학의 주인으로서가 아닌 수동적 ‘소비자’로서의 위치를 강요받으며, 시장논리라는 칼춤에 따라 학과가 폐과되고 강좌가 폐강됨으로써 수시로 학습권까지 침해받는 ‘우리’말이다. 우리 대학생들이 스스로를 위해서 대학의 공공성에 대한 목소리를 키워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대학교육의 공공성 강화야말로 바로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일이니 말이다. 대학의 공공적 성격의 강화가 우리 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이야기 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대학의 공공성 강화는 국민일반의 교육받을 권리를 강화하고, 개인을 금전적 부담으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에 크게 기여하며, 둘째로 학문에 대한 시장의 부당한 간섭을 최소화시킴으로써 학문의 자율성을 증대시킨다. 셋째로 이는 지식의 ‘상아탑’적 폐쇄성을 붕괴시키고 지식의 사회적 공공성을 강화시킴으로써, 사회적 합리성과 대중의 전반적인 문화수준을 고양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나는 대학의 대강당에서 미학강연을 듣고 강의실에서 읽고 토론하며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는 독일 노인들의 모습에서 ‘상상하는 젊음’의 모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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