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축제를 즐기는 당신에게

공동체의 감수성은 가장 예민한 사람에게 맞춰져야 한다.
공동체가 가진 감수성의 예민함이 무뎌질수록 불편하고, 상처받는 구성원은 늘어나게 된다.

– 사회학과 이상

* 즐거운 축제, 하지만 그 속에서 한번 정도는 잠깐 멈춰서서 생각해볼 문제에 대해 사회학과 이상 학우가 기고해줬습니다. 부디 이런 이야기가 ‘선비질’로만 매도되지 않고, 함께 더 즐거울 수 있는 축제를 위한 ‘제언’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잠망경 주)

매년 축제기간을 전후로 각 학과, 동아리별로 주점이 꾸려진다. 일부 주점에 대해서는 선정성이 논란이 되고, 논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때마다 표현의 자유는 문제를 옹호하거나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주점의 선정성 문제에 대해 ‘표현의 자유다, 입고 싶은 것을 입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구성원의 자발성을 전제한다. 자발적으로 동의한 일이니, 외부인이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선정적이라서 불편하다’는 주장만으로는 주점 문제를 비판하기 불충분하다.

어느 공동체나 마찬가지로 학과, 동아리 내부에도 학번, 연령, 성별 등에 의해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대개 고학번, 고연령, 남성이 권력관계의 우위에 있게 된다. 저학번, 저연령, 여성은 대개 권력관계에서 상대적 약자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권력관계는 다양한 요소가 교차되는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권력관계가 가시적이고, 강력하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외면으로 드러나지 않고 은밀하게 작동할 수도 있다.

권력관계 내부에서 일부 구성원은 주점 포스터나 복장에 불편함을 느껴도 학과,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문제제기를 포기하고, 적극적인 외양을 띠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 공동체 생활에서 배제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에 ‘입고 싶은 것을 입는 것’처럼 자신의 불편함을 감추게 될 수도 있다.

대체로 이때 불편함을 느끼지만, 그것을 감춰야하는 쪽은 권력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쪽에 있는 구성원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니까 간섭하지 말라’는 주장은 공동체 내부의 권력관계를 은폐하고 모든 구성원의 자발성을 전제해 자신을 합리화하게 만든다. 하지만 누군가는 자유롭지도, 행복하지도 않을 수 있다.

‘우리 공동체 구성원은 모두 동의했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두가 동의했다는 것이 공동체 외부의 사람이 비판할 수 없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표현의 자유는 당신의 표현 그 자체를 금지하거나 억압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표현하는 것’ 자체를 금지할 수 없다는 것이지, 표현을 비판할 수 없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당신의 공동체에서 어떤 컨셉으로 주점을 진행하든, 그것을 금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고, 문제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면 언제든 비판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는 자신이 표현하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간섭하고, 비판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점은 수익사업이기 때문에 ‘더 잘 팔리는’ 컨셉을 이용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성이 끊임없이 대상화되고, 상품화되며, ‘잘 팔리는’ 한국 사회의 대중문화가 대학에서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대학문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대학에 존재하던 시기에는 대학의 구성원들이 대중문화가 대학 내로 무차별적으로 유입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학만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었고, 그것은 대중문화와 완전히 괴리된 것은 아닐지라도 일정정도 거리를 갖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대학에는 대중문화와 구분되는 대학문화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의 대학생이 대중과 구분되지 않으며, 오히려 대학생은 대중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사업과 기획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너무나 쉽게 기성의 것들을 답습하게 된다. 기획에 대한 고민과 노력 없음은 시장에 존재하는 ‘구린 것’을 그대로 수용하게 만든다.

주점에서 복장을 착용하는 여성의 비율이 더 높다는 것. 동일한 컨셉의 복장을 입더라도 여성의 복장은 대중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더욱 대상화되고, 상품화될 수 있는 형태라는 것.(애초에 대상화되거나 상품화될 수 있는 남성의 복장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남성보다 여성이 시선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성적으로 불평등하게 구성된 공동체의 권력관계가 주점 기획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점의 ‘선정성’ 문제를 단순히 ‘선정적이다’, ‘불편하다’는 주장만으로는 비판할 수 없다. ‘싸보인다’, ‘교양 없어 보인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자신이 특정한 여성성을 전제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물어야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여성에 대한 상이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에게 기대하는 또 다른 이미지일 수 있다. 하지만 주점의 ‘선정성’ 문제를 표현의 자유와 같은 말로 그저 덮어버릴 수는 없다.

공동체의 감수성은 가장 예민한 사람에게 맞춰져야 한다. 공동체가 가진 감수성의 예민함이 무뎌질수록 불편하고, 상처받는 구성원은 늘어나게 된다. 감수성을 예민하게 유지하는 것, 그 기준선을 더 높게 잡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각자의 올바르지 못함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고, 더 많은 갈등과 논쟁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공동체 내부의 구성원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공동체 생활에 참여할 수 있게 노력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문제제기에 대해서 ‘우리의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어’, ‘그건 너무 확대해석이야’라고 회피하지 않았으면 한다. 공동체의 기획을 비판하는 것이 곧, 그 구성원 개개인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공동체 내부에 무언가 부족하고, 올바르지 못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더 좋은 공동체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주점과 축제가 만들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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