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펄프의 비평] 기사쓰기와 비평하기 사이에서

왜 비평인가. 보통 비평은 다음과 같은 말로 해설된다. 뒷짐 지고, 멀찌감치 서서, 제 일 아닌 것처럼, 그럴 듯한 말만 늘어놓는 것. 그래서 비평가는 꼴사나운 존재고, 그의 말은 듣기 싫은 말이다. 하지만 나는 비평의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 김펄프

결론부터 얘기하자. 이 코너는 대학과 관련한 모든 것을 비평하는 코너다. 대학본부는 물론이고 교수, 학생회, (잠망경을 제외한) 대학언론, 심지어는 사임한 전 이사장까지 모두 비평의 대상에 올리고자 한다. 기획보도나 취재보도, 또는 ‘나도 한 마디’ 같은 칼럼과는 다른 차원에서 그(것)들을 다룰 것이다. 촘촘한 팩트보다는 일관된 관점으로 코너를 이어가겠다. 나는 학생사회의 활력을 일깨우는 것이 모든 대학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핵심적인 길이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학생사회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모든 행위 주체자를 바라볼 것이다.

왜 비평인가. 보통 비평은 다음과 같은 말로 해설된다. 뒷짐 지고, 멀찌감치 서서, 제 일 아닌 것처럼, 그럴 듯한 말만 늘어놓는 것. 그래서 비평가는 꼴사나운 존재고, 그의 말은 듣기 싫은 말이다. 하지만 나는 비평의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제 일 아닌 것처럼’ 말하는 것이 그렇다. 이건 아주 중요한 기능이다. 누군가 바깥에 머무는 사람(실은 그렇지도 않은 것이, 나 역시 학생사회의 일원이다)이 자신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대상에 대해 공적 매체에 대고 무어라고 말하는 순간, 사적인 것은 공적인 것이 된다. 나는 단순히 사적 이해관계가 걸린 일로만 이해되던 것이 실은 학생사회라는 공적 차원에서 논해볼 만한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 코너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바로 이것이다. ‘공적인 것’에 대한 인식을 학생사회에 이식하는 것. 학생회를 예로 들자면, 스스로의 위치를 단지 어쩌다 대표직을 지니고 있을 뿐인 개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을 학생사회의 공인으로 끌어올리는 것. 아니, 실은 학생회장씩이나 되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 학생사회의 공인이어야 한다. 우리가 대학에 있는 이상 대학 문제의 바깥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의 방관이나 무관심이 문제를 해결하거나 해결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이 이 좁디 좁은 학생사회의 원리다.

이 기획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직 모른다. 잠망경은ㅡ실은 어떠한 대학언론도ㅡ 강력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지는 못하며, 내 ‘글빨’은 그리 좋지 못하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좀 세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비평‘당한’ 대상이 내 비평에 대한 반론을 내놓지 않고서는 억울해서 못 견딜 만큼. 비평에 대한 반론이 다시 공적 매체에 실리고, 그 반론에 대해 다시 재반론이 일어나고, 논쟁을 지켜보던 또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의 입장을 제기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괜찮지 않은가? 물론, 내가 날카롭고 치밀하고 정확하게 방아쇠를 당겨야만 그런 효과가 생길 거다. 걱정이 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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