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강의실이 있는데 왜 빌리질 못하니?

거기에선 문학 얘기만 하는 거죠?

| 고구미

지난 3월 26일 학교 교훈석 앞에는 진귀한 풍경이 그려졌다. 교수, 학생들이 모여 야외 토론회를 벌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변을 스쳐갔다. 분주하기 그지없던 3월의 캠퍼스에서 벌어진 ‘낯선’ 풍경은 삼삼오오 캠퍼스를 지나가던 이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했다. 아직 쌀쌀한 날씨였지만 약 80여 명의 교수, 학생들이 모였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는 시간까지 많은 사람들이 차가운 땅바닥 위의 자리를 지켰다.

토론회를 야외에서 개최한 것은 주최 측의 ‘고의’가 아니었다. 이날 행사는 102관(약학대학 및 R&D센터) 3층 대강당에서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학교가 일방적으로 장소사용을 취소하면서 불가피하게 야외에서 진행되었다. 2015년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이 연일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교수협의회는 “위기의 한국대학 현 시기 대학개편,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주최하였다. 행사 준비 과정에서 장소사용 여부를 두고 교학지원팀과 갈등을 겪던 중 결국 행사는 시작 2시간 전에 장소사용 불허를 통보받았다. 한국대학학회, 성균관대 문과대학 교수협의회, 인하대 교수협의회 등의 외부단체가 참여한 것을 문제삼았다. 교수협의회는 ‘외부 단체가 학내에서 행사를 여는 경우 시설 이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이용료를 지불하겠다고 했으나 이마저도 거부당했다.

 

 

강의실 불허로 결국 교훈석 앞에서 진행된 대토론회

강의실 불허로 결국 교훈석 앞에서 진행된 대토론회

 

반복되는 ‘불허 통보’

교수협의회에 대한 장소사용불허 ‘통보’는 반복되었다. 지난 4월 22일 열린 ‘중앙대학교 박용성 이사장 사퇴에 즈음한 교수협의회·교수대표 비대위 기자회견’ 역시 대학본부 측의 장소승인불허로 인하여 행사진행에 차질을 빚었다. 본 행사는 불가피하게 교수연구동 복도에서 진행하게 됐다.

교수협의회마저도 강의실 대여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사회의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다. 학생들은 수업을 듣는 것 이외에도 학생회, 학회, 동아리 등 자치활동을 위해 유휴 강의실을 빌려 이용하고 있다. 유휴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자치활동을 이어가는 데 핵심적인 절차다.

국어국문학과 A씨는 학회 세미나를 위해 강의실을 빌리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A씨가 방문한 C 교학지원팀은 그가 타 단과대 학생이기 때문에 소속 단과대 교학지원팀에서 도장을 받아오라고 요구했다. A씨는 도장을 받기 위해 인문대 교학지원팀을 찾았다. 인문대 교학지원팀은 A씨에게 시설물 사용허가서를 새로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지도교수(책임자)’란에 지도교수를 쓰지 않고 학회장의 이름을 쓴 것이 이유였다. A씨는 “학회는 학생들끼리 모여서 공부를 하는 것인데 왜 지도교수가 필요하다는 소리인지” 의문이 들었고, “괄호치고 책임자라고 쓰여 있으니 학회의 대표인 학회장으로 대신해도 되는 것이 아닌가”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거기에선 문학 얘기만 하는 거죠?’

또 다른 국문학과 B씨는 D 교학지원팀을 찾았다. 현대문학회 세미나를 위해 강의실을 빌리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럼 거기에선 문학 얘기만 하는 거죠?”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이 돌아왔다.

강의실을 대여하는 데 불편을 겪는 것은 학생회도 마찬가지다. ‘가’ 학과 학생회의 경우는 학과행사를 위해 강의실을 대여하는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처음 강의실을 빌릴 때는 수월하게 빌렸지만, 두 번째에는 교학지원팀에서 과 사무실에 확인전화를 요청하여 행사여부를 확인받아야 했다. 세 번째엔 행사의 취지와 내용을 설명하도록 했고, 네 번째엔 행사 참여인원을 기재하고, 회의록까지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결국 학생회는 회의록과 행사 내용을 정리하여 제출해야했다. 학생회 사업을 위해선 강의실을 빌리는 일이 불가피하지만 이렇게 복잡한 절차가 반복되니 학생회의 피로감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강의실을 대여하기 위해 작성하는 시설물 사용 허가서에는 ‘사용목적’을 기재하는 항목이 있다. 사용목적을 적는 것은 사용내용의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사용목적’은 그 목적에 적합한 강의실을 선정하거나 기자재를 빌려주는 등의 용도로 활용되어야 한다. 사전에 행사내용을 검열하고, 개입하려는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 행사의 회의록을 요구하거나 “문학 얘기만 하는 거죠?”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은 강의실 대여과정에 정치적으로 개입하려는 행정실의 의도를 드러낸다.

 

의심이 습관화된 대학

강의실 대여문제에 대학이 개입하는 현상은 다른 대학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23일과 24일, 성균관대와 경기대 학생들은 세월호 1주기를 맞아 각 대학에서 세월호 유가족 국민 간담회를 진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성균관대는 ‘교육목적에 부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경기대는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는 정치적인 행사다’라는 이유로 장소사용을 불허했다. 학생들이 세월호 1주기를 추모하며 자치적으로 기획한 행사에 대해 대학 본부가 일방적으로 ‘불허’를 통보한 것은, 대학본부가 강의실 대여라는 행정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일이 대학 내에서 일반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균관대학교의 강의실 불허 통보 문자 ⓒ오마이뉴스

성균관대학교의 강의실 불허 통보 문자 ⓒ오마이뉴스

 

학생들이 자치활동을 위해 강의실을 대여하는데 책임학생이 아닌 ‘지도교수’의 서명을 요구한다거나, 행사 내용에 대해 확인하려는 태도는 모두 학생들의 강의실 대여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행정실의 태도를 나타낸다. 행정실의 이러한 태도는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불신하고 의심한다는 것과 다름없다. 의심이 ‘습관화’되는 것이다.

대학은 취업특강이나 명사특강을 직접 기획하여 외부인을 초청하는 행사를 실시하기도 한다. 그런 대학이 외부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강의실을 불허하는 것은 학생들의 자치활동에 대한 불신이다. 나아가 학생들이 자치활동을 꾸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검열하려는 태도를 내포한다.

대학 내 구성원들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행정실은 학내 구성원을 위한 ‘행정’ 업무에만 집중하면 된다. 하지만 현재 행정실은 역할과잉에 빠져있다. ‘행정’의 영역을 넘어 정치적 판단을 수시로 하고, 검열자의 태도로 학생들의 활동을 통제하고 있다. ‘의심이 습관화된 대학’에서 비어있는 공간을 빌리고, 자치활동을 꾸리는 것은 피로하고 어렵다. 이런 학생들의 피로감을 덜어주는 것이 행정실의 참된 ‘행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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