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쫑긋쫑긋] “예술은 교양이 아니라 본질” ㅡ 임인자 예술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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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두부

 

청량한 여름이면 약 일주일 간 사회의 변방에서 반향을 일으키는 축제가 열린다. 평소에는 듣지 못했던 소리들이 마음껏 소란을 피우는 연극판, ‘변방연극제’다. 17회 변방연극제는 예술의 자율성을 보장하고자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을 통해 정부의 지원 없이 독립적으로 개최됐다. 최근 문화부 산하 문화예술위원회의 대본 검열 및 지원 삭감 사태에 맞서는 멋진 대항의 형식이다.

한편 지난 7월에는 대학 기업화 내용을 담은 ‘입시특강 – 이것이 대학이다’가 공연됐다. 대학은 ‘주류’의 공간으로 느껴지는데 왜 ‘변방’에서 이 문제를 다뤘을까? 궁금증을 안고 전 변방연극제 예술 감독인 임인자 동문을 만나 ‘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감독님의 대학생활은 어떠셨나요?

민족극연구회에 가입했고, 포스트모더니즘 이론들을 주로 배웠어요. 저는 특히 실험극에 매력을 많이 느꼈는데, 기존에 있던 연극과는 다른 방식으로 얘기하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에요. 학교에서 전공으로 배우는 연극은 주로 서구로부터 수입된, 정형화된 무언가로 규정이 돼있었기 때문에 실험극이 제일 재밌었던 거죠. 실험극에서는 무대와 사회의 관계가 굉장히 밀접하다는 점도 좋고요.

대학 졸업 후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대학 생활이 그 활동들에 어떤 영향들을 미쳤다고 생각하시나요?

4학년 2학기 때 한 기획이 결정적이었는데요. 신문방송학과에 ‘또아리’라는 연극반이 있는데 당시 기획자가 없어서 ‘그럼 제가 기획을 한번 맡아볼게요.’ 하고 공연을 같이 준비하게 됐어요. 그런데 준비 과정에서 당시 연출담당자가 공간조정회의에 잠을 자다가 못 간 거예요. 행사 개요를 짜려면 시간과 장소가 중요한데, 연극할 공간이 없어진 셈이죠. 그때부터 소극장을 찾아다니며 기획을 진행했어요. 기획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덕분에 기획 공부를 경험하게 됐고요. 그 이후로 기획자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이전에는 기획자라 하면 그저 ‘돈 가져다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후로는 ‘하나의 기획을 발전시켜 가면서 장을 만드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됐죠. 기획자로서의 일에 연극을 전공했던 것이 더해져서 지금 이렇게 예술감독을 하고 있는 셈이에요. 다른 프로듀서들은 마케팅이나 그쪽으로 전문가가 돼있는데, 저는 좀 특수한 케이스죠.

변방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었는지, 변방연극제 활동 중에 어떤 생각들을 하셨고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변방’이라는 단어 자체가 늘 숙제였어요. 실험극의 형태로 출발했기 때문에 ‘실험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중요했죠. 그런 고민을 통해 초기에는 ‘최전방으로서 변방’을 상정했어요. ‘중심-가장자리’를 뜻할 때 가장자리로서 변방이아니라 ‘최전방’으로서 변방. 그런 관점에서 작품을 찾으려고 노력했죠. 인간과 사물간의 관계를 섹스의 과정으로 풀면서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보려고 시도한 <진공청소기>라는 작품을 올리기도 했어요. 공간과 극장이라는 제도 밖으로 벗어나보고자 <변방거리극>이라는 프로젝트도 했었고. <오픈스페이스 2030 프로젝트>라는 장소특정형 연극도 기획했었는데. 5일 동안 서울역 플랫폼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를 수집해서 새롭게 만들어보고자 한 시도였죠. 2010년에는 지금은 변방연극제 예술 감독이 되신 이경성 연출과 함께 <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라는 작품을 광화문 광장에서 하기도 했어요. 도시와 연극의 관계들을 생각하면서 ‘안락한 이미지의 소파가 도시로 이동할 때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죠.

그러다가 2013년에 형제복지원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요. 형제복지원 피해자 한종선씨를 만나게 되면서, 우리 사회를 안과 밖으로 표현할 때, 거기에 깔린(압사당한) 사람들(형제복지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7-80년대에 경제발전이라는 하나의 큰 담론에 가려져 사람들이 죽고 인권이 유린되게도 했었잖아요. 그런 큰 서사에 깔린 대감금의 역사에 공감을 하게 됐고, 그 이후 변방연극제의 성격이 많이 달라졌어요. 무대 위로 역사적 주체가 직접 올라오는 방향으로 기획이 이루어지고, 그때부터 ‘실험으로서 무대’에서 ‘사회적 목소리로서 무대’로 전환하게 됐죠.

대학 얘기를 해볼까요. 최근 대학이 예술계열을 구조조정하는 방향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무래도 사회 전반의 변화에서 비롯되는 것이겠죠. 사실 예술을 업으로 삼는다는 건 당장의 생존과는 거리가 멀어 보일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저는 예술만이 가지는 위치와 가치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예술이 무방비한 상태로 어떤 기준이나 수치에 따른 비교대상이 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껴요. 또한 개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하는 뿌리 같은 것들이 점점 약화되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대학에서 예술을 대하고 가르치는 방식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사실 예술을 가르쳐본 적이 있어요. 근데 언제나 실패했어요. 예술은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어떤 지형을 그리고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얼마나 끈질기고 치열하게 파고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죠. 그렇지만 사실 지금과 같은 커리큘럼 제도에서는 그런 가르침이 이뤄지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연극을 공부할 때 선생님들께 배웠던 건 주로 체계적인 지식들이었는데, 그런 점이 아쉬웠기 때문에 스스로 찾아보고 했었거든요.

실험극도 그래요. 실험극과 같은 형식이 있다는 지식은 배울 수 있지만 결국 직접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예술이 도식화된단 말이죠. 그러면 절대로 살아있는 작품보기, 살아있는 기획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술적 흐름과 사회 흐름 속에서 작품이 무엇을 파생시키는지를 정확하게 읽어내야죠. 그래야 예술이 예술만을 위한, 골방에 갇힌, 극장 안에서만 존재하는 예술이 아니고 삶 속에 녹아있는 예술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예술은 정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에요. 정답은 각자의 몫이에요. 그러면 그런 관점이 어떤 방식에 의해서 도출되느냐, 그런 과정들을 이 예술작업을 통해서 생각할 수 있다는 거죠.

예술의 자율성 문제 관련해서, 최근 대본 검열과 관련해 1인 시위들이 일어나고 있던데요. 예술 검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저는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누군가를 배제 대상으로 올려놓고 심의 제도를 교란하면서 심의위원들을 재소집해서 탈락시키라 요청하고, 그게 안 되니까 직접 예술가에게 찾아가는 그 일련의 과정이 너무 충격적이었고요. 헌법상으로도 보장되어 있지만, 인간으로서 자유롭게 생각할 자유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만약 이를 억압하는 주체가 국가라면, 이는 너무나도 큰 폭력인거죠. 형제복지원도 마찬가지예요. 복지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인간청소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과정이었어요. 지금 어떤 목적에 의해 무대를 정화시키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 예술가들을 배제시키는 과정도 이와(형제복지원 사건) 전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요. 이건 무지막지한 국가의 폭력이죠. 검열이란 단어는 물론 표현의 자유라든지 예술의 자율성 문제도 있지만, 저는 엄격하게 국가가 인간에게 하는 폭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의 독립 예술가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 또는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의 질문들이 미래에 도래할 어떤 실재라는 감각을 가졌으면 해요. 지금 무언가 각자 질문하는 게 있다면 당장 그것이 해결되지 않을지언정, 그 해결은 20년 후에 혹은 10년 후에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그 질문과 감각을 계속 갖고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학문의 연장이기도 하면서도 삶의 태도로서 연장이기도 하고, 예술 작품으로서 계속 연결되는 부분이라고도 생각하거든요. 그걸 얘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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