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새로운 풍경 속을 거닐 당신에게

이번 잠망경 새내기특별호는 대학이라는 공간에 일원으로 들어온 당신이 온전한 주체로서, 사유의 힘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끝까지 당당히 서 있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띄우는 편지입니다. 당신이 그 힘을 바탕으로, 얼룩지고 바래져가는 암울한 대학의 풍경 위에 새로운 칠을 해나갈 수 있기를, 그리하여 보다 새로운 풍경 속을 거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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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조금씩의 설렘을 안고 대학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무한한 지적호기심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과의 교류에 관한 기대일 수도 있고, 이전에 누리지 못했던 ‘자유’에 관한 열망일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자 하는 바람이 있었던 셈입니다. 더 큰 세계와 주체의 마주침 말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기 위해 들어왔던 대학에서 조금씩 희망을 잃어가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많은 가능성을 담지한 공간이지만 그 가능성의 크기만큼이나 대학이 처한 위기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캠퍼스의 중심에 서 있던 학생들은 점점 더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 단순 ‘교육 서비스’의 소비자로 변해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올해 입학한 신입생들에게는 특히 먹구름이 더 빨리 찾아온 듯합니다. 원하는 공부를 제대로 시작해보기도 전에, 그것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부터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광역화 모집으로 입학한 16학번 신입생들의 이야기입니다. 제대로 된 행정 대책 없이 실시된 광역화 모집으로 인해 가전공을 배정받은 학생들은 지금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문제의 근원에는 지난해 학교 본부가 내놓은 학부 선진화 계획안과 교육부의 대학 구조개혁 정책이 놓여있습니다. 대학과 교육부의 근시안적 고등교육 정책 속에서 발생한 피해가 오롯이 학생들에게만 떠넘겨진 셈입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박용성 전 이사장과 박범훈 전 총장 시절부터 시작되었던 일방적 구조조정과 대학 기업화의 과정은 지금 학교가 겪고 있는 일방적 의사소통 구조 문제의 뿌리입니다. 이사장과 총장은 모두 교체되었으나, 여전히 문제적 체제는 남아있습니다.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떠넘겨집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학생 주체들의 권리를 대리해야 할 총학생회는 선거파행이라는 얼룩만 남겨둔 채 득표율 미달로 선출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대학생인 동시에 청년이기도 합니다. 교육, 노동, 주거 등의 분야에서 청년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지금, 청년정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가는 오르지만 최저시급은 턱없이 모자란 현재, 생활고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됩니다. 페미니즘에 관한 논의 또한 여전히 유효합니다. 각종 여성 혐오 발언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 우리는 페미니즘을 어떻게 사고해야 할까요. 그리고 스스로를 남성페미니스트라 정체화하는 이들은 어떠한 고민을 하고 있는 걸까요. 한편 중앙대 근처 ‘나귀와 플라타너스’ 카페에서는 동성애를 치료 가능한 것이라 말하는 영화를 상영했습니다. 성적 지향은 ‘치료 가능한’ 것이며 조정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정체성을 재단하려는 시각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요.

‘교육’ ‘자치’ ‘청년정치’ ‘노동’ ‘페미니즘’ ‘퀴어’에 관해 쓰인 각 글들은, 일상 속에서 가장자리로 밀려날 위협을 받는 존재들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당당히 주체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서로가 꼿꼿이 마주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대체 무엇을 무기 삼아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요.

의문을 품은 잠망경은 다시, 교육으로 돌아오려 합니다. 우리가 지금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하면서도 기본적인 무기는, 사유의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육부와 대학 본부가 함께 주도해나가는 프라임 사업은, 이러한 주체들의 꿈틀거림과 가능성을 가로막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자아낼 뿐입니다. 다만 대학 캠퍼스라는 공간 안에서 대부분의 일상을 보낸다는 우리의 위치를 감안해보면,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출발점은 어쩌면 지금-여기서부터 일지도 모릅니다.

대학의 의미가 너무 많이 퇴색되었다고 합니다. 한때 대학을 지칭했던 ‘지성의 상아탑’이나 자유로운 ‘공론장’과 같은 이름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보다 우리에게 조금 더 친숙한 이미지, 이른바 ‘청춘들의 낭만적 공간’이라는 모습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대학의 모습은 전해들은 바와 많이 다른 듯합니다. 오늘날 대학이 사회로부터 요구받고 스스로가 내세우는 본분은 어디까지나 ‘취업’이니까요. 너도 나도 취업중심대학임을 앞다퉈 증명해보이려는 수많은 종합대학들은, 오늘도 그에 발맞춰 캠퍼스를 ‘효율적’으로 재편하기 위해, 그야말로 고군분투 중입니다.

그래도 어쩐지 이렇게만 말하기엔 영 찝찝한 마음이 듭니다. 대학은 이제 취업학원이나 하나의 기업에 불과하다는 딱지를 당연하다는 듯 덜컥 붙이기가 망설여집니다. 우리는 스스로 그것을 자랑스레 천명하는 본교에 다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망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저마다 다른 우주를 품은 수많은 이들이, 올해도 대학이라는 한 공간에 모여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취업학원이라는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은 대학이 지닐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이번 잠망경 새내기특별호는 대학이라는 공간에 일원으로 들어온 당신이 온전한 주체로서, 사유의 힘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끝까지 당당히 서 있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띄우는 편지입니다. 당신이 그 힘을 바탕으로, 얼룩지고 바래져가는 암울한 대학의 풍경 위에 새로운 칠을 해나갈 수 있기를, 그리하여 보다 새로운 풍경 속을 거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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