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도대체 프라임 사업이 뭐길래

연두부

“The league of the prime”

게임이 시작됐다. 사회 수요에 맞춰 인재를 육성한다는 ‘프라임 사업’말이다. 교육부는 여기에만 3년 동안 6,000억원을 쏟아 부었다. 이 게임의 핵심은 ‘인력 미스매치’의 양적 개선과 대학의 ‘진로·취업 지도 강화’ 등 교육의 질적 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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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미스매치란, 사회 수요 인력과 사회 공급 인력 간의 수적 부조화를 말한다. 정부의 최근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 통계에 따르면, 향후10년 동안 공학 계열은 약 21만 5000명이 부족하지만 인문·사회 계열은 31만 8000명이 초과 공급될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교육부는 이를 청년 실업의 원인 중 하나로 보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이 올해 1월 기준으로 9.5%에 이른다. 이에 따른 청년 실업자 수는 모두 35만명이나 된다. 청년 실업의 주원인은 경제 저성장에 따른 일자리 부족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가 원하는 인력과 대학이 길러내는 인재 간의 미스매치에 기인하는 바도 적지 않다.”– 교육부 홍민식대학지원관

 

프라임 사업은 정원 이동의 규모에 따라 사회수요 선도대학(대형)과 창조기반 선도대학(소형)으로 나뉜다. 중앙대가 참여하는 대형 사업은 대학 학과와 정원을 높은 사회수요전망을 가진 분야로 전면 개편하기를 요구한다. 조정 기준에 따라 대학은 입학 정원의 10% 또는 200명 이상을 감축해야 한다. 또는 전체 학생 수를 유지하되, 단과대 간 정원을 교환해 특정학과의 정원을 늘리는 방식도 가능하다. 중앙대는 전자와 후자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사업에 참여했다. 예술대학 정원을 150~200명 가량 줄이는 한편 공학을 중심으로 한 융복합학과를 신설해 정원을 채우는 개편안을 계획했다.

프라임 사업은 오직 ‘전공취업률’만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에 따라 지원금에 차등을 둔다. 문제는 전공취업률이 오직 전공을 살려 취업한 경우만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전공을 살리지 않은 취업은 지표에 반영되지 않는다. 전공과 관련된 직종으로 취업하지 않는 모든 학생은 ‘글로벌 시대에 발맞춘 융합/통합’의 수순을 밟도록 내몰린다. 예술을 비롯해 인문학, 사회과학이 대표적 예다. 응용학문/공학과는 달리, 인문/자연 기초학문들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데 보다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해당 전공 졸업생들은 전공과 직결된 분야로 취직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프라임 사업은 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대학이 엄청난 교육 지원금을 투자해도 매년 취업률이 일정수준 이상을 넘지 못하는 것은 사회 고용 구조가 한계에 이르렀음을 방증한다. 이미 고용 시장은 한정돼 있는데, 우리는 누가 그 자리에 들어갈 것인지를 두고 다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교육 개혁이 얼마나 학생의 취업률 상승에 기여할 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대학교육 연구소에 따르면, 대학 구조조정이 추진된 지난 10년간 의약계열은116.4%, 공학계열은 9.0% 입학정원이 늘었다. 반면 인문·사회계열은 16.3% 감소했다. 그러나 인력 조정에도 불구하고 취업률은 개선되지 않았다.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높은 공학 및 의약계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011년 76.1%에서 2014년 73.3%으로 취업률이 하락하는 등 상황은 다르지 않다. 대학교육연구소 이수연 연구원은 “다른 경제 선진국들의 추세와도 동떨어진 정부의 강제적인 학사 개편은 더 큰 인력수급의 불균형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따라서 프라임 사업이 우리의 취업률을 높여줄 거라는 공언은 기만에 불과하다. 이 실험의 목적은 실업의 책임을 대학에게 전가하는 데 있다. 대학은 다시 학생에게 이를 경쟁이란 이름으로 전가한다. 결국 실패한 정책의 책임은 학생이 지는 구조다.

대학은 비슷한 수능 점수를 제외하면 너무나도 다른 이들이 덜컥 묶인, 이질적인 집단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이 모여 대학이 된다. 하지만 프라임 사업 이후, 대학의 풍경은 변하고 있다. 경희대학교 부총장이 발표한 ‘학문 융,복합 계획’을 살펴보자. 경희대는 국문학과와 전자전파공학과를 합쳐 웹툰 창작학과를 만들고, 지리학과와 경영학과를 합쳐 지역경영학과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중앙대의 구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중앙대는 이미 노어노문학과와 독어독문학과, 프랑스어학과를 합쳐 유럽문화학부를 만든 이력이 있다. 학생들은 언제 자신의 과가 다른 과로 합쳐질 지 모르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내 전공과 관련 없는 수업을 이수해야 함은 물론이고, 양질의 수업을 듣는 것도 힘들어진다. 교수들은 또 어떤가. 불안정한 환경에서 ‘성과로 환산 가능한’ 연구에 매달려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배제된다. 대학 구성원에게 선택권은 없다. 배제된 학과들은 자연히 사라지게 되거나 학문적 기반이 취약해진다. 한정된 학문은 우리의 생각도 편협하게 만든다. 이런 풍경에서 대안 가능성이나 상상력은 허용될 수 없다. 그렇게 대학은 척박해진다.

 

물론 대학에게도 실업이라는 사회적 문제에 민감히 반응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 요구에 응답하는 방식이 이래서는 안된다. 인력 간 미스매치를 조정한다는 명분 하에 이루어지는 프라임 사업은 그 자체로 방향성이 틀렸다. 먼저, 대학교육과 실업은 무관하다. 둘째, 인재는 대체가능한 사람이 아니다. 지식과 기술의 나열은 기계가 할 수 있다. 오히려 우리는 지식을 응용하고 연구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셋째, 예측 불가능한 사회의 흐름을 미리 읽고 대처하는 것은 미리 여러 그림을 상상한 자들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상상이 가능하려면 학문 역시 다양해야 한다.

따라서 교육부는 무리한 학과 통폐합을 유도해선 안 된다. 학과 통폐합은 만능 열쇠가 아니다. 천문학적 지원금을 미끼로 프라임 사업에 유도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으로 학문 생태계를 가꾸어야 한다. 대학도 교육부의 압력을 넘어 독립된 교육기관이라는 본질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순간의 위기관리 보다 지속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움직이는 힘이 필요하다. 이 게임에서 생존자는 없다. 오직 게임을 만든 사람만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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