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학교가 허락한 강의실”?

| 그로밋



진통 끝에 단선으로 진행된 제58대 총학생회 선거는 찬성률 미달로 무산됐다. 내년 3월까지 총학은 공석이 됐고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돼버렸다. 하지만 공약이 공수표마냥 의미가 없어진 건 아니다. 공약을 통해 제기된 문제는 차후 학생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공론화될 수 있다. 특히 두 선본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사안에는 여론의 무게가 더 쏠릴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에서는 강의실 대여 문제가 화두였다. ‘사이다’, ‘함께바꿈’ 선본은 각각 ‘강의실 대여 전산화’, ‘총학생회 자체 강의실 및 팀플룸 대여’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학교에서 강의실 따기

 

그동안 학생들은 강의실을 대여할 때 크고 작은 불편을 겪었다. 불편은 쌓이고 쌓여 불만으로 표출됐다. 본지 역시 지난 6월에 발행한 제 12호 ‘당신들의 거래 우리들의 대학’을 통해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보도했다. 본지는 당시 “강의실이 있는데 왜 빌리질 못하니?”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대학본부의 입맛대로 변하는 강의실 대여 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더불어 대학본부의 전횡으로 인해 학생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정당한 자치권과 교육권을 통제받는 상황을 알렸다.

이에 온에어 총학은 지난 1학기 말에 각 단과대학 행정실 및 학생처를 대상으로 조사에 나섰다. 이후 여름방학 중인 7월 21일 온에어 총학은 각 단과대 별로 빌릴 수 있는 강의실, 담당자 번호, 방호실 위치 등을 정리해 학생들에게 온라인으로 공지했다. 더불어 앞으로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강의실 대여 전산화 시스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인터넷을 통해 강의실 대여 현황을 파악하고 대여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였다.

온에어 총학의 조사 후 강의실 대여 절차에 작은 변화가 있었다. <중대신문>은 지난 9월 강의실 대여 절차가 9월 22일부로 기존의 6단계에서 3단계로 간소화됐음을 보도했다. 소속 단대 행정실의 확인, 사용목적에 대한 관련부서 협조, 지도교수 확인의 절차가 생략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학습목적으로 강의실을 1회 대여할 경우에만 한정됐다. 개선이라면 개선이지만 학생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일지는 미지수다. 강의실 대여 문제의 본질을 건드린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복잡한 절차도 문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대학본부가 행정권을 여전히 검열의 수단으로 남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지가 지난 보도에서부터 핵심으로 지적하는 부분이다. 강의실 대여 문제에 대한 이슈가 싹트고 있던 지난 9월의 사건이 이를 방증한다. 9월 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생 동아리 ‘평화나비 네트워크 중앙대 모임(이하 평화나비)’은 학내에서 개최할 촛불문화제를 신고하기 위해 학생처를 방문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당시 잠망경과 인터뷰한 평화나비 중앙대 모임 대표 조영일씨에 따르면 평화나비가 외부 단체이고 행사가 정치적이라는 게 대학본부의 불허 이유였다.

‘정치적’ 행사를 언짢아하는 대학 본부의 태도는 언론의 관심을 끌 만했다. 이후 인터넷을 통해 몇 차례의 보도가 나갔고, 결국 대학 본부는 입장을 바꿔 촛불문화제를 허가했다. 우여곡절 끝에 9월 23일 중앙마루에서 열린 촛불문화제는 무사히 마무리됐다. 당일 몇몇 교직원들이 중앙마루 주변을 기웃거렸던 걸 빼면.

간소화한 강의실 대여 절차를 ‘학습목적’의 이용에만 한정시킨 건 평화나비의 사례와 같은 행정상 사전검열의 연장선이다. 학습목적 이외의 용도로 강의실을 이용하기 위해 행정실을 방문하면 교직원은 여전히 행사의 내용을 가장 먼저 묻는다. 전적으로 학생들이 주도하는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책임 학생이 아닌 지도교수의 서명을 요구하기도 한다. 모순적인 행정이 계속되는 이상 학생들의 불만은 계속된다. “내가 등록금 따박따박 내고 학교 강의실 좀 빌리겠다는데 왜 교수한테 찾아가서 아쉬운 소리 해가며 싸인 받아오라고 하는지 학교측은 납득할 수 있게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청룡광장,2015.11.10)” 같은 볼멘소리가 중앙인 커뮤니티에서 오늘도 공감을 얻는 이유다.

강의실을왜빌리지못하니

절차가 문제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강의실 대여 전산화가 어떤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자. 이번 총학생회 선거에서 ‘사이다’ 선본은 ‘강의실 대여 전산화가 무산돼 학생들이 강의실 대여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봤다. ‘사이다’ 선본에 따르면 앞서 온에어 총학이 추진한 강의실 대여 전산화 시스템은 해당 업무를 담당하던 교학행정실이 지난 8월 행정직제 개편으로 사라지면서 현재 답보 상태에 있다. ‘사이다’ 선본은 이를 ‘전산팀 또는 교학부총장과의 협의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강의실 대여가 온라인으로 이뤄질 때 학생의 편의는 분명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편의를 담보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신청’ 버튼을 클릭하기 전까지다. 지금처럼 행정의 수준을 넘어선 대학본부의 개입이 존재한다면 남은 편의는 담당 교직원의 몫이다. 학생에게 대여를 불허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학생의 불만 가득한 표정을 마주해야할 불편도 없다. 한두 줄의 불허 사유를 온라인으로 통보하면 끝이다. 그게 아니꼬우면? 힘없는 학생은 다시 행정실로 향할 수밖에.

이미 강의실 대여 전산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는 성균관대에선 대학 본부가 온라인을 통해 학생들을 편리하게 통제하고 있다. 지난 2014년 9월 23일 성균관대 학생들은 세월호 유가족 국민간담회 개최를 위해 온라인으로 강의실 대여를 신청했다. 그런데 신청 다음날 담당 행정실 직원은 신청한 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정치적 문제가 섞여 있어 강의실을 대여해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올해 3월 18일 세월호 1주기를 앞두고 비슷한 행사를 진행하고자 했던 경기대 학생들도 똑같은 상황에 직면했다. 전화가 아닌 문자메시지로 불허 통보를 받았다는 점만 달랐다.

한편 ‘함께바꿈’ 선본은 ‘총학생회 자체 강의실 및 팀플룸 대여’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지난 11월 17일 합동공청회에서 ‘함께바꿈’ 선본은 ‘대학본부에서 관리하고 있는 강의실의 관리 권한을 일부 양도해서 받고 총학 자체 공간을 팀플룸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밝혔다. 대여 사업은 오프라인과 함께 온라인을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대학 본부에서 강의실 관리 권한을 양도받는다는 건 대학의 행정권이 어디에서 나와서 누구에게 봉사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과 같다. 강의실 대여 과정에서 사실상 사전 검열의 기준으로 작용하는 ‘교내 시설물 사용 규정’은 제5조에서 “교내 시설물은 외부 정치단체, 종교단체, 이익집단(노동조합 포함) 등 수업 및 연구 활동에 방해될 우려가 있는 행사 주체에게 또는 관련된 행사 대여를 금지한다”고 밝힌다. 그리고 제6조에서 “교육 목적상 부적절하다고 인정될 때” 사용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못박는다. 대학 본부는 이와 같은 통제를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엄숙한 전제로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 정치적 중립이 교육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게 아니다. 교육이 먼저 자율적으로 이뤄지면 대학본부는 거기에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정치적 중립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학생은 권리의 주체이면서 책임의 주체다.

학생들이 강의실을 안정적으로 대여하는 건 학생자치 공간의 확보로 귀결된다. 공간을 확보하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광장에서 시민들이 이야기를 나눈다면 캠퍼스에서는 학생이다. 학생들이 모여서 나누는 이야기는 곧 담론의 일부가 된다. 담론은 학생들이 무언가를 요구하고 추구하는 데 필요한 논리가 된다. 담론의 형성은 행동의 계기가 된다. 대운동장이 사라진 뒤 광장의 명맥을 이어가는 공간이 손에 꼽히는 캠퍼스에서 강의실은 이제 마지막 광장이 돼버렸다. 강의실은 대학본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건 얼굴을 마주하는 행정실에서 강의실을 빌리든, 모니터 너머의 전산화 시스템으로 강의실을 빌리든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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