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펄프의 비평] 대학의 주인이 학생이라고?

경경관

| 김펄프

 

 

310관 개관을 앞두고, 하나만 짚자. 신캠퍼스 추진, 광역화 모집, 프라임사업 지원. 최근 몇 년간 중앙대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 이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실패했다는 것이다. 하남이 백지화되고 검단마저 백지화됐다. 야심차게 추진한 광역화 모집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자학적 실험이었다. 요란했던 프라임사업은 민망하게도 탈락해버렸다.

실패는 몇 년 동안 꾸준히 반복돼 왔다. 하지만 대학본부는 실패에서 배우지 못했다. 아니, 배우지 않았다. 실패가 남긴 것은 오직 다음의 사실들이다. 학생과 교수들은 매번 경고했으며, 본부는 매번 실패했고, 그럼에도 매번 피해는 학생과 교수들의 몫이었다. 여기서 빠진 것은 다음의 과정이다.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실패를 만들어낸 과정을 반추하고, 다시 실패하지 않을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것.

우선 구체적인 실패들을 살펴보자. 신캠퍼스 사업을 볼까. 애초 신캠퍼스는 학문단위 구조조정의 핵심적인 명분이었다. 2010년 구조조정은 서울·안성캠퍼스의 유사학과를 통폐합하는 것과 학문단위를 다섯 개 계열로 나누는 것을 골자로 했다. 이렇게 정리한 다음에 신캠퍼스가 완공되면 학문단위를 재배치해서 캠퍼스 교육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남과 검단 신캠퍼스는 백지화됐다. 그사이 서울캠퍼스는 과부하에 걸렸다. 안성캠퍼스 유사학과를 통폐합해 그 정원을 서울로 이전한 탓이다. 본부는 신캠퍼스를 대체하기 위해 ‘국내 대학 최대규모의 건물’ 310관 건립을 추진했다. 대운동장까지 헐어가며 310관을 거대하게 지어야 했던 것은, 결국 신캠퍼스를 대신할 만큼의 크기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310관 건립은 검단캠퍼스 무산 이전에 시작됐지만, 이미 그때는 검단이 정체되며 결국 무산될 거라는 전망이 파다한 시점이었다.)

광역화 모집은 어떤가. 이것의 폐해는 지금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가장 절절하게 느끼고 있을 터다. 2015년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이 나왔을 때, 교수들과 학생들은 분명하게 지적했다. 그것은 제대로 된 교육을 만들어내지 못할 거라고. 수많은 부작용만 낳고 말 거라고. 이 같이 경고하던 때에는 그나마도 본부가 자신들의 정책을 끝까지 책임질 거라는 기대라도 있었다. 순진했다. 우리가 익히 봤듯, 대학본부는 그들이 모집한 광역화 신입생들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의식이 없다. 프라임사업은 어떤가. 이 역시 교수들과 학생들은 분명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대학본부는 고집스레 추진했다. 그리고 교육부는 중앙대를 뽑아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 실패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라. 실패가 드러난 뒤에 무엇이 있었나. 아무것도 없었다. 대학본부의 여전한 자신감만 있다. 대학본부는 신캠퍼스 실패와는 무관하다는 듯이 태연히 310관을 지어올리고는, 이것이 대학본부의 투자성과라며 공공연히 우쭐댄다. 17년도 광역화 모집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할 뿐, 공식적인 사과의 말과 실패의 인정 같은 것은 없다. 프라임사업 실패의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그 과정에서 제기된 비판들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는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런 비판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처럼.

대학본부가 유난히 뻔뻔해서일까? 그보다는 본부는 자신들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도 그들이 실패했다고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310관의 개관을 반긴다. 그것이 신캠퍼스 실패의 결과로서 지어졌으며 그 탓에 대운동장과 학생회관, 학생문화관이 헐려야 한다는 사실은, 아름답게 빛나는 310관의 자웅 앞에 잠시 묻어둬도 좋은 것이 된다. 과정이야 어찌 됐건 일단 좋은 결과가 만들어졌으니까. ‘17년도에는 광역화 모집을 폐지하겠다’는 발표 한 번에 광역화에 반대하던 학내의 목소리는 일거에 사라졌다. 결국 1년 만에 폐지시킬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한 대학본부에 대해 사과와 책임, 사후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낄 자리는 여기에 없다. 과정이야 어쨌건 대학본부가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준 지금, 그러한 목소리는 ‘정치적’인 요구로 치부된다. 프라임사업도 마찬가지다. 모집에서 탈락한 순간 학내에 나붙은 대자보들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됐다.

학생들이 반대했던 대학본부의 정책들은 결과만능주의의 산물이다. 과정이 얼마나 일방적이었건, 비판의 목소리가 얼마나 거셌건, 혹은 (중앙대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유죄판결이 보여주듯) 편법을 사용했건 ‘성과’만 내면 그만이라는 효율의 논리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러한 논리를 ‘일방적’이라고 비판했던 우리도 결과만능주의적이다. 310관이 완공되고 광역화 모집이 폐지되고 프라임사업에 탈락한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것들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이래서는 안 된다. 대학본부의 잘못된 논리에 반대하는 우리가 그들의 논리를 답습해선 안 된다. 이 지점을 극복하지 못하면 제2의 신캠퍼스가, 제2의 광역화 모집이, 제2의 프라임사업이, 우리가 대학을 다니는 동안 끝도 없이 반복될 것이다. 그때마다 지금 겪은 그 험난한 과정을 다시 겪을 것인가?

사태가 끝났다고 보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한 발자국 더 내딛어야 한다. 실패에 대한 책임을 대학본부에 묻자는 거다.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고, 책임자를 문책하자는 거다. 필요하다면 두 번 다시 본부가 멋대로 할 수 없도록 제도를 고치자고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약간의 의지만 있으면 된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그런다고 대학본부가 사과하고 책임자를 문책할까요?” 아마 안 할 거다. 하지만 그것을 요구하는 자체가 하나의 과정일 수 있다. 일종의 ‘규정 내리기’다. 사과를 요구한다는 것은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이며, 책임자를 문책하라는 것은 ‘실패하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것이며, 제도를 고치자고 얘기하는 것은 ‘이 실패는 제도적인 것이므로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학본부는 실패의 과정을 바보같이 반복한다. 지금까지 그래오지 않았나.

다행히 교수들이 첫 걸음을 뗐다. 6월 23일, 교수협의회가 이용구 전 총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용구 전 총장이 지난 1월 총장직을 사임하면서 교수들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자신의 임기 중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 추진으로 인한 학내 갈등의 원인을 교수들에게 돌린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광역화 모집을 골자로 하는 이용구 전 총장의 구조조정 계획이 숱한 부작용만 일으킨 것을 알고 있다. 빤히 보이는 문제점을 미리 경고한 교수들이 학내 갈등의 원인일 수 있을까. 그러한 계획을 일방적으로 추진한 대학본부와 이용구 전 총장이 바로 학내 갈등의 1차 원인임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래서 교수들은 이용구 전 총장에게 메일에 대한 사과를 요청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법적 고소라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미 총장직을 관둔 이용구 전 총장을 굳이 고소한 것은, 이 조치가 이후 총장직을 맡을ㅡ그리고 이사회 임명제에서 재단의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ㅡ 이들에 대한 경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우리도 가만히 있지 말자. 책임을 묻고 사과를 요구하고 시스템을 바꾸라고 대학본부를 압박하자. 실패의 피해자로만 남아 있지 말고, 다음의 실패를 막아낼 적극적인 ‘주인’이 되자. 대학의 주인이 학생이라는 말은, 우리 스스로 주인이기를 택할 때만 유효한 말이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