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일못’ 총학생회를 애도하며

온에어 총학은 완전히 실패했다.

| 주덕

 

세상에는 두 가지 총학생회(총학)가 존재한다. ‘일잘’과 ‘일못’. 전자가 말 그대로 ‘일을 잘한다’는 의미이니, 후자는 그 반대겠다. 모든 총학은 ‘일잘’ 혹은 ‘일못’으로 구별된다. 거친 이분법이지만 편리하다. 운동권이니 비권이니 하는 논의보다 단순하다. 오늘날 대학생의 대다수는 총학의 기본값을 ‘비정치성’에 두고 있으니, 실력은 실무에서 판가름된다. ‘일을 잘해야 좋은 총학이다’는 명제가 성립되는 이유다.

이에 비추어보면 올해 서울캠퍼스 제57대 총학생회 ON-AIR(온에어, 한웅규 총학생회장정찬모 부총학생회장)는 ‘일못’의 전형이다. 행정가적 수완도, 근사한 지향도 없었다. 물론 안다. 변수가 있었다. 올해는 그야말로 ‘혼세’였다. 대규모 구조조정, 박용성 전 이사장 사퇴, 메르스 사태, 국정교과서 논란 그리고 박범훈 전 총장 구속까지…. 캠퍼스는 줄곧 소란스러웠다. 대학 안팎의 문제가 동시에 몰려왔다. 이것은 분명 예견된 비극이었다. 하지만 급작스러웠다. 중앙대 사상 최대 규모인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은 개강 직전에 기습 발표됐다. 총학은 임기 시작부터 시험대에 올랐다. 그들의 당혹감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상황의 특수성을 헤아려도 온에어 총학의 ‘일못’은 감출 수가 없다. 올해 초 벌어진 ‘구조조정 사태’는 무능의 극치였다. 우선 대응 자체가 늦었다. 침묵이 의아하리만큼 길었다. 계획안이 발표된 후 보름이 지나서야 공식입장을 내놓았다. 그 내용마저 황당했다. 비판의 화살을 교수사회에 돌렸다. 이는 계획안에 대한 우회적인 찬성의사로 읽히기 충분했다. 학우들의 공분을 산 것은 당연하다. 돌이켜보건대, 성명서는 총학의 치명적인 자충수였다. 이후에 펼쳐진 장면을 되짚어보자. 홍보팀이 성명서의 내용을 왜곡해 보도자료로 배포했다는 논란이 불거졌고, 그 여파로 구조조정 찬반의사를 묻는 총투표가 연기되었다. 총학은 나름대로 대응전략으로 구상한 모든 패를 잃었다. 더는 나설 수 없다. 그렇게 판단했을 것이다. 대자보 논란 이후, 총학은 칩거를 택했다.

이 시점부터 총학은 구조조정 정국에서 퇴장한다. 노골적으로 행보를 자제했다. 학생공동대책위원회(학생 공대위)의 참여 제안을 거부했다. 사태를 논의하는 두 차례의 토론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교수대표 비상대책위원회와 학생 공대위가 주축이 됐다. 한 달 간의 공세 끝에 교무위원회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이후 경영진의 비리 의혹, 박용성 전 이사장의 ‘막말 논란’ 등 사태가 급변하면서 구조조정의 구심이 흔들렸다. 그러나 김철수 신임 이사장의 선임과 함께 사태는 2016년부터 정시에 한해 모집영역을 광역화하는 것으로 봉합됐다. 최악은 막았으나 계획안 자체를 폐기하지 못했다. 총학의 부재가 아쉬운 이유다.

구조조정 사태에서 그들이 표방한 노선은 미적지근하고 애매모호했다. 격렬한 반대도, 격렬한 찬성도 하지 않는다. 모든 행동은 대학 본부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이뤄진다. 이 알량한 계산을 대학 본부가 모를 리 없다. 임기 첫 단추를 단단히 잘못 꿰었다. “총학은 더 이상 부담되는 존재가 아니다. ‘학생 대표자’라는 명분 역시 결코 위협적이지 않다.” 적어도 총학은 구조조정 사태에서 대학 본부에 그런 시그널을 줬다. 늘 그렇듯이, 총학은 유명무실한 존재에 머물렀다. 모두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악재는 또 있었다. 지난 6월 발생한 메르스 사태로 우리는 총학의 한계를 재확인했다. 메르스 공포로 혼란스러웠던 당시에도 총학의 ‘일못’은 여전했다. 그들이 하는 일이라곤 대학 본부가 중앙인 커뮤니티에 통보한 내용을 페이스북에 실어 나르는 것이었다. 당시 온에어 총학은 “정보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들은 명확한 설명을 요구하는 학우들의 아우성에도 답변하지 않았다. 허점투성이인 대학 본부의 대처방식에 그저 납득했다. 침묵과 순응. 구조조정 사태 당시의 노선 그대로다. 대학 본부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는 총학, 대학 본부에 질문하지 않는 총학. 그들이 보여준 역량은 딱 거기까지다.

그 어느 해보다 온에어는 총학의 실패가 두드러지는 이유는 뭘까? 그들이 ‘비권’도 ‘운동권’도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총학은 비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은 상대에 맞설 무기로 실무능력을 앞세운다. 요컨대 ‘작은 총학’의 스탠스에서 학우들의 일상복지에 힘쓰는 식이다. 총학은 결코 대학 본부와 대등할 수 없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완벽히 체화한다. 대학 본부를 넘을 수 없는 벽의 위치에 두기 때문에 그들의 역할과 총학의 역할은 구분된다. 구조조정, 메르스 사태 대처와 같은 큰 문제들은 총학의 깜냥 밖이다. 당황할 수밖에 없다. 대신 재미있는 축제 만들기, 과잠바 공동구매, 인문학 연속 강연회 열기 등에 힘쓴다. 최근 수 년 간 선출된 총학은 모두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이 있다. 잘해야 한다. 전투력도, 담대함도 없는 비권은 적어도 능숙한 실무가여야 한다. 온에어 총학은 이 지점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비권인데 ‘일못’이다. 잘하지도 못했는데, 심지어 잘하는 ‘척’도 못했다. 예컨대 온에어 총학은 단과대 행정실마다 상이한 강의실 대여 절차를 전수조사한 바 있다. 최근 강의실 문제로 종종 갈등이 빚어지는 시점에 적절한 사업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성과를 아는 학우는 적다. 홍보가 미흡한 까닭이다. 총학의 목소리는 누구보다 커야 한다.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예정인지 시시콜콜 알릴 필요가 있다. 학우들로 하여금 ‘왠지 요란하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 존재감은 그럴 때 생긴다. 온에어 총학은 ‘비권’의 강점도, ‘운동권’의 강점도 갖지 못했다. 존재감이 미약할 수밖에 없다.

떠나는 뒷모습에 남기는 말은 공허하다. 온에어 총학의 공과(功過)는 이제 제쳐두자. 이번 총학의 실패를 교훈삼아 내년을 이끌어갈 총학에게는 치열한 고민이 함께했으면 한다. 지금 우리에게 어떤 총학이 필요한지, 총학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말이다. 낡고 흔해빠진 질문이지만 중요하다. 지금 해야 할 것은 ‘일잘’과 ‘일못’의 구분이 아니다. 학생 대표자로서 총학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해낼 수 있는 총학이어야 한다. 그래야 혼세가 반복되지 않는다.

1 Response

  1. 이공

    학생들 의견을 대표하는것이 총학인데, 대부분 학생이 뚜렷한 찬성 반대가 나뉘지도 않았으면서 총학 자의적인 판단으로 뚜렷한 찬반을 내거는게 ‘학생 대표자’입니까?
    그리고 일 잘하는 총학이냐 못하는 총학이냐가 중요하댔으면서 일 못했다고 까는게 아니라 운동권도 아닌 비권총학이 일 못했다고 까는건 운동권은 일 못해도 남들 눈쌀 찌푸려지는 운동하고 다녔다는거로 일 못했다는거에 면죄부가 됩니까?
    또 결론은 뜬금없이 운동권 짱짱맨! ???????
    예전 운동권이 중앙대에 무능 이상으로 해악을 끼친걸 다 아는 사람인지라 차라리 무능이라는 차악을 택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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