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나는 클린캠퍼스가 싫어요

나는 클린캠퍼스가 싫다.
중립이라는 가면을 쓰고 치워선 안 될 것까지 치워버린 풍경이 싫다.

 – 해람님

 

* 얼마 전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일어난 일은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투쟁하는 청소노동자들의 선전물들을 총학생회가 ‘축제를 위해’ 모두 떼어버린 사건인데요. 이 사건을 지켜보던 ‘해람님’이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클린 캠퍼스, 남의 학교 일만은 아닙니다. (잠망경 주)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지난 5월 20일, 서울여대 총학생회가 투쟁 중이던 학교 청소노동자들의 현수막을 강제로 철거했다. 학교 축제 ‘서랑제’를 맞아 캠퍼스의 미관을 깔끔하게 정비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울여대 총학생회는 행정관을 제외한 모든 건물의 현수막을 내려 노동조합 측에 전달했다. 정확히는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툭 놓고 갔다. A4용지에 인쇄된 짧은 통보문과 함께.

우선 청소노동자들의 목소리가 강제로 철거돼버린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요즘 대학에서 대자보나 현수막이 강제로 철거되는 것쯤은 일도 아니라지만, 익숙해져도 참을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다.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이해해보려는 노력도 없이, 마치 쓰레기를 치우듯 그 모든 걸 무심하게 뜯어버리는 짓은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열이 뻗친다. 그것만으로도 벅찬데 정말 경악스러웠던 건 이번 훼손 사건의 주체가 학생들의 대표를 자처하는 총학생회였다는 사실이었다.

훼손은 언제나 ‘갑’의 역할이었다. 부당한 일이 터지고, 누군가의 피 같은 페인트로 쓰인 현수막들이 걸리고, 떨리는 손으로 꾹꾹 눌러 쓴 자보들이 무성하게 맺힌 뒤, 심기가 상한 어느 ‘높으신 분’의 지시로 정리되는, 이제는 자연스럽게까지 느껴지는 그 못된 과정 말이다. 그 속에서 총학생회의 역할은 대항 혹은 침묵이었다. 침묵도 잘 한 짓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 누구도 앞장 서서 방해는 안 했다. 그러나 서울여대는 해냈다. ‘중립’이라는 마법의 단어를 끌어다 쓰면서, 가장 중립적이지 못한 일을 저질러버리고 말았다.

그렇다. 오늘날의 대학가에서 ‘중립’은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열쇠 마스터키이자 모든 것을 표백하는 최강의 표백제다.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대학생들이 그 ‘중립’을 지향하고 있다. 마치 캠퍼스는 뽀송뽀송해야 한다는 강박이 존재하는 것 같다. 빤딱하게 청소된 쾌적한 백화점 같은 분위기를 대학가에도 강요한다. 이번 서울여대 사건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대학생들의 마음 안에 중립이라는 허상이 얼마나 깊이 박혔는지가 총학생회 규모로 드러난 것이다.

이쯤에서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서울여대 대나무숲’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중립을 지키기 위해 이 일과 관련된 어떤 글도 올리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수많은 항의성 제보를 받았던 건지 몇 시간 뒤에 장문의 입장이 올라왔는데, 무려 청소노동자 파업에 대한 관리자 자신의 생각이었다! 삭제되어서 다시 찾을 수 없지만 청소노동자 파업에 대한 비난이 주를 이뤘던 걸로 기억한다. 비판 댓글이 줄을 이었고, 관리자는 영구차단으로 대응했다. 필자도 비판하는 댓글을 두 개 달았다가 차단당해 아직도 서울여대 대나무숲에 댓글을 달 수 없다. 시무룩…

중립이라면서 현수막을 훼손하는 행위, 중립이라면서 청소노동자들을 비난하는 행위, 이게 우리가 그토록 찬양하는 중립의 맨얼굴이다. 중립의 두꺼운 화장을 박박 벗겨보면 핑계라는 생얼이 드러난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능력과, 그에 따른 불편함을 마주할 용기가 부족하다는 걸 감추기 위한 핑계. 의견은 실컷 내면서 비판은 받고 싶지 않다는 비겁함이다.

물론 어떤 생각을 가지든 그건 개인의 자유지만, 어떤 생각을 하든 그것을 ‘중립’이라는 말로 포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각각 살아온 삶이 다르고 처한 환경이 다르다. 완벽하게 중립적인 사람은 없다. 그건 거짓말이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거 아니듯이, 마음에 줄 몇개 그어서 중립맨 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클린캠퍼스가 싫다. 중립이라는 가면을 쓰고 치워선 안 될 것까지 치워버린 풍경이 싫다. 누군가의 삶이나 버려진 레쓰비 깡통이나 똑같이 ‘치워야 하는 것’으로 취급당하는 게 너무 싫다. 그 불쾌한 쾌적함 속에서 나는 공기가 맑아도 숨이 턱 막히고, 소음이 없어도 귀가 막히며, 시야가 트여도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는 싫다. 사실 클린캠퍼스보다 그게 더 싫다.

사람은 애초에 쾌적한 존재가 아니다. 겨드랑이에 땀도 나고 슬프면 눈물도 나고 다치면 피도 흐른다. 땀도 눈물도 피도 다 불편하다면, 특히 남의 것은 더욱 불편하다면, 철저한 무균실에서 홀로 잠만 자야 할 것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불편함을 마주하는 게 낫지 싶다. 시끄럽다고 하기 전에, 보기 싫다고 하기 전에, 왜 저들이 저리 시끄럽게 목소리를 내고 보기 싫은 현수막을 거는지 먼저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너도 같이 노력하자. 그런 사람들이 넘쳐나는 캠퍼스의 풍경야말로 미관 중의 미관 아닐까.

+ 서울여대 총학생회의 행동이 서울여대 학생 전체의 의견은 아닐 겁니다. 중앙대 학생으로서, 그 마음 누구보다 잘 알죠. 누구보다 당신들의 심정을 깊이 이해하는 남자친구가 필요하다면 010………

어쨌든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엔 총학생회가 용기있게 사과도 했고 청소노동자 임금협상도 타결되어서 다행입니다. 총학생회에 대한 비판보다는, ‘중립’에 대한 어떤 놈팽이의 넋두리로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