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불편한 새내기로서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각자가 되었으면 한다. 가만히 있는 것이 부끄러움이 되는 청년들이 되었으면 한다. 다른 사람의 낙오를 나의 성공으로 관련짓지 않는 대학이 되었으면 한다. 조금은 삐딱한 새내기의 한사람으로서 살아본 대학은 그런 대학이다.

 

– 무민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교에 들어왔다. 새내기라면 누구나 저마다의 이상적인 캠퍼스 라이프가 있다. 어떤 사람은 대학을 그간 쉬지 않고 달려온 경쟁의 탈출구, 쉼터라고 생각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그 옛날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대학은 경쟁의 각축장인가. 수능은 비슷한 성적의 아이들을 모아주고 그 아이들이 심화된 경쟁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보내주는 장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대학에 입학한 뒤에 해본 적이 있다. 성공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모두가 눈을 감고 귀를 닫고 그것만을 향해 달려가는가. 이 중 그 누구도 사회적 성공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우리는 고등학생 때도 대학에 가본 적 없이 대학이라는 상상의 공간을 그리며 입시경쟁을 했다.

도대체 사람들에게 성공이란 어떤 것이기에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며 달려가는 것일까. 우리는 현실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지금의 즐거움에만 안주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런데 자신들의 미래가 왜 학점과 자격증, 스펙들에만 있다고 생각하는지는 의문이다. 우리 모두는 행복해지기 위해 대학에 온 것이 아닌가? 왜 미래의 행복이 지금의 행복보다 크다고 생각하는가. 왜 지금 달리지 않으면 미래의 행복이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키팅이 부르짖었던 “Carpe diem”의 의미에 깊이 감동하던 사람들이 지금의 중앙대학교에는 모두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이다. 때론 시니컬한 현실주의자들은 대학의 목적이 전문 직업을 가지기 위한 전문성 함양에 있으며, 사회적 수요가 없는 학과들은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취업을 위한 스펙의 한 가지로 사용될 만큼 대학의 가치는 협소한가?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회학을 배우고 싶어서 공부하고, 이제 막 그 길을 시작하고 있는 나에게 대학은, 그 자체의 공부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는 공간이다. 나도 취업해야 한다. 또한 한 명의 완성도 있는 성인으로서 ‘앞가림’이라는 것을 해 나가야 한다는 부채감을 완전히 벗어버릴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남들보다 비교적 많은 돈을 벌며 거기에서 비롯된 비교적 높은 사회적 권력을 가지고 살기를 강요하는 사회에 장단을 맞춰줄 생각은 없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사회가 바라는 방향대로만 흘러가지는 말자. 적어도 내 생각, 내 계획이라는 것으로 무장하고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한다. 자신만의 센스를 발휘하여 옷을 입는 것만으로는 자신만의 색채가 있는 삶을 살 수 없다. 각자의 색깔로 삶을 칠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저항이 필요하다. 적당한 시기의 진학, 적당한 시기의 취업, 결혼, 독립 등을 강요하는 사회에 내 인생을 내주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지금 나를 둘러싼 주변을 어떻게 바꿔갈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구조조정을 하는 학교가, 장그래법으로 노-노갈등을 부추기는 사회가 밉다. 하지만 더 미운 것은 그 사이에서 나 혼자라도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나의 모습이다.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각자가 되었으면 한다. 가만히 있는 것이 부끄러움이 되는 청년들이 되었으면 한다. 다른 사람의 낙오를 나의 성공으로 관련짓지 않는 대학이 되었으면 한다. 조금은 삐딱한 새내기의 한사람으로서 살아본 대학은 그런 대학이다. 그렇지 않은 대학교와 대학생이 되기를 소망한다.

나도 평범한 15학번 새내기이고, 대학 생활에 로망을 가진 스무살이다. 나 또한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과 같은 구조조정을 상상하며 학교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새내기 때부터 공대위에 참여하여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목소리를 낸다는 상상을 하지는 못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생각을 이야기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던 새내기는 그렇게 공대위에 들어가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대위 활동을 한다고 하면 응당 갖추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창한 신념은 없었다. 그 공백은, 공대위 사람들과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 본관에서 마주한 학교가 채워주었다. 공대위의 한 사람으로서 중앙대학교를 어떻게 보았느냐고 묻는다면,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것이다. 중앙대는 ‘슬픈 학교’가 되어가는 중이라고 말이다. 우리학교의 캠퍼스 환경과는 별개로 중앙대는 무척이나 평화롭다. 새내기의 기대에 부응할 만큼 밝으며 활기차다. 그것이 더 큰 문제다. 네 번째 커다란 구조조정을 맞은 학교가 이렇게 조용한 것이 어떻게 말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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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를 자랑스러워하는 구성원의 한사람으로서, 우리학교와 비슷한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건국대학교의 학생들이 학생총회를 개최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봤다. 순간 내가 여기서 느끼는 즐거움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기업이 점령한 대학의 기업화. 대학본부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을 강요하는 비정상적 구조. 학생주권의 자취마저 사라지려 하는 기이한 대학교가 겉으로는 평화롭게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각 과는 자과의 이익을 계산하며 구조조정에 대한 객관적 사실마저 학생들에게 전달하지 않고 있다.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합하려는 노력은 총학에게도, 단과대 학생회에게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학생회는 어느 날 땅으로부터 자연스레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의견 표명을 꺼려하는 단과대 회장들과 학생 사회와 교수 사회의 합의를 방해하려는 본부 의도에 발 맞춰 움직이는 총학은 학생들이 뽑은 것이다. 평온한 학교의 분위기만을 고집하고 움직이려 하지 않는 학교의 분위기도 학생들 스스로 만든 것이다.

지금 학교가 겪고 있는 문제는 학생들로부터 비롯되었다. 학생사회가 적극적으로 감시하지 못하는 영역의 문제가 학생사회의 문제로 이어지게 하지 말자. 더 이상 방조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경쟁 사회의 수레바퀴에 밟히지 않기 위해 우리의 문제를 내 문제가 아닌 것으로 규정하지 말자. 선동 당하자는 것이 아니다. 선동 당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알고, 뜨겁게 분노해야 한다. 부디 16학번, 17학번들이, 나와 같은 새내기들이, 우리학교를 기이하게 평화로운 학교라고 바라보지 않기를 소망한다. 부디 뜨거워지자. 뜨거운 학교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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