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외] 기업은 대학을 어떻게 ‘접수’했나 (2009. 11)

이 글은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58호에 실린 글로, 필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망경에도 참고용으로 업로드합니다. 58호 발간 당시 학교 측이 이 글을 문제 삼아서 배포된 책을 전량 강제수거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두산 재단이 들어온 지 1년 6개월 만에 쓰여 당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글입니다.

| 최철웅(문화연구학과 박사과정)

 

대학의 주인이 바뀌다

 

2009년 한해 세간의 입방아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대학이 중앙대가 아닐까 싶다. 상반기엔 장관직을 맡은 유인촌 교수와 박범훈 총장의 정치적 행보가 도마에 오르더니, 하반기엔 두산그룹이 재단으로 들어오면서 강한 개혁과 구조조정을 시행해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얼마 전 단과대 이전 및 정원조정 등 민감한 사안을 담은 구조조정안이 모 일간지에 보도되고 나서는 사실무근이라는 학교 측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외부 컨설팅 업체까지 동원하여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 정책이 향후 대학 개혁의 선례가 될 것이란 전망에서 비단 학내구성원 뿐만 아니라 외부인들에게도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중앙대에 대외적 관심이 쏠리는 데에는 신임 박용성 이사장의 파격적인 행보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신임 이사장은 취임 후 각종 인터뷰와 지면을 통해 대학운영에 관한 남다른 철학을 공공연히 천명해 왔다. 박 이사장에 따르면 대학의 주인은 학교법인과 이사회이고, 교수는 직원이며, 학생은 교육서비스의 대상이다. 고로 학교운영에 관한 한 일체의 의사결정권은 재단에게 있으며, 학내구성원의 과도한 권리주장은 대학발전의 걸림돌이 될 뿐이다. 좋은 인재란 기업에서 써먹을 수 있도록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재이며, 대학에도 기업식 경영 원리를 도입해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이사장의 철학에 대해 학내구성원 뿐만 아니라 외부 인사들마저 대학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오히려 신임 이사장이 대학의 고유한 전통과 정체성을 무시하고 과도한 주인의식을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의 주인의식이 더 과도한 지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으리라. 사실상 재단은 이미 주인 행세를 하고 있지 않은가. 총장 임명제로의 전환과 회계를 필수교양으로 못 박은 커리큘럼의 전환, 교수 및 교직원 연봉제 도입 등 지난 몇 달간 재단이 원하는 개혁정책은 모두 실현되었다. 일부 구성원들의 비판이 있긴 했지만, 변화의 대세를 거스르기엔 미풍에 불과했다.

내가 학부를 다녔던 10년 전 즈음이라면 “대학의 주인은 재단이다”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학생들이 벌 떼처럼 들고 일어났을 거다. 학문공동체의 주인이 교수와 학생이라는 것은 제도적 규정과 무관한 불가침의 이념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엔 ‘재단퇴진’ 집회가 예사로 이루어졌으며, 등록금 협상 때마다 총장실을 점거하는 것은 연례행사였다. 요즘처럼 총장실에 조용히 걸어 들어가 스티커 좀 붙였다고 해서 학교가 발칵 뒤집혀 징계 운운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다른 학생들은 물론 교수들이 가만있지 않을 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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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제와 생각하면 학교가 무슨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일체의 파트너십도 고려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처음 한 발을 내딛기가 어려운 법이다. 제도적으로 불평등한 입장인 상황에서 한번 학교 측에 주도권을 내어주면 이후로는 학문공동체의 권리를 지키기 어려워지는 법이다. 재단이 그동안은 공짜 야구구경 시켜주고, 햄버거 값도 좀 깎아주고 하며 소소한 것부터 하나씩하나씩 개혁을 진행해왔지만, 웃고 즐기는 사이에 어느덧 “대학 역사상 가장 큰 실험”이 될 것이라며 강한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있다. 게다가 극심해진 경쟁체제 하에서 학문공동체의 구성원들도 더 이상은 주인임을 강하게 주장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돈 있는 재단이 들어왔으니 떡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심사일 터다. 그러니 이사장의 주인 운운은 불안감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 일종의 승리선언이자 단호한 엄포였던 셈이다.

 

대학의 기업화와 분열통치

 

새로운 재단이 들어와 대학을 기업처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고, 별다른 논란거리도 아니다. 신임 이사장은 “운영 면에서는 대학도 기업과 다를 것이 없다”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예전 같으면 대학에 천박한 기업논리가 들어온다고 비분강개하는 목소리가 드높았겠지만, 바야흐로 대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 CEO인 시대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도덕적 비판은 잠시 접어두고 올 한 해 보고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식 경영의 실체가 무엇인지나 간단히 되짚어보고자 한다.

1990년대 대기업에서 유행한 ‘신경영전략’이라는 것이 있다. 경영학 공부하는 이들에겐 익숙한 용어가 아닐까 싶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진행된 거센 민주화의 바람과 전투적인 노조파업에 직면해 대기업들은 노조의 힘과 임금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새로운 경영전략을 도입하기 시작한다. 신경영전략은 신인사정책, 유연한 노동, 노조에 대한 전략, 기업문화라는 4가지 요소를 지니는데, 각각의 요소가 학내에서 진행된 개혁의 흐름과도 유사해 흥미롭다. 먼저 기업 내에 도입된 신경영전략의 구체적 사례들을 살펴보면 첫째, 자본가들은 전통적인 호봉체제 대신 성과급 체제와 직무평가제를 도입했다. 많은 대기업에서 이때부터 인사과가 설치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둘째, 노동 유연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자동화를 도입하고, 하청제도를 확대 발전시켰다. 셋째, 노조를 파괴하기보다 포섭하는 전략으로 돌아섰다. 넷째, 소위 ‘기업문화운동’을 벌여 회사 구성원들에게 회사가 일종의 운명공동체라는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에 따라 직장 내 교육프로그램, 소모임활동, 노래경연대회, 단체수련회 등이 활성화되었다. 이러한 요소들이 구체적으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기업마다 편차는 있었겠지만, 큰 흐름과 목적은 대체로 일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경영전략이 도입된 이유는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한편, 무엇보다 강성해진 노동자 계급을 길들이고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한편으로 권위주의적이고 위계적인 노사관계를 합리적이고 협력적인 기업문화로 대체하는 시도이기도 했는데, 시대의 변화와 함께 좀 더 세련되고 교묘한 통치 기법이 도입되었다고 보면 되겠다.

두산 재단이 들어와 가장 먼저 주력한 것이 바로 새로운 인사정책이었다. 무엇보다 국내 대학 최초로 교수와 교직원에 대해 전면적인 연봉제를 실시했다. 그에 따라 교직원과 교수들은 매년 재단이 정한 평가기준에 의거 연봉을 조정 받고, 성과에 따라 차별적인 인센티브를 받게 되었다. ‘저비용 고효율’을 앞세운 인력조정의 또 다른 시도는 부서통폐합과 명예퇴직 권고로 나타났다(구체적인 내용은 본지에 실린 ‘행정직제개편-리얼’을 참조하라.) 기사에 따르면 이미 행정직원보다 대학원생 행정조교와 교육조교의 수가 더 많다고 하는데, 비정규직 하청고용의 변형된 형태라 할 수 있다. 한편 새로운 재단은 들어오자마자 일종의 ‘기업문화운동’처럼 두산그룹과 중앙대 학내구성원 사이에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려 노력해왔다. 야구장 입장이나 햄버거 할인 등 두산 그룹 계열사가 제공하는 소소한 혜택들은 금액을 떠나 그 마음만으로도 학생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두산=중앙대’라는 공식이 누구에게나 자랑스럽지만은 않을 테지만, ‘가족주의’처럼 깨기 힘든 이데올로기도 없는 법이다. 특히 공식 커뮤니티 ‘중앙人’에서 엿보이는 과도한 가족주의는 나 같은 사람들로 하여금 손발이 오글거리게 하지만, 이를 비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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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로우뉴스

 

대학을 기업식으로 운영하고 체질개선시키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는 그 자체 논쟁의 대상이다. 대학도 막대한 예산과 인력으로 운영되는 하나의 조직인 만큼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있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조직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것보다야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편이 그 안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위로부터 기업식 마인드가 이식되면서 내부구성원들이 각자의 이해관계를 극대화하는 데에만 몰두하게 되었으며, 서로를 학문공동체의 공동구성원이라기보다 마치 몫을 다투는 이해관계의 대상처럼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이나 연봉제보다 더욱 무서운 것이 이런 식의 이데올로기적 주체화 과정이다.

나는 교직원 구조조정에 대해 『중앙문화』의 원고를 사전참조하기 전까지 학내에서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다. 심지어 『중대신문』에서도 그와 관련한 기사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학생들은 교직원들이 불친절하고 태만하다는 불평만 늘어놓지, 그들의 노동조건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관심 갖지 않는다. 외부의 비정규직 문제엔 관심이 많은 교수와 학생들이 정작 학내에서 자행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선 철저하게 침묵으로 일관한다. 교수연봉제 도입과 관련해 교협과 본부 간에 적잖은 마찰이 있었다지만, 그 역시 철저하게 교수들만의 문제였다. 오히려 어떤 학생들은 그들의 스승이 철밥통을 지키려 한다며 더욱 성화였다. 교수들도 더 이상 학생들이 부당한 징계를 요구받건, 원치 않는 직업훈련을 강요당하건 함께 싸워주지 않는다. 각자의 일은 각자가, 각자의 몫은 각자에게. 기업식 경영이 강고한 노동자 조직을 내부로부터 분열시키는 데 한몫했다는 학자들의 지적이 과장이 아니었던 셈이다.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포퓰리즘

 

기업식 경영기법은 관료제와 달리 형식적인 합리성보다 효율성을 중시하며, 한국의 대기업들이 대개 그렇듯이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의사소통보다는 기업 오너의 의사결정을 중심으로 한 상명하달식의 의사소통 체계를 더욱 선호한다. 이미 재단 측은 구조조정이 원만하게 합의되지 않을 경우 ‘Top-Down’식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사실상 가족주의를 표방하는 ‘기업문화’의 필연적 귀결이라 할 수 있는데, 가족 내에서는 결국 막대한 권한을 독점한 가부장이 가족의 운명을 결정한다. 거기에 신임 이사장의 개인적 카리스마까지 더해져 이사장을 단순한 오너가 아닌 집안 내 최고어르신으로 대접하려는 경향이 학내 곳곳에서 농후하게 감지된다.

게다가 어려운 시대일수록 카리스마적 지도자에게 정신적으로 귀속되고자 하는 유약한 정서가 팽배하곤 하는데, ‘중앙人’ 커뮤니티를 관찰하면 일부 학생들의 ‘이사장님에 대한 충성’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사장의 파격적인 발언에 대해 누가 비판이라도 할 손 치면 호위무사처럼 달려들어 대리전을 펼치곤 하는 것이다. 대리전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공유하는 신념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같은 입장에서 논쟁할 수 있다. 문제는 비판에 대한 반박이 내용에 대한 것이 아니라 태도를 겨냥해서, 즉 ‘학교의 어르신인 이사장님에 대해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느냐’는 식으로 전개되곤 한다는 점이다. 이런 식의 태도는 논쟁이라기보다 병정놀이에 가까운 것으로, 종속된 정신성의 표현일 뿐이다. 그런데, 그들의 충성심이 존경심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 모종의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느끼는 것은 나뿐일까. 행여 지도자가 심기가 상해 내게 베풀어줄 자비를 거두어가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말이다.

학내 여론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라 할 수 있는 공식 커뮤니티 ‘중앙人’의 기능과 위상에 대해 좀 더 면밀히 살펴보도록 하자. ‘중앙人’ 커뮤니티의 활성화는 새로운 재단이 들어온 이후 진행된 큰 변화 중의 하나이다. 대학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이란 게 대학순위에 열 올리는 ‘훌리건’들의 놀이터로나 활용되는 것이 보통인데, ‘중앙人’의 자유게시판은 언젠가부터 암묵적으로 공식적인 학내 의사소통 기구로 기능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단의 지시에 의거 자유게시판에 올라오는 불만과 건의 사항에 대해 교직원들이 즉각 피드백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교직원은 전화를 불친절하게 받은 불만사항이 ‘중앙人’에 올라와 상임이사에게 불려가 호통을 들었다고 한다. 교직원들은 압박감으로 인해 하루에도 몇 번씩 게시판을 모니터링 한다고 하니, 학생들에겐 그야말로 최고의 민원창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두산그룹으로부터 급파된 의욕적인 홍보실장은 커뮤니티를 직접 관리하면서 학생들과도 허심탄회한 소통을 마다않고 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학교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과 제안이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참여의식이 더욱 고취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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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정한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중앙人’의 여론형성 기능은 매우 위험한 형태로 작동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인터넷 공론장의 특성과 맞물려 포퓰리즘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공론장의 특징은 ‘1댓글 1표주의’라 할 수 있다. 게시판에서는 총학이건, 교수건, 교직원이건, 알바건 간에 모두 동등한 한 표의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글쓴이의 위상이건 논조의 타당성이건 상관없이, 몇몇이 작정하고 댓글 수와 여론을 조작하면 별다른 논쟁 없이도 특정여론을 제압할 수 있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가족주의적 정서와 맞물려 ‘중앙人’에서 학교에 대한 비판적 논지를 전개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로 인해 속 터져 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여럿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학교 측은 ‘중앙人’의 여론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여론으로 간주한다. 실제로 교수평가제와 연봉제 도입 과정에서 재단 측이 ‘중앙人’의 여론을 주요한 근거로 제시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한편으로 학생들은 교육서비스의 대상일 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원한다’는 말처럼 교수나 교직원들을 제압하기에 유용한 이데올로기적 수단도 없는 것이다.

 

중앙커뮤니티와 여론 통제

 

‘중앙人’의 여론이 지나치게 ‘훌리건’적인 경향이 농후하자 처음부터 알바가 있다느니 교직원이 학생인 척 글을 쓴다느니 하는 루머가 자주 돌았다. 주변에서 만나보면 그런 생각을 하는 학생들이 별로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중앙人’에만 들어가 보면 대학순위에 목매달고, 학교발전을 외치는 목소리들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다들 온라인상에서만 숨겼던 본심을 드러내는 것인지, 그런 학생들만 ‘중앙人’을 이용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교직원과 학생들의 아이디를 분리하고 접속IP주소를 표시하는 등의 간단한 조치만으로도 이용실태를 분석할 수 있지만, 이런 요구에 대해 학교 측은 모호한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다. 홍보실장이 아쉬움을 토로할 정도로, ‘중앙人’에 접속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학생들은 사실상 극소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여론이 대세인 것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학교 측이 ‘그들’의 의견만을 여론으로 간주하고, 입맛에 맞지 않는 여론은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졸업생이 ‘중앙人’이 교직원들에 의해 조작되고 있다는 ‘루머’(그런데 이미 모두가 루머라고 알고 있는 사실도 루머일까)를 퍼뜨렸다는 이유로 접속이 차단되었다. 커뮤니티의 관리자인 홍보실장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고 한다. 일부에선 학생들의 자정능력에 맡겼어야 하며, 해당게시물의 삭제도 아닌 접속차단은 지나친 처사라고 반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미 홍보실에 의한 글 삭제가 예사로 이루어져다들 무던한지 몰라도(지난 호 『중앙문화』에 실린 ‘비방불가 커뮤니티’의 사례들을 보라), 이는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처사이다. 강제 접속차단은 일종의 사전검열에 해당한다. 사전검열이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극악한 제도인 이유는 그것이 우리 상상력의 한계 자체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사전검열은 어떤 표현물이 세상에 나타나기도 전에 싹을 잘라버리며, 그로 인해 우리는 그것이 나쁜 것이지만 세상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강제차단의 구체적인 지침이 없는 상태에서 홍보실장이 자의적으로 판단을 내렸다는 것도 문제이다. 원칙 없는 검열은 결국 대중들로 하여금 자기검열을 내면화하게 만든다. 이제 우리는 ‘중앙人’에 글을 올릴 때마다 수험생이 출제자 의도 파악하듯 홍보실장의 머릿속을 가늠해보아야만 한다. ‘교직원 조작설’을 퍼트렸다고 접속이 차단된 졸업생은 그가 당한 조처를 통해 역설적으로 그것이 진실임을 입증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홍보실장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매뉴얼을 제작중이라고 하지만, 일단 처벌하고 나서 법을 제정하는 독재정권의 관행과 무엇이 다를까(나는 홍보실장의 조치가 독재정권의 관행과 같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일종의 수사적 표현이다. 그런데 과연 홍보실장도 그렇게 생각해 줄까….)

매뉴얼이 있고 없고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다. 모든 규정은 실제적인 적용 과정에서 해석을 거친다. 대부분의 게시판이 욕설이나 광고성 도배 등 최소한의 형식적 요소만으로 게시물을 삭제하는 것은 내용에 관해서는 누구도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홍보실장은 “심한 반말과 욕설, 비판의 한계를 넘는 과도한 비난, 학교의 개혁과 발전을 위한 모든 구성원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표현 등을 과감하게 삭제하고 또 아이디 차단과 같은 조치를 하고 싶”다고 한다. ‘심한’, ‘과도한’, ‘찬물을 끼얹는’ 등 모두가 애매한 기준들이다. 비판 자체를 금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과도해서 문제인 것인가? 그렇다면 ‘심한 존댓말과 아첨, 칭찬의 한계를 넘는 과도한 찬양’은 어떻게 봐야하나. 나는 지금 홍보실장을 비판하고 있는가, 비난하고 있는가. 학교의 개혁과 발전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가, 지지를 보내고 있는가. 결국 규정의 유무가 아니라, 규정을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이 누군가에게 독점적으로 주어져 있는 상황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나가며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포퓰리즘 그리고 언론 통제라는 세 가지 요소의 조합은 역사적으로 모든 독재정권을 특징짓는 기본요소이다. 정당성이 부족한 정권은 의회나 정당, 시민사회, 언론 등 대의적인 여론형성기구와 대결하는 대신 대중들의 유약한 정서를 활용해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절차와 제도들을 파괴하곤 했다. 권위주의적인 독재정권하에서 대중들의 일상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연구들을 보면 특징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 있다. 현재 사람들에겐 끔찍하고 억압적인 체제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정작 당시의 사람들에겐 뭔가 조금씩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회고되는 것이 아닐까. 새로운 인사제도의 도입부터 출발한 것이 단과대 이전과 학과통폐합이라는 초유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기업이 원하는 맞춤형 글로벌 인재로 교육받다가 어느덧 4년 내내 특정 기업에 맞춤된 직업훈련을 받고 있고, 한 사람의 여론이 차단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어딜 가든 똑같은 목소리만 들려오고….

한편 모든 권위주의적 정권이 결국 역사의 진보 앞에 무너져 갔다는 사실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학문공동체로서 대학의 역사는 한 정권의 역사는 물론 일개 기업의 역사보다도 한층 오래 지속되어 왔다. 그러니 대학이 진리가 아닌 권력이나 자본 앞에 굴복하는 것은 부당함을 넘어 부질없는 짓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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