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강남역 10번 출구, 공유된 책임 앞에서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우리가 느껴야 하는 것은 공유된 책임이다. 이곳에 묻지마범죄냐 여성혐오범죄냐는 소모적인 논쟁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만들었다는 분노가 자리할 곳은 없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공유된 책임에서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에 맞서 함께 싸우겠습니다. 우리에겐 이 말이 절실하다.

| 이상(여성주의 학회 <여백>/성평등위원회 <보라>)

 

5월 17일 우리는 여성이라서 살해당한, 비참한 소식을 접해야만 했다. 언론들은 앞다투어 ‘강남역 묻지마 살인’으로 보도했지만, 가해자는 범행 대상을 찾는 데만 1시간을 기다렸으며 범행 동기로 ‘여성이 나를 무시해서’라고 진술했다. 강력범죄에서 남성 가해-여성 피해 비율이 압도적인 한국사회에서는 ‘묻지마 범죄’와 ‘우발성’의 칼끝도 압도적인 비율로 여성에게 향했다. 피해자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끼고 피해의 감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이 사건을, 그리고 지금까지 그저 ‘묻지마’나 ‘우발성’으로 휘발되었던 수많은 사건들을 ‘여성혐오범죄’로 명명하기 시작했다.

이번 사건을 ‘묻지마 범죄’가 아닌 ‘여성혐오범죄’, ‘여성살해(femicide)’로 명명하는 것에 대해 과장 혹은 과도함, 성급한 일반화라고 지적하는 이들이 있었다.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에 초점을 맞춘 이들도 있었다. 이 모든 입들이 같은 입들은 아닐 테지만, 그럼에도 ‘남성’이라는 거대하고 편의적인 범주는 이 입들을 모두 묶어냈다. 가해자는 ‘비정상’으로 축출되었고, 아무런 대안도 될 수 없는 ‘사형제’ 따위의 공허한 말들이 부유했다.

과거의 그 언젠가에는 아버지, 오빠, 남자친구 같은 사적 가부장이 개인 여성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주던 시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응답하라 1994’가 그려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적 가부장조차 여성에 대한 폭력에 무력해지고 사회적 안전망도 형성되지 못한 상황에서 폭력에 대한 책임은 개인 여성에게 전가되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안전하지 못한 만연한 폭력의 시대에 이제 그 폭력의 책임은 모두 여성의 것이 되었다.

‘옷을 야하게 입어서’, ‘늦은 밤에 돌아다녀서’, ‘술을 마셔서’, ‘으슥한 곳을 지나쳐서’와 같이 무수한 말들이 피해 여성을 옥죄어갔다. 심지어 ‘성폭력 당하는 여성 도와주지 마라’ 따위의 ‘(위조된)경험글’들이 무수한 커뮤니티를 돌고 돌았다. 어쩌면 적잖은 여성들이 ‘그래, 늦은 밤에 술을 마시거나, 으슥한 곳을 지나치지 말자, 옷도 가려 입자’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부당하게 전가된 책임을 억지로 버텨냈다. 그런데 강남역 인근, 새벽에도 인적이 끊이지 않는 도심에서 한 여성이 살해됐다. 얼마나 더 ‘조심하라’는 무책임한 말을 던질 수 있을까. 얼마나 더 공허하고 무의미한 말을 내던질 것인가.

“여성은 모든 민주주의 헌법이 선언하고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 중 일부, 특히 신체가 해를 입지 않을 불가침의 권리가 여성에게는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경험한 여성은 근대 민주주의의 ‘문명화된’ 사회에서 노골적인 폭력이 사라졌다고 하는 모든 주장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 사회에서 자주 찬미되는 ‘평화’가 사실은 여성에 대한 일상적이고 직간접적인 공격에 기초한 것임을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깨닫기 시작했다. 독일 평화운동에서 페미니스트는 이런 슬로건을 만들었다. ‘가부장제의 평화가 여성에게는 전쟁이다’” (정확히 30년 전에 쓰인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마리아 미즈)에서) 우리는 이 선에서 과연 몇 발자국을 더 나아갔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영은 죄와 책임을 구분한다. 죄는 과거에 저지른 일을 근거로 도덕적법적 비난을 위해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지를 밝히는 과거 회고적 개념이다. 책임은 미래 지향적 개념으로,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린다는 것은 그들에게 해야 하는 임무가 있음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적 해악과 같은 경우는 많은 행위자들이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전형적인 예이다. 죄가 없는 사람에게도 책임은 있을 수 있다. ‘죄’의 수사학은 책임이라는 공유된 기획에 우리의 관심이 모이는 것을 막는다.

모든 남성들에게 죄가 있는 건 아니다. 많은 남성들이 여성폭력과 무관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다면 더욱 우리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이 사회의 구조적 부정의에 거대한 책임을 느껴야만 한다. 당신들에게는 죄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중화장실을 가면서도 살해의 위협을 느껴야 하는 바로 이 사회의 부정의에 대해 깊게 공유된 책임이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실존의 골을 사이에 두고 저 먼 땅의 어둠을 그저 무시하며 살아갈 것인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묻지마 범죄’나 ‘우발성’이라는 몰성적 개념으로 휘발시키고, 가해자를 ‘미친놈’으로 만들어서 책임의 땅에서 서둘러 도망치는 행위를 얼마나 더 반복해야 하는가.

진심으로 나는 범행 선택에서 빗겨난 대상이기에 운 좋게 살아남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사회에서 누군가는 ‘살려주세요’라고 외치고 있다.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우리가 느껴야 하는 것은 공유된 책임이다. 이곳에 묻지마범죄냐 여성혐오범죄냐는 소모적인 논쟁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만들었다는 분노가 자리할 곳은 없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공유된 책임에서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에 맞서 함께 싸우겠습니다. 우리에겐 이 말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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