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대학 부실화, 맞춤형 인재(人災)

지금 대학구조개혁 정책의 핵심 구도는 한마디로 ‘뫼비우스의 띠’ 같은 다층적 레일이다. 정부는 ‘학령인구 감소 대응과 산업인력 미스매칭 해결’이라는 커다란 경주 대회를 개최한다. 가장 윗층에서 대학 본부가 달린다. 아래층으로 달려온 본부는 교수와 학생을 밀어낸다.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던 이들은 아래층으로 아래층으로 내달리다가, 결국 서로를 밀어낸다. 각각의 레일이 어디를 향해 이어지는지를 잊은 채 말이다.

 


| 짱큰콩

알앤디

 

펄럭이는 대형 현수막과 0관왕이라는 화려한 선전문구는, 마치 ‘학내구성원들의 땀과 노력의 결실’로 맺어진 아름다운 성과인 것 같다. 혹은 본교의 역량 그 자체를 증명하는 표지인지도 모른다. 전 이사장과 전 총장 사건 등으로 몇 가지 ‘잡음’이 나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기저기 부실대학이 난립하는 시점에서, 우리 대학만은 꿋꿋이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그러니 자랑스러워 하렴, 거대한 전시물은 그 아래를 지나가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이들에게 그렇게 말 걸고 있다.

이것은 중앙대만의 풍경이 아니다. 근래 전국 대학가의 모습이라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대학재정지원사업의 수주 여부는 이제 단순 재원 충당의 의미를 넘어서 가장 좋은 홍보수단으로 기능한다. 대다수 대학들이 ‘생존 경쟁’에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교육부로부터 인정받고 지원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받고 있느냐를 보이는 것이 곧 해당 대학에 대한 신뢰도 상승과 스스로의 ‘역량 입증’을 꾀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 된 셈이다. 당장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대학재정지원사업> 연관 검색어들을 쳐봐도, ○○ 대학 교육부 재정지원사업 4관왕, 7관왕이라는 말부터 먼저 나온다. 바야흐로 대학재정지원사업의 시대. 전국 각지의 대학 본부는 각종 재정지원사업 수주를 위해 그야말로 고군분투 중이다.

대학 본부는 지난 11월 <중대신문>(2015.11.2) 인터뷰에서 교육부가 내놓은 ‘프라임(prime) 사업’에 참여할 계획임을 밝혔다. ‘프라임 사업(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은 지난 10월 교육부에서 발표한 ‘사회수요 맞춤형 인재양성 사업’ 중 하나로, ‘산업인력의 미스매치 해소’를 목적으로 한다. 교육부에서 제공하는 산업별·직업별 인력수급전망에 따라 학사구조를 개편하고, 학과·계열별 정원을 조정하는 대학에 재정을 지원하는 것이 본 사업의 골자다. 즉 인문/사회/예체능계열을 줄이고 이공계 중심으로 구조조정한 대학에 돈을 쥐어주겠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또다시 교육부가 재정을 미끼로 대학의 자율성을 억압하려 한다는 강한 비판이 일고 있다. 혹자들은 이 상황을 두고 대학가에 ‘태풍의 눈’이 상륙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2012억원이라는 대규모 예산이 편성된 만큼, 각 대학은 사업 수주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듯하다. 중앙대 경우만 해도 당장 이 사업에 선정될 경우 막대한 재정적 이득과 대학평가순위의 상승 등을 기대할 수 있다며 “중앙대의 명운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사업”이니 “각 학문단위의 이해관계를 우선하기보다는 중앙대 전체 발전에 협조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는 신신당부의 말을 전한 바 있다. (김성조 연구부총장 인터뷰, 중대신문 2015.11.22) 결론은 이미 정해졌다. 일단 따야 하는 사업이다. 따라서 그 조건 또한 그대로 이행돼야 한다. 그런 말이다.

종종 우연찮게 이 현수막들을 마주해버리고 마는 우리는, 대체 여기에 어떤 답변을 해야 하는 걸까. 어떤 느낌을 가지며 그 앞에 다가설 수 있는 걸까. 왠지 모를 뿌듯함? 혹은 자랑스러움? 아니, 어쩌면 그 모든 것은 뻔-한 착각들일지도 모른다. 화려한 현수막의 뒷면에는, 구조조정이라는 지겨운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이 정말 맞는 걸까, 늘 그런 의문을 던져주는 그림자 말이다. 우리에게는 이제 저 화려함 뒤에 숨겨져 있는 무언가를 들춰볼 수 있는, 다른 독해 방식이 필요하다.


장막을 거두고 그림자를 살피면

합리성. 정해진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가장 적합한 수단을 탐색하고 실행하는 것을 우리는 ‘합리성’이라 부른다. 교육부가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며 재정지원사업을 만들고, ‘정원 감축’과 ‘학문단위 개편’이라는 조건을 내걸었을 때, 일차적으로 이는 대학들의 미래 설계에 그대로 이식된다. 재정 충당이 목적인 대학들은 구조조정을 그 수단으로 삼기 시작한다. 초기에 있던 내부 반발은 시간이 흐르고 봉합의 시도가 계속되면서 곧 자취를 감춘다. 논란이 됐던 목적과 수단의 관계마저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종래에는 목적도 바뀐다. 구조조정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이다. 이후 대학들에 남는 선택지는 ‘이 구조조정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 정도다. 설명회 정도는 열까? 애초에 모조리 컨설팅 업체에 맡길까? 마치 교육부가 초기에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해도, 평가지표와 재정지원사업의 연계라는 한정된 수단 안에서만 맴돌고 있듯 말이다.

한정된 수단 안에 맴도는 과정에서 점점 잊히는 것은 바로 애초 ‘목적’에 관한 논의다. 이 목적은 어떻게 해서 세워지게 되었는가. 과연 올바르게 설정된 것인가. 다른 수단을 강구할 수 없었던 것인가. 그런 이야기들은 모두 묻혀버리게 된다.


대학재정지원 사업, 목적 위반하는 선정 기준

출발선으로 가보자. 대학재정지원사업의 본래 취지는, 교육부에서 각 대학들에 재정을 지원함으로써 개별 대학의 특성화를 돕고 교육 모델을 다양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학별 경쟁력을 강화하고 산업 인력 미스매칭 등의 문제도 해소하겠다는 말이다.

문제는 교육부가 각각의 사업 취지와는 무관한 평가지표들을 선정기준에 넣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학부교육 선도 사업(ACE사업)’ ‘산학협력 선도 대학 육성사업(LINK사업)’의 선정기준으로 뜬금없이 ‘정원감축’이라는 지표가 들어간다. 국립대의 경우 ‘총장직선제 폐지’를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각각의 사업들은 점점 더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교육부 정책을 강제로 주입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충당이 필요한 대학들은 그 정체성을 살린다는 취지와 무관한 사업마저도 우선 지원하고 보자는 입장이다. (이후에는 취업률 낮은 학과 순으로 정원감축이라는 ‘빚’을 해결하려 한다) 그 결과 전국의 대학들이 앞다퉈 정체성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내달리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프라임 사업, 목적 위반하는 선정 기준

다시, 프라임 사업으로 돌아와 그 선정기준을 살펴보자. 교육부는 ‘취업난’과 ‘인력 미스매치’를 해결하기 위해, 이공계 중심으로 학문단위를 재편하는 대학에 재정 지원을 하겠다며 본 사업을 정당화한 바 있다. 이는 그동안 대졸취업난의 주원인이 ‘비-이공계 학과 중심’의 대학에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대학을 흔들면 우리 취업할 수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이 진단은 정확히 빗나간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고등교육 계열별 취업률을 보면 공학계열 취업률 또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에서 2011년 사이 4.6% 가량이 상승한 것을 제외하면, 2011년 69.3%에서부터 2014년 66.9%까지 그 이후로 쭉 하향세를 그린다. 공학계열 취업률이 인문계열 취업률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나 상황이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라는 말이다.(“우격다짐 ‘경제발전’ 논리에 종속된 대학교육 정책”, 대학교육연구소) 더불어 현재 우리나라의 이공계 비율 또한 낮은 편이 아니다. 오히려 “시장 수요보다 인력이 훨씬 많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임금이 떨어진다.” (대학구조전환, 어떻게 할 것인가 | 장수명 교수 인터뷰, 허핑턴포스트코리아, 2015.11.18.) 즉 정부의 입장과 달리, 지금의 공학계열 교육과 노동시장의 구조는 ‘산업수요와의 매치’가 아주 잘 이뤄지고 있다. 근본적 문제는 노동시장 자체에 있다고밖에 할 수 없다.

한편 교육부는 ‘사회수요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을 학과별 전망까지 세분화해 대학에 제공’하겠다고 한다. 프라임 사업에 참여하려는 대학은 제공된 ‘전망’에 따라 학과 재편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10여 년 전에도 많은 학생들이 ‘촉망’받는 직업군에 들기 위해 특정 학과로 몰려들었던 적이 있다. 당시 각 대학들은 기초학문을 줄여 취업률 높이기 경주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그 결과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경우 (2003년 대비 2013년 기준) 입학정원 9.8%가 감소했으며 자연계열은 43.3% 감소했다.

경영경제 분야, 에너지 분야, 의약 분야의 치료, 보건 및 간호학과 입학정원은 동일기간 적게는 3배에서 많게는 10배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그 사이 우리 사회 청년취업률이 높아졌고, 노동시장구조가 개선됐다는 말은 좀처럼 들려오지 않는다. 게다가 그렇게 미래 유망 직업에 따라 대학 전공을 선택하고 인생을 내맡겼던 이들이 지금 처한 현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는 언제 어떠한 산업 또는 학문의 중요성이 부각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정부는 지금 그 불확실성을 방패로 삼아 모든 책임을 회피하고 있으며, 또한 모든 화살을 대학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십년을 이어온 뫼비우스의 띠

잠시 과거로 돌아가보자. 때는 1995년, 일명 문민정부라 일컬어졌던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와 ‘다양화’를 근간으로 한 <5.31교육개혁>을 발표한다. ▲대학설립준칙주의 ▲대학정원 자율화 ▲대학평가 및 재정지원의 연계강화 등이 주된 내용이다. 그 중 ‘대학평가와 재정지원의 연계 강화’는 지금의 대학평가-재정지원 구도로 이어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재정지원과 연계되는 대학평가의 기본 가치가 개별 대학들 간 무한 경쟁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짜여졌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율화 → 평가 → 행·재정지원 연계’ 정책은 “대학총장 및 교직원들의 정체성 등을 바꾸는 효과를 거두”었고 “대학공동체를 운영하는 일은 ‘경영’과 ‘마케팅’의 범주에 속하게 되었”다. 대학이 기업화된 것이다. “대학에 대한 기업식 경영, 경제적 효율성에 대한 강조와 교육 및 연구에 대한 수량적 평가는 수익성이 없는 학문이나 수량적으로 평가되지 않는 대학의 전통적 가치들을 대학 밖으로 밀어”내기에 이르렀다.(“고등교육개혁의 역설적 효과와 대학의 위기”, 참세상, 2014.11.17)

지금 대학구조개혁 정책의 핵심 구도는 한마디로 ‘뫼비우스의 띠’ 같은 다층적 레일이다. 정부는 ‘학령인구 감소 대응과 산업인력 미스매칭 해결’이라는 커다란 경주 대회를 개최한다. 가장 윗층에서 대학 본부가 달린다. 아래층으로 달려온 본부는 교수와 학생을 밀어낸다.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던 이들은 아래층으로 아래층으로 내달리다가, 결국 서로를 밀어낸다. 각각의 레일이 어디를 향해 이어지는지를 잊은 채 말이다.


또다시 반복되는 문제

20년이 지난 오늘날, 비슷한 문제는 프라임 사업에서 또다시 반복된다. 정원 유연화를 선정기준으로 하는 프라임 사업은, 학과 간 정원 교환 뿐 아니라 ‘대학 간 정원 교환’도 허용한다. 한마디로 인근 지역 내에 있는 대학들 간 상호 ‘비교우위’를 갖는 학과의 교수 및 학생 정원을 교환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 방안이 산업인력 미스매칭을 해소하고 대학의 특성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이공계 중심 학문단위 육성, 학문단위 실용화 정책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정부가 생각하는 그런 ‘선순환 구조’가 과연 잘 정착될지는 의문이다. 여태껏 이미 많은 대학들이 너도나도 그때그때 소위 ‘잘 나가는’ 학과들을 중심으로 학문단위를 재편했지만, 그것이 각 대학을 ‘특성화’시키지는 못했으며, 학문 풍토 또한 그만큼 깊이 있게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기존에 잘 자리 잡고 있던 학과의 교수들이나 학생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는 일이 발생했다.


가치가 변하지 않는 한 
비극은 계속된다

경쟁을 통한 선순환 구조를 바라는 정부의 기대와, 당장 생존 문제에 내몰리게 되는 대학의 기대는 이렇듯 대개 어긋난다. 다만, 정부와 대학의 어긋남을 단순히 서로 다른 이익 단체들 간의 불화로 여기는 건 곤란하다. 결국 이 사태는 정부와 대학이 ‘경쟁’에 대한 무한 신뢰라는 공통 가치를 체화함으로써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학기 캠퍼스에 머문 중앙대 학내 구성원들은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연출되는 데에는 정부의 입김만이 작용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교육이 아닌 경제 정책의 일환으로 대학을 개혁하려는 정부와, 대학을 ‘경영’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려는 기업화된 대학의 시선은 근본적으로 같은 곳을 향한다.

이 길의 끝은 어쩌면 대학 특성화도, ‘인재’ 양성도 아닌, 학생, 교수, 대학교육 전범위에 걸친 ‘부실화’일지 모른다. 물론 다가올 대학 부실화는 어떠한 우연에 의한 것도 아닌,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던 인재(人災)일 것이다.

다시 현수막을 보자. 당신은 이제 그 앞에서 무어라 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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