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알바의 ‘알 바’ : 새내기를 위한 알바지침서

과방 쇼파에 앉아 이번에 알바를 하나 더 늘려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쉬던 후배에게도, 방학이면 고수입을 위해 공장 야간알바를 하던 고향 친구에게도, 공기업 하청업체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정직원 채용을 기다리는 본인이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이 맞냐’며 술잔 앞에서 한탄하던 단짝 친구에게도 이 글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 고구미

아르바이트. 대학생활 4년차이자 알바인생 5년차에 접어든 나에게 이름만으로도 두려운 존재다. 무려 대학생 10명 중 7명은 알바를 한다고 하니, 대학생에게 알바란 뗄 수 없는 존재다. 누군가는 경험을 위해, 누구는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때로는 생존을 위해 알바를 한다. 새내기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미 알바가 일상이 되었거나, 알바를 꿈꾸거나, 알바를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새내기들에게 대한민국에서 알바노동자로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내가 알바노동자가 된 이유

나의 첫 알바는 고 3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고등학생이던 나에게 삶의 가장 큰 목표는 지긋지긋한 시골을 벗어나는 일이었고, 3년 내내 입시에 매달린 결과 원하던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결과는 얻었지만 생각보다 서울살이는 만만치 않아 보였다. 등록금은 장학금을 받게 되었지만 자취방은 월세가 40만원이 넘었다. 그 외에도 공과금, 교재비, 생활비 등을 생각하니 그동안 상상도 못했던 막대한 금액이 필요했다. 고향을 떠나기 전 미리 생활비라도 벌어놓아야겠다는 생각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첫 일터는 집 근처 마트였다. 고용주는 내가 아직 미성년자인데다 알바가 처음이라는 이유로 시급 4000원을 주겠다고 했다. 당시 최저임금은 4580원이었다. 처음 시작하는 알바였기에 이것저것 정보를 찾아보고 간터라 당시 최저임금이 4580원이었다는 사실도, 알바도 근로계약서를 쓴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청소년인 나에게 시급 4000원이면 후하다는 고용주의 말에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트에서 난 캐셔였다. 고객들이 가져온 상품들을 찍고 계산했고, 간혹 물건의 위치를 물어보는 고객들을 안내하는 일이었다. 단순한 업무 패턴에 비해 힘들었던 건 하루종일 서서 근무해야 하는 것이었다. 고용주는 캐셔가 의자에 앉아있으면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고객들이 많다며 일하는 내내 서 있게 했다.

하루는 출근하는 길에 길가에서 미끄러져 무릎을 다쳤다. 당일에는 어떻게든 버텨 일을 끝냈지만 계속 부어오르고 고름이 넘쳐흐르는 무릎을 보며, 내일은 도저히 일을 할 수 없겠다고 판단했다. 다음날 하루만 일을 쉬겠다고 고용주에게 이야기했다. 나에게 돌아온 대답은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였다. 일하기로 했던 3개월을 채우지 못한 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좀 더 일하면 4500원으로 올려준다고 했지만 너무 일찍 그만두게 되어서 그마저도 받지 못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 근로계약서를 썼다면 상황이 좀 나아졌을까 하는 후회도 들었다. 그때는 닥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서울에 올라가 알바를 하게 되면 좀 더 환경이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알바를 구할 때마다 상황은 반복이었다. 알바 중개사이트에 소개된 대부분의 사업장이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고, 휴식시간이나 식대를 챙겨주지 않았다. 때로는 계약만료 후 급여가 지급되지 않아 일했던 곳에 문제제기를 했지만 일했던 사실을 증명해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나는 분명 그곳에 있었고! 노동을 했는데 말이다! 이런 억울한 일들은 상황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이지 알바를 하는 내내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화장품 가게에서도, 음식점에서도, 옷가게에서도!

수많은 알바를 거쳐 왔지만 알바를 하는 내내 한 번도 나의 노동이 생존과 연결되지 않는다고 여긴 적이 없었다. 알바는 늘 나의 ‘생존’이었고, 내 삶의 많은 부분을 구성했다. 알바시간을 연장한 달에는 밥버거 대신 파스타를 먹을 수 있었고, 영화 한 편을 더 볼 수 있었다. 알바를 잠시 그만두었을 땐 애인과 계산대 앞에 설 때면 머뭇거리게 되는 내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알바시장에서 나는 늘 ‘일시적 노동’의 행위자였고, 잠시 쓰다가 버리면 그만인 껌 같은 존재였다. 이 사회의 ’일시적 노동‘을 담당하게 된 나는 손쉽게 해고되기도, 임금을 떼먹히기도 하며 부당한 상황들에 노출되었다. 불합리한 상황에 맞닥트렸을 때도 으레 알바는 그렇다는 압도적인 분위기에 문제제기를 하기 보다는 그저 단념하거나 자발적으로 일을 그만두곤 했다.

하지만 딱 한 번, 백화점에서 행사장 스텝으로 일하다 임금체불을 당했을 때 함께 일했던 직원들과 본사에 항의전화를 하여 임금을 받아낸 적이 있었다. 이후 많은 생각이 달라졌다. 혼자 항의 전화를 했을 때는 ‘나의 노동’을 증명해내라던 회사가, 단체로 전화하자 본인 회사의 이미지가 손상될 것을 걱정하며 바로 조치를 취해주었다. 이 때 나는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면 문제제기하고, 혼자가 힘들다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연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린 알바의 권리를 외쳤다

“우린 알바의 권리를 외쳤다. 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멀었다. 권리는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창당. 우리는 알바당”. 최근 화제가 된 알바몬 광고다. 알바당이라니. 너무나 생소하지 않은가. 알바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단체행동을 하는 모습은 현실에서도 익숙치 않다. 더욱이 이것이 광고로 제작되어 미디어에 노출된 이례적인 상황은 큰 화제를 모았다.

사실 이런 알바들의 집단행동이 광고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2월 2일엔 흙수저로 대표되는 알바생, 청년실업자, 비정규직 등 청년 104명이 모여 ‘흙수저들을 위한 정당’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이들은 ‘새로운 진보정당을 위한 청년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기존 정당들이 ‘노동개악’을 추진하면서 청년들의 노동권이 위협을 당하는 현실 속에서 청년들이 직접 주체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이들보다 이전부터 알바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활동해왔던 이들도 있다. 바로 알바노조다. 알바노조는 알바들이 단체행동을 통해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고용주의 부당한 횡포를 막아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2013년에 개소한 이후 벌써 4년차에 접어들었고 현재 400여명의 조합원이 가입되어 있다. 최근에는 맥도날드 ‘45초 햄버거 제조 폐지’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여성 알바노동자들의 외모를 평가하는 행태를 고발하는 등 알바노동자들의 고충을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노동조합 조직 이외에도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캐치프레이즈 하에 알바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집단행동을 모색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도들은 그동안 노동권을 침해당하면서 착취당하는 것이 익숙하던 알바노동자 개인을 주체화시키는 시도다. 스스로 자신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자각하고, 본인들의 문제로 정체화하고, 이를 정치화시킨다. 혼자선 포기하거나 단념하고 마는 문제들을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 모여 해결책을 모색한다.

그동안 나는 많은 사업장에서 일하면서 노동권에 대한 자각이 부족했고,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섣부르게 행동할 수 없었다. 대다수 고용주들은 알바노동자를 ‘일시적 노동’을 담당하는 ‘학생’정도로 여겼고, 기성세대들은 알바노동자들의 문제제기를 젊은이들의 치기어린 ‘투정’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내가 했던 알바는 분명 하나의 ‘노동’이었고, 나는 알바노동자였다.

많은 새내기들 역시 알바노동자가 될 것이다. 다양한 상황에 부딪힐 것이고 여러 업주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든 모든 알바들은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필요가 있으며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는 이를 문제제기할 필요가 있다.

알바노조에서는 노조활동 이외에도 알바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14년 9월, 알바노조 조합원 이가현 씨는 맥도날드에서 해고를 당한 후 알바노조와 함께 맥도날드의 부당노동행위를 고발하고,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비록 노동위원회 측은 회사의 편을 들어주었지만 이가현씨의 행동은 그동안 맥도날드에서 지속해왔던 ‘꺾기노동’이나 ‘호출노동’ 등의 문제를 가시화시켰다. 만약 혼자였다면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노동위원회를 비판하는 일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알바노조 같은 단체가 함께였기에 본인이 겪은 문제를 알릴 수 있었고 다시 한 번 구제신청을 할 수 있었다. 만약 여러분도 각자의 노동현장에서 불합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보는 것이 어떨까.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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