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성소수자입니다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우린 돌연변이가 아니에요. 뭔가 잘못된 삶의 선택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도 아닙니다. 이건 그저 당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뿐이에요.

| 재윤

안녕하세요, 중앙대학교 신입생 여러분. 입학을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이것이 마냥 축하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뭔가 대학교에 입학하면 많은 것이 삶에서 바뀔 것 같이 세상은 이야기 하지만 많은 것이 변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유로 이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셨나요? 수능 성적에 맞춰서? 아니면 집에서 가까워서? 아니면 누군가의 권유로? 여러분들이 그 선택을 함에 있어 스스로의 삶에 대한 고민이나 미래에 대한 고민은 어느 정도였는지 궁금합니다.

기존의 교육과정에서는 사람들에게 주로 대학가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대학에 갈 시간이 가까워지면 점수에 맞춰 어느 대학교에 지원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게 됩니다. 물론 이런 고민들 가운데 진심으로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것은 너무나 행운일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게이에요. 동성애자에요. 살면서 누군가 나의 성적지향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나의 성적지향을 제 스스로 어떻게 존중해줘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다른 삶의 시간들 속에서도 내가 내 성적지향을 받아들이고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물론 누가 먼저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내가 나를 존중하고 삶을 살아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온전히 나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하려고 할 때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은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존중을 받으며 살아가는 삶이 우리 모두에게 허락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학교 역시 그 존중을 찾아보기란 점점 어려운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어떤 대학교의 어떤 학과에 진학한 그 순간부터 사람들은 편견을 가지고 그 사람을 대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학교에 다니는 것을 기준으로 공부를 잘했다 못했다를 나누고 어떤 학과에 다닌다는 것을 이유로 그 전공을 잘하는 사람 취급 하니까요.

이 사회에서 저는 이성애자 남성으로 살아가도록 교육받았습니다. 성별 이분법을 기준으로 남성다움을 강요받고 여성을 사랑할 것을 강요받았어요. 그러다 어느 날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동성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수많은 물음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 감정은 뭘까? 이 친구는 나와 같은 남성인데 내가 정말 이 친구를 사랑하는 것일까? 라는 의구심이 생겼을 때 스스로 답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 선생님 같은 사람에게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런 물음을 마주했을 때 누군가 곁에서 동성애 혐오적인 의견을 표현한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요? 저의 경우엔 그런 의견은 저를 매우 역겨운 기분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을 스스로 하고 있을 때 “나는 동성애자들이 싫어.” “변태들이나 하는 짓이야.” “더러운 일이야.” “비정상적인 일이야.”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일이야.” “남자는 여자를 좋아해야지.” “게이 며느리 레즈비언 사위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와 같은 동성애 혐오적인 표현과 마주해야 한다면 어떨까요? 여러분들이 어떤 학교나 어떤 학과를 선택했을 때 여러분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인 누군가가 “그런 학교가서 뭐하려고?” “그런 학교 나와서 사람 구실이나 하겠어?” “그런 학과 나오면 취업이나 되겠냐?” 같은 이야기를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물론 학교나 학과는 변경을 할수도 있고 다시 시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번 정체화된 성적지향이라는 삶의 방향성은 타인의 강요에 의하여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건 스스로가 결정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하고 싶은 대상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이 누군가에게 부정 당하는 경험은 그래서 존재를 부정 당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난 1월 22일 저녁 중앙대학교 근처에 위치한 카페 나귀와 플라타너스에서는 반동성애 영화인 <나는 더 이상 게이가 아닙니다(I no longer gay)>라는 영화의 시사회가 진행되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게이가 아닙니다>는 동성애자인 사람이 치료를 통해서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는 이른바 ‘성적지향 전환치료’가 가능한 것이라 주장하는 내용이 담긴 영화인데, 만약 어떤 사람이 치료를 통하여 이성애자에서 동성애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요?

저는 청소년 시기부터 교회를 다녔고 지금도 매주 일요일마다 길찾는교회라는 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성공회 신자입니다. 그런 제게 누군가 너는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죄인이며 이성애자가 되기 전에는 종교를 가질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이런 상황과 마주할 때 누군가에게 성적지향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 싫어한다고 이야기할 권리도 사람들에게 있으며 그것이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미워하는 표현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한 공격이며 언어적 폭력입니다.

2003년 4월의 어느 날 스스로 삶을 마감한 청소년 성소수자 육우당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천주교 신자였고 제가 활동하는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당시 동성애자 인권연대) 라는 단체의 회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당시 국가인권위원회가 동성애를 유해매체물로 규정한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의 삭제를 권고한 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하 한기총)는 동성애자들이 유황불의 심판을 받을 것이며 성경은 동성애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기총의 성명서에 육우당은 적잖은 충격과 절망감을 느꼈고 19세의 나이로 스스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는 이야기 가식적인 십자가를 쥐고 목사들은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우리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있는 힘껏 발악하고 만일 우리가 떨어진다면 예수님이 구해 주시겠지 창녀와 앉은뱅이에게 사랑을 베푸셨듯이 우리에게도 그 사랑을 보여 주시겠지. 푹신한 솜이불처럼 따뜻한 사랑을.” – 육우당, 『현실』

육우당은 삶을 마감하기 전 이런 시조를 남겼습니다. 만약 육우당과 같은 사람이 자신이 다니는 학교 근처의 카페에서 동성애를 혐오 혹은 부정하는 영화가 상영되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떨까요? 누군가 다시금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기분을 느낄 겁니다. 저는 카페 나귀와 플라타너스에 가지 말아달라고 이 글을 적은 것이 아닙니다. 성소수자들과 함께 싸워달라고 주장하기 위해서 이른바 빨갱이가 거짓 선동을 하기 위해서 밑밥을 던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저의 경험을 토대로 여러분들이 삶을 살아감에 있어 조금의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적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여러분 들 중 누군가에게 커밍아웃을 했을 때, 또는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포현을 했을 때 적어도 이글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적는 것입니다.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우린 돌연변이가 아니에요. 뭔가 잘못된 삶의 선택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도 아닙니다. 이건 그저 당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뿐이에요.

누군가 당신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누군가는 공격당하고 누군가는 차별당하고 있습니다. 뭔가 잘못된 불평등한 일이 계속되고 있을 때 “그러면 안되요.”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라는 주장을 아주 소극적으로라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대학교에 입학하여 뭔가를 배우면서 그 용기를 찾아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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