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메갈’이라는 기표와 페미니즘 비난의 우회로

 

이제는 그 결을 다 포괄하기 어려운 수많은 움직임들을 ‘메갈’로 뭉뚱그림으로써 ‘이대-여성부-꼴페미’의 곁에 하나의 호명이 더해졌다.

기고 메갈리안| 이상

 

1990년대 말 명명조차 되지 못한 여성혐오가 사회에 공기처럼 존재할 때, 군 가산점제 위헌 판결은 PC통신이라는 매체 환경과 만나며 온라인 여성혐오의 서막을 알렸다. 기존에 존재하던 여성혐오적 표현과 지칭들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고 개똥녀, 된장녀, 김치녀 등 ‘xx녀’, 맘충, 로린이, 메퇘지 등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새로운 언어들이 발생되고 확산됐다.
여성혐오 표현이 다양하게 확산된 것에 비해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주체들에 대한 프레임은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도 ‘이대녀’, ‘여성부’, ‘꼴페미’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이 모호한 세 집단이 관념 속에서든 현실 속에서든 가장 가시화된 집단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호명을 이용하는 이들이 사실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분토론 같은 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돌려야만 ‘페미니스트’를 만날 수 있었던, 대중문화와 일상세계에서 페미니스트와 상시적으로 접촉하고 대립하지 않을 수 있었던 시절이라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여성혐오의 이슈화와 메갈리아의 등장
2015년 여성혐오의 이슈화와 메갈리아의 등장은 적어도 대중문화와 일상세계의 측면에서는 균열을 만들어냈다. 공기처럼 존재하고 당연하게 여겨졌던 언어와 행동들에 ‘여성혐오’라는 명명이 이루어졌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났다.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SNS 미디어 환경은 많은 이들이 어디 찾아가야만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던 ‘페미니스트’가 사실 내 옆에 내 앞에 이렇게나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페미니즘을 만나고 코르셋을 벗고 젠더 권력을 성찰하기도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여전히 페미니즘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이때 약 10여년 만에 정체된 호명에서 변화가 나타난다. 이제는 그 결을 다 포괄하기 어려운 수많은 움직임들을 ‘메갈’로 뭉뚱그림으로써 ‘이대-여성부-꼴페미’의 곁에 하나의 호명이 더해졌다.

 

남성중심적·여성혐오적 인터넷 문화와 담론의 흐름 속에서 메갈리아 형성이 갖는 의미
잠시 메갈리아에 대하여 이야기하자면, 메갈리아의 형성은 한 가지 명확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온라인 담론장은 형성시기부터 지금까지도 남성중심적이고 여성혐오적이다. 쉽게 접속할 수 있는 포털사이트 댓글에서부터 DC와 같은 남성 젠더화된 커뮤니티들의 게시물 등 여성들은 인터넷 어디서든 여성혐오와 마주해야 했다. 윤보라(2013)는 여성 전용 커뮤니티가 특징으로 하는 폐쇄성의 원인으로 이러한 여성혐오적 인터넷 문화를 지적한다. (참고:윤보라, “일베와 여성혐오 : 일베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진보평론 57호, 2013) 대다수 여성들은 사이버 공간의 여성혐오를 억지로 참아 내거나 폐쇄적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메갈리아의 등장은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폐쇄적이고 비공개적인 사이트가 아니라 공개된 커뮤니티에서 대부분의 거대 공개 커뮤니티들이 따랐던 남성 젠더화라는 공식을 내던지고 여성혐오 반대라는 포괄적인 가치를 느슨하게라도 합의하고 문제제기하며 기존에 여성들에게 던져졌던 무수한 혐오표현을 그대로 되돌려주었기(미러링) 때문이다. SNS 미디어 환경은 보다 불특정하고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그러한 메시지가 도달될 수 있게 만들었다. 한국사회의 남성중심적여성혐오적인 인터넷 문화와 담론에서 이는 대단히 유의미한 지점이다. (메갈리아의 다른 의의나 참여자들의 인식 변화 등 구체적이고 질적인 측면에서의 의미는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범위의 밖에 있다.)
메갈리아가 단일한 운동단위였다면, ‘미러링으로 문제제기에 성공했으니 다음에는 무엇을 선택할까’와 같은 방식으로 전략을 고민하고 적용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혹자들이 던지는 ‘메갈리아는 이러저러해야 했어’와 같은 비판 내지는 비난이 부분적으로는 타당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메갈리아는 월스트리트점령운동의 형태와 보다 가까운,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부정의에 대한 감각이 특정 사건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광범하고 불특정한 다수가 그 집단에 참여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중심이 없는 것이 한계라고 말한다면, 관점에 따라서는 그 중심 없음이 운동 확장의 원동력일 수도 있다.
‘메갈리아’는 몰카, 소라넷 폐쇄, 여성혐오 연예인의 공론화 등 다양한 문제에서 중요한 기여를 했다. 또한 점차 ‘메갈’이라고 통칭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결로 확장되어갔다. 메갈리아 활동을 통해 인식의 변화를 얻은 개인부터 다양한 페이스북 페이지, 커뮤니티가 형성되기도 했다. 기존에 활동하던 여성단체들과 새롭게 탄생한 단체들을 포함하여 페미니즘 담론과 운동 전반은 확장되고 있다.

 

‘메갈’이라는 기표와 페미니즘 비난의 우회로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포털사이트 댓글과 SNS에서 다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결들을 ‘메갈’로 통칭하고 비난한다. 그들이 그 모든 결들을 ‘메갈’로 뭉뚱그리는 가장 큰 이유는 페미니즘에 대한 무지다. ‘메갈’은 그저 ‘이대-여성부-꼴페미’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지, 페미니즘을 비난하려는 목적을 지닌 이들이 페미니즘에 무지하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대중문화와 일상세계 속에서의 페미니즘 운동을 ‘메갈’로 통칭하고 여혐의 쌍으로서 남혐을 가져오고 ‘메갈=일베’의 도식을 세울 수밖에 없는 것은 ‘메갈’이라는 상징이 갖는 강한 인상과 페미니즘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리스크를 줄이기 위함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이나 성평등 그 자체를 부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메갈’(‘가짜 페미니즘’)이라는 우회로를 선택하는 것이다.
광범위한 페미니즘 운동을 ‘메갈’로 통칭하는 것은 그 장 안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나 한계들을 모두 ‘메갈’이라는 자극적인 기표에 우겨넣기 위함이기도 하다. 모든 운동에는 문제나 한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비난하는 이들에게 그것의 시사점이나 해소는 아무런 중요성을 갖지 않으며 오직 비난을 위한 자원으로만 간주된다.
몇몇 자극적 사례를 가져와 대중문화와 일상세계 속에서 확산되고 있는 페미니즘 운동을 폭력적으로 뭉뚱그려 ‘메갈’ 낙인을 찍는다. 이는 페미니즘 그 자체를 비난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모호하기 짝이 없는 ‘메갈’로 번역하고 ‘남혐’, ‘일베랑 똑같다’, ‘페미나치’와 같은 비난을 그 기표에 끈덕지게 부착시켜 비정상으로 축출함으로써 ‘진짜 페미니즘’과 구분되는 ‘가짜 페미니즘’으로 만들고 혐오함으로써 먼 우회로를 돌아 페미니즘 비난에 도달하는 것이다.

‘진짜 페미니즘’과 ‘가짜 페미니즘’, 이분법이라는 오래된 전략

과거와 비교하면 분명 차이는 있다. 적잖은 이들이 페미니즘 자체를 비난하기보다는 ‘진짜 페미니즘’을 운운하며 ‘메갈’ 낙인을 찍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들이 말하는 ‘메갈’의 뒤편에는 페미니즘이 조용하게 숨어있으며 페미니즘을 욕하고 싶어 미치겠지만, 이제 페미니즘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쉽게 용인되기 어려운 환경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자체를 비난하는 것, 성평등(그들의 언어로는 ‘양성평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대단히 ‘구린’ 일이 되어버렸다는 것은 긍정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페미니즘 텍스트를 한 글자도 읽어보지 않은 이들이 ‘진짜 페미니즘’을 경유해서야만 ‘메갈’(=‘가짜 페미니즘’)을 비난할 수 있게 된 것은 페미니즘이 사회에 안착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페미니즘 운동과 연구, 2015년을 기점으로 확산된 대중문화와 일상세계 차원에서의 페미니즘의 확산이 이뤄낸 성과인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의 ‘메갈 혐오’는 2015년부터 급격하게 확산된 페미니즘 담론과 운동의 확산에 대한 저항 전략이자 반발(backlash)로 읽혀진다. 페미니즘의 폭발적인 확산과 미러링공론화 등의 활동에 혼란스러워하던 이들이 ‘메갈’이라는 기표를 중심으로 견고한 반대진영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페미니즘에서 ‘메갈’로 전선을 한 보 물리고 또 한 번 과거와 동일한 전략을 이용하고자 하는 듯하다.
‘진짜 여성’과 ‘xx녀’는 다르다는 그들의 혐오가 사실은 모든 여성에게 향했던 것처럼, ‘진짜 페미니즘’과 ‘메갈’(=‘가짜 페미니즘’)을 구분하는 그들의 비난 역시 기실 페미니즘 일반을 향한 것이다. ‘진짜 페미니즘’과 ‘메갈’의 구분과 혐오는 ‘보통 여자’와 ‘xx녀’의 구분이 그랬던 것처럼 억압 대상의 분리와 관리를 용이하게 만든다. ‘xx녀’가 모든 여성을 억압하는 코르셋이 되었듯, 이들은 다시 한 번 ‘메갈’이라는 기표를 통해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능동적 주체들을 옥죄고자 한다.
최근 페미니즘과 관련된 모든 것을 ‘메갈’이라는 기표로 환원하는 모습들은 그들이 ‘페미니즘’이라는 기표에 부정적인 것들을 부착시켰던 전략의 연속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페미니즘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메갈’이라는 기표는 손쉬운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되며 적은 노력으로 누군가의 직업 활동까지도 제약할 수 있는 놀이가 되었다. 여혐의 대립쌍으로 ‘남혐’을 소환하고 ‘메갈=일베’ 도식을 재생산하는 이들은 이제 넥슨 불매 운동에 맞서 이를 지지하는 웹툰 작가나 그들이 속해 있는 사이트를 불매하는 방법으로 응수한다. 페미니즘의 확산 못지않게 이에 저항하는 이들의 반발도 커질 것이다. 이 거대한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는 우리 앞에 놓인 정말 중요한 질문이다.

‘진짜 페미니즘’ 구출기를 가장한 페미니즘 혐오
조금 돌아가 정리하자면, 당신이 ‘메갈’이라고 퉁치는 그것은 더 이상 단일한 호명으로 다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해졌으며, ‘진짜 페미니즘’과 ‘가짜 페미니즘’을 구분하려는 그 알량한 시도가 기실 먼 길을 우회해 페미니즘을 비판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성혐오가 싫어요’, ‘양성평등 지지해요’라는 알리바이를 앞세워서 말이다.
정말 당연하게도 메갈리아 커뮤니티에는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중심이 명확한 집단도 수많은 한계와 문제에 부딪히는데 중심 없는 운동에 한계와 문제가 없을 리 없다. 또한 중심 없음을 특징으로 하는 커뮤니티에는 문제제기에 따른 책임성을 요구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혹자는 ‘메갈’에 대한 비판과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메갈’을 비판한다고 말하는 이들의 대다수는 명확히 식별 가능한 주체가 아니라 최근의 페미니즘 이슈와 담론, 운동을 모호하게 뒤섞은 그 자체로도 불명확한 ‘메갈’을 비난하고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가짜 페미니즘’으로서의 ‘메갈’을 비판하고 ‘진짜 페미니즘’을 구제하고자 하는 노력보다는 ‘메갈’을 경유함으로써 페미니즘 일반을 비난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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