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혼란의 중앙대, 구조조정부터 김철수까지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2월 26일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안) 발표 직후부터 4월 말 계획안이 이사회에서 의결될 때까지, 온갖 사건들이 발생하고 또 어지럽게 뒤섞여 왔다. 도대체 고작 두 달 사이에 중앙대학교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큼직한 장면을 중심으로 정리해봤다.

#1 2월 26일  “시작”
개강을 4일 앞둔 이 날 오후,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안)’이 기자 간담회를 통해 공개됐다. 계획안은 학과제 폐지와 신입생 광역모집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이 날 간담회장 앞에서는 몇 명의 교수들이 항의행동을 벌였다. 앞서 진행된 전체교수회의에서 교수들과 합의되지 않은 계획안을 일방 통보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것이었다. 교수들은 전체교수회의 직후 계획안에 대한 자체 찬반투표를 실시, 전체교수 중 87%가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전현직 교수협의회(이하 교협) 회장과 전현직 교수평의원회 의장 등 6명으로 구성된 교수대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이 날 구성됐다.

서울캠퍼스에는 기자들이 분주하게 학생들의 의견을 묻기 위해 돌아다녔고, 학생들은 “처음 듣는 사실”이라고 답했다.

 

#2 3~4월 “반대 릴레이”
계획안은 즉각 반대에 부딪혔다. 사회과학대, 자연과학대, 인문대, 예술대, 법학전문대학원, 생명공학대, 사범대, 약학대, 의과대, 체육대, 적십자간호대, 공과대/창의ICT공과대 등 대부분 단과대 교수들의 성명서가 연일 발표됐다.

각급 학생 단체들의 성명서도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학생회를 신호탄으로 캠퍼스를 뒤덮었다. 곧 타 대학 인문대 학생회와 교수회의 등 연대의 뜻을 밝히는 성명서들도 모여들었다. 이 와중에 서울캠퍼스 총학생회는 계획안을 지지하고 비대위를 비판하는 뉘앙스의 성명서를 발표하는데, 이후 총학생회를 비판하는 성명서들이 다시 캠퍼스를 뒤덮었다.

4월 3일, 대학본부는 이 성명서들을 일제히 철거했다. 본부 관리 게시판뿐만 아니라 학과 자치 게시판의 성명서들도 철거됐다.

 

#3 3월 12일 “혼란”
비대위는 계획안에 대한 전체 교수의 의견을 묻는 총투표를 실시했다. 이 날 오전 11시 총투표 결과가 발표됐다. 투표 대상자(전체 전임교원 1003명 중 교수회의에서 의결권이 부여되지 않는 별정제 전임교원, 강의전담교수, 연구전담교수, 산학협력중점교수와 총장 등 139명 제외) 864명의 64.2%인 555명이 투표했고, 투표자 중 92.4%인 513명이 반대에 투표했다.

한편 총투표 결과발표 기자회견이 진행되던 시각인 오전 11시 20분, 서울캠퍼스 총학생회는 단독으로 비대위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후 각급 학생회에서는 중앙운영위원회를 거치지 않은 총학생회 성명서 발표가 절차 위반이라며 규탄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총학생회 성명서가 중앙인에 업로드된 직후인 11시 35분에는 홍보팀이 기자들에게 “중앙대 총학생회, 교수 비대위 규탄 성명 발표”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보도자료는 왜곡이었다. 총학생회가 발표한 성명서에 나와있지 않은 표현과 요구사항 등이 보도자료에 적혀 있었다. 확인 결과 이는 중앙운영위원회 채팅방에서만 공유된 성명서 ‘초안’을 바탕으로 작성된 보도자료였다.

홍보팀이 ‘초안’을 어떻게 접수했는가를 두고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홍보팀은 “세부적 문구 차이는 있으나 전체적 맥락은 같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세부적 문구’가 초안과 완전히 동일하다는 점에서 의혹은 여전했다. 홍보팀은 더 이상 해명하지 않았고, 결국 4월 6일 비대위는 명예훼손 혐의로 홍보팀을 고소했다.

 

#4 3월 18일 “반격 ㅡ 3007”
‘중앙대학교 학생 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출범했다. 자연대·인문대 운영위원회와 인문대·사회과학대·예술대 소속 14개 학과 학생회가 한데 모였다. 이는 계획안 발표 이후 20여 일 동안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여온 총학생회를 대체하기 위함이었다. 이로써 계획안이 마무리되기까지 비대위-교협·공대위·총학생회·대학본부의 4분할 구도가 정립됐다.

공대위는 이후 계획안 대응 진행과정을 알리는 선전전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특히 계획안 반대 연서명 운동을 집중적으로 벌였다. 공대위는 4월 13일까지 3007명의 성명을 모아 대학본부에 전달했다.

 

#5 3월 24일 “후퇴”
한 달 가까이 지속된 비대위와 공대위 활동의 결과, 교무위원회가 이 날 수정안을 의결했다. 교무위원회는 “교내외로 혼란을 초래한 것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학부/학과의 틀을 유지하며, 전공예약자를 포함한 신입생을 단과대학 단위로 광역화하여 모집하고, 세부사항 논의를 위해 교수와 학생 대표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한다”는 수정안을 내놓았다.

 

#6 3월 26일 “외출”
정문 교훈석 앞에서 ‘중앙대 사태에 즈음한 긴급 대토론회’가 실시됐다. 중앙대 교협이 주관하고 비대위와 공대위, 총학생회 등이 공동주최하는 행사였다. 계획안 발표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각 단위가 공동으로 치른 공개행사였기에 의미가 컸다.

당초 이 날 행사는 R&D센터 대강당에서 실시될 예정이었으나, 행사 당일 갑작스럽게 영신관 앞 잔디밭으로 변경 공지됐다가 다시 정문 교훈석 앞에서 치르는 것으로 확정됐다. 이러한 사태의 원인은 대학본부에 있었다. 이강석 교협 의장은 이미 3월 둘째 주부터 대강당을 대여한 상태였다. 하지만 행사 하루 전에야 대학본부는 “외부단체가 참여한다”는 이유로 대관을 취소시켰다.

이 같은 문제는 이후 각급 단위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4월 22일 ‘이사장 사퇴에 즈음한 기자회견’ 때도 몇 차례 대관 불허 끝에 교수연구동 4층 복도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해야 했다.

 

#7 3월 27일 “비리”
사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분수령을 맞이했다. 아침부터 온 언론이 중앙대를 주목했다. 박범훈 전 총장이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으로 재직하면서 중앙대에 ‘특혜’를 제공했다는 혐의를 검찰이 포착해 서울캠퍼스 본관을 압수수색한 것이다.

압수수색 이후 매스컴은 연일 중앙대와 관련한 ‘단독’을 발표했다. 매일같이 새로운 의혹이 쏟아졌다. 쏟아진 크고 작은 의혹들은 다음과 같다. 2011년 8월 본분교 통합 특혜, 2012년 교지 단일화 승인 특혜, 적십자간호대 통폐합 특혜, 중앙국악연수원 땅 투기 및 부정 사유화, 장녀 중앙대 조교수 채용 시 압력행사, 부인 두산타워 입주 특혜, 병원 매각 통한 비자금 조성, 우리은행 기부금 유용 의혹 등. 그 모든 과정에서 두산과 박 전 총장이 대가성 뇌물을 주고 받았다는 혐의였다.

결국 박 전 총장은 5월 7일 검찰에 구속됐다. 검찰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사립학교법 위반, 업무상 횡령,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사기 등 6개 혐의를 적용했다.

압수수색 직후 한동안 대학본부는 업무가 마비돼 계획안 추진이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의혹을 산 본분교 통합과 교지 단일화가 그간 추진돼 온 구조조정의 골간이었기 때문에, 대학본부가 명분 없는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8 4월 21일 “몰락”
압수수색은 더 큰 파문으로 돌아왔다. 21일 아침부터 두 건의 기사가 중앙대, 아니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박용성 이사장이 보직교수들과 주고받은 이메일이 폭로된 것이다. 박 이사장이 한 막말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비대위 교수들이) 제 목을 쳐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쳐줄 것이다.” “중대신문은 학교를 대변해야 한다. 이 원칙에 반하는 방향으로 단 1회만 발행하면 즉시 폐간하겠다.” “(교수총투표는) 사기꾼이 운영하는 지방대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와 같은 막말들로 엄청난 파문이 일자, 박 이사장은 이 날 오후 이사장 직과 두산중공업 회장 직,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등 모든 직책에서 사퇴했다. 박 이사장은 입장문에서 “대학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이 과정에서 논란과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학내 구성원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후 박 전 이사장은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5월 15일 소환됐다. 5월 20일에는 또 다시 과거 막말 발언이 보도됐다. 지식경영학부 수시모집 과정에서 입학사정관에게 “분 바르는 여학생들 잔뜩 입학하면 뭐하느냐. 졸업 뒤에 학교에 기부금도 내고 재단에 도움이 될 남학생들을 뽑으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틀 뒤인 5월 22일, 검찰은 박 전 총장과 박 전 이사장, 그리고 황인태 부총장을 기소했다.

 

#9 4월 27일 “강행”
박 전 이사장이 사퇴하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27일, 중앙대는 긴급하게 이사회를 소집했다. 이 날 이사회에서는 새로운 이사장 선임과 계획안 의결이 이루어졌다.

새 이사장으로 김철수 전 세종대 총장이 선임됐다. 그는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한 직후 중앙대 이사를 맡아왔다. 김철수 이사장은 세종대 총장 재직 당시 사학비리에 연루돼 교육부로부터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다. 회계 부정·교비 전용 등으로 2004년 당시 세종대는 사학비리의 대명사로 통하는 학교였다.

난항을 겪으리라 관측된 계획안은 이 날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의결됐다. 2016학년도 정시모집에서만 모집단위를 광역화하는 것으로 수정된 계획안이었다. 이로써 2월 26일 시작된 ‘중앙대 구조조정’은 절차적으로 일단락됐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