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광역, 도발은 성공

그 시험대에서 학생들이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도록 발판을 제공하는 것은, 광역화 실패에 책임이 있는 본부가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자 학생들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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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

2017학년도 광역모집 폐지가 확정되었다(공과대학, 창의ICT공과대학 제외). 지난 5월 17일의 일이다. 서울캠퍼스 ‘응답하는’ 총학생회(이하 총학)에서 주최한 정시 광역모집단위 설명회에서 김창일 교무처장(전기전자공학부 교수)의 입을 통해 학내 구성원들에게 전달되었다. 당일 열렸던 제 8차 교무위원회 회의에서 ‘2017학년도에는 공학계열(공과대학, 창의ICT공과대학)에 한하여 광역모집을 시행하며, 그 규모는 전체 공학계열 모집인원의 20% 수준으로 유지할 것을 결의’한 것이다.
하지만 몸담고 있는 학과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중압감을 품고 다녀야 했던 광역모집 학생들의 불안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17학년도 광역모집은 폐지되었지만 16학번 학생들의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그들의 문제는 아직까지도 무엇 하나 속 시원히 해결된 것이 없다.

광역모집 폐지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2017학년도 광역모집 폐지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학생사회의 움직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 3월 실시된 제58대 서울캠 총학 재선거에 출마한 두 선거운동본부(이하 선본)가 내건 정책에는 모두 광역화와 관련된 공약이 포함돼 있었다. 당시 기호 1번 ‘응답하는’ 선본은 정시 모집단위 광역화 학생 의견수렴 및 대안요구를, 기호 2번 ‘뭐든지’ 선본은 모집단위 광역화 전면재검토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두 선본은 16학년도 광역화를 문제로 바라보고 대책을 강구하고자 하는 점에서 공통된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응답하는’ 총학은 4월 29일, 5월 17일 두 번에 걸쳐 정시 광역모집단위 입학학생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총학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본부에 적극적으로 전달할 것을 약속했다.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대(이하 사과대)와 인문대학(이하 인문대)도 각각 토론회와 의견수렴회를 열었다. 국어국문학과 학생회의 <중앙대학교는 모집단위 광역화를 폐지하라>, 중국어문학과 학생회/아시아문화학부 광역모집 단위 입학생 16인 일동의 <학교 본부는 모집단위 광역화의 실패를 인정하라> 등 서울캠 곳곳에 학생/학생회 차원에서 작성한 대자보들이 붙기도 했다. 또한 교무위원회 회의 전 사과대 소속 학생회장들은 본관 앞에서 광역화 폐지와 보상을 요구하는 피케팅을 벌였다.
5월 9일에는 2016학년도 1학기 서울캠 전체학생대표자회의가 개최되었다. 핵심 논의사항 중에는 17학년도 광역모집 폐지 요구가 포함돼 있었고, 참석대표자 217명 중 192명이라는 압도적인 수의 대표자들이 안건에 찬성했다. 한편 사과대 토론회와 총학 토론회 모두 김창일 교무처장이 거듭 자리했고, 학생들은 본부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특히 광역모집 학생들은 불안감이나 소외감, 광역화의 제도적·절차적 문제점에 대해 강하게 의견을 표출했다. ▲단과대 학생회장까지 협의체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각 과 학생회장 및 당사자들도 출석할 수 있도록 지시 및 논의해달라. ▲가전공과 다른 학과로 본전공이 배치될 시, 타학과의 전공 기초를 수강한 꼴이 된 1년에 대한 보상이 있는가. ▲과에서 했던 활동들이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을까봐 과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수시생들과 정시생들 사이에 묘한 거리감이 있다. ▲광역화의 취지는 전 학과모집단위를 탐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전공과목을 이수할 수 있게 했어야 한다. ▲광역화 학생들이 불안한 것은 정보의 부족 때문이다. ▲‘다빈치 교양특강’이 전공탐색을 위한 강의라고 하는데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와 같은 다양한 의견들이 몇 차례에 걸친 토론회를 통해 제기되었다.

여전히 산적한 문제들

5월 17일 제8차 교무위원회 회의에서는 기존 광역모집 신입생에 대한 대책에 새로운 조항이 추가되었다. 본래 원칙은 신입생들이 본전공을 선택할 때, 2015학년도 입시 기준 입학정원 100명 이상 학과의 경우 105%, 100명 미만 학과의 경우 110%를 수용 상한으로 규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단과대학별 독자적인 기준을 존중하고 권장하며, 대학 본부에서는 이를 지원’한다는 내용이 새롭게 의결된 것이다. 즉, 전공을 배정할 때 기존 원칙보다 단과대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얘기다.
단과대에 자율권이 주어지면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하나,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다. 일각에서는 단과대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으며, 단과대 내의 의사 결정 구조에서 학생들의 의견이 어디까지 반영될지도 확실치 않다. 또한 광역모집 학생들을 원하는 학과에 모두 배정하기 위해서는 강의실 확보나 교원 확충 등의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인프라 구축이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을지 속단할 수 없다. 특히 가전공 쏠림현상이 심한 학과의 경우 본전공 배치가 더욱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전공탐색의 기회 부여.’ 이는 광역화를 밀어붙일 때 학교 본부가 내세웠던 주된 근거다. 하지만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대로 이 목적은 전혀 기능하지 않았다. 전공 탐색은커녕 원하는 전공에서 더 멀어지는 현상이 초래됐다. 희망하는 학과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원하는 공부를 하는 것은 학생에게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광역모집 학생들은 광역화로 입학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권리를 박탈당했다. 그들은 원하는 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또다시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원치 않는 학과로 배정되었을 시 대책이나 보상에 대한 계획은 여전히 미비하다. 학교 본부에서 내세우는 대안은 전과나 복수전공 제도의 확대지만 이것은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전공진입 경쟁 뒤 또다시 전과/복수전공 경쟁에 내몰리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복수전공은 온전히 그 전공에 소속되는 것이 아니기에 소속감을 느끼기 어렵고 자치활동 참여에도 어려움이 수반된다.
학교 본부는 2017학년도에는 광역모집을 실시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2018학년도에는 다시 실시할 것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17학년에도 광역모집을 실시하는 공과대학과 창의ICT공과대학에서 충분한 학습을 거친 뒤 18학년에 재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산적해 있는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혼란은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광역화 실패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결국 문제의 원인은 충분한 준비와 숙의 없이 광역화를 밀어붙인 학교 본부의 무책임이다. 그 결과 피해는 모두 학생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본부는 교육 당사자인 학생들의 상황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매우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첫 중간고사에서부터 좋은 결과를 얻고 전공이 정해지기 전까지 성적 관리에 만전을 기하시어 입학 전에 계획한 대로 원하는 학과에 진입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중간고사 전날인 지난 4월 19일 김창일 교무처장이 광역모집 학생들에게 보낸 메일에 포함된 내용이다. 16학년도 광역화가 야기한 피해와 혼란은 명백한 본부의 과오다. 그 때문에 학생들은 전공 배정이라는 중대한 이슈를 걸고 원치 않는 학점 경쟁에 내몰리게 되었지만 본부는 이들이 느끼는 불안감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태도를 보였다.

“광역모집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원하는 데 모두 들어가려고 한다는 것이 지나친 점이 있다. 여러분의 요구가 다분히 일방적인 면이 있다.”

정시 광역모집단위 2차 대토론회 중 강태중 교학부총장이 한 말이다. 광역화 모집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왜 이제 와서 ‘떼를 쓰느냐’는 뉘앙스가 읽힌다. 하지만 지난 4월 20일부터 26일까지 총학에서 실시한 ‘광역화 입학 학생 실태조사’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중앙대에 지원할 때 광역화 모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냐’는 질문에 430명의 응답자 중 55%(236명)가 ‘잘 모르고 있었다’고 답했다. 이처럼 입시 요강에서 충분히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음에도 학생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본부의 태도는 매우 무책임하다. “광역모집 학생은 피해자기 때문에 충분히 보상해야 하는 건 당연한데 왜 그것을 지나친 요구라고 하시냐”는 한 학생의 지적에 그는 짧은 사과를 표했지만, 그의 발언은 광역모집 학생들의 처지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잘 보여준다.

“지금 광역화로 입학한 학생들은 시험대에 올라있다. (…) 학생들이 모든 짐을 진 채 시험대에 오르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잠망경>은 2016년 새내기특별호에 이렇게 적었다. 학생들이 광역화라는 시험대에 내몰린 사실 자체는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그 시험대에서 학생들이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도록 발판을 제공하는 것은, 광역화 실패에 책임이 있는 본부가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자 학생들에 대한 예의다. 본부는 이 최소한의 상식을 부디 지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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