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펄프의 비평] 합법이라는 환상, 학칙이라는 함정

운동이라고 별 게 아니다.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내라고 학생들이 집단으로 모여서 대학본부에게 강력히 요구하는 것, 그게 운동이고, 우리는 그것을 해야 한다.

| 김펄프

합법적이라고 해서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합법적인 것은 민주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말일까. 일단, 아래 인용구를 읽어보자.

“독단적으로 결정한 사안이 아닙니다. 본교는 촉박한 일정이었지만, 여러 절차와 논의를 거쳐 결정했습니다. 처장회의, 학장회의, 평의원회, 교무회의, 법인이사회를 거쳐서 신중하게 결정했습니다.”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이 ‘이대 사태’와 관련해 7월29일 발표한 ‘미래 라이프 대학 신설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가져온 인용구다. 당신은 이 인용구를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는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저 말은 표면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좀 더 들춰보면 아주 기만적인 말이다.

 

 많이 보도된 내용이니 쉽게 찾아볼 수 있겠지만,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교육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에 이화여대가 지원하여 선정됐다. 이화여대는 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너무나 당연하게도 학생들과 소통하지 않았고, 이에 학생들이 반발하면서 7월28일부터 본관을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이 일이 본격적으로 ‘사태’의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은 농성 삼일째인 7월30일. 경찰 1600여명이 교내로 진입해 학생들을 끌어냈다. 대학에 무장한 경찰이 들이닥친 이 사건이 크게 보도돼 이화여대의 상황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후 졸업생들을 포함해 5000여명이 교내에서 반대시위를 벌이는 등의 경과를 거쳤다. 그 결과 본부는 사업을 철회했고, 현재(12일)까지 농성은 지속되고 있다. 요구사항은 총장의 사퇴다.

 

총장이 아니라 대학본부다

 왜 기만적이라고 하는 걸까. 저것들은 굳이 따지자면 ‘요식행위’에 가까운 절차다. 여기서부터는 중앙대의 경우로 설명하는 게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데 좀 더 수월할 것 같다. 어차피 사립대학의 의결구조는 다 거기서 거기라서, 특별히 맥락이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이대 총장이 거쳤다는 “처장회의, 학장회의, 교무회의”에 참석하는 자들은 누굴까. 보직교수와 직원들이다. 보직교수는 누가 임명할까. 총장이다. 직원들의 고용주는? 총장이다. 총장이 임명하고 고용한 이들이 총장이 정한 방향과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그렇다면 참 좋겠지만, 우리가 중앙대에서 익히 본 바, 그런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이러한 절차들은 “독단적으로 결정한 사안이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물론 총장 개인이 독단적으로 결정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총장”을 호명했을 때 그것이 “김창수 총장”을 의미하는가? 그렇지 않다. 총장은 학교본부의 대표자이고, 학생들이 “총장”을 호명했을 때 그것은 “대학본부의 대표자”를 부른 것이다. 즉 여기서 “독단적으로 결정”한 주체는 총장 개인이 아니라 대학본부를 일컫는다. 보직교수와 직원은 대학본부 소속이므로, 이 사안은 여전히 대학본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사안이다. (이러한 설명이 중앙대학생인 우리에겐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에게 “대학본부의 대표자”는 “이사장”이라고 생각되는 경향이 있다. 박용성 전 이사장이 사퇴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그의 그림자가 이 학교에 드리워 있다.)

 

의결기구도 아닌 심의기구로 뭘 하라고

 최경희 총장은 평의원회 얘기도 했다. 공식 명칭 대학평의원회, 의결권이 주어지지 않은 심의기구다. 사학 민주화의 산실로 2005년부터 사립학교법에 명시된 기구다. 하지만 2013년 5월 이후 교육부가 평의원회를 설치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천명한 뒤에야 기구를 마련한 대학(이화여대도 그 가운데 하나다)이 있을 정도로 대학본부의 평의원회에 대한 이해는 현저히 낮다. 그나마 중앙대의 경우는 2006년부터 마련해 두었으나, 그렇다고 그 위상이 존중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중앙대는 “의결권 없는 심의기구”가 얼마나 무력한지 선도적으로 경험한 대학이다.

 

 중앙대 평의원회에서 학생대표로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은 총 세 명이다. 서울캠 총학, 안성캠 총학, 대학원 총학. (이 지점에서 중앙대는 학생평의원이 1명인 이대에 비해 사정이 나은 편이다.) 전체 위원은 15명이다. 그러니까 학생대표의 비율은 15분의 3, 20%다. 심의기구인 평의원회에서조차 학생의 의견이 갖는 비중이 20%다. 교수평의원은 일곱 자리가 보장된다. 나머지 다섯 자리 가운데 세 자리는 직원에게, 두 자리는 동문 등에게 보장된다. 현재 중앙대 동문 등 평의원은 경영경제대학 동창회장 이창수씨와 한진해운 사외이사 공용표씨가 맡고 있다.

 

 2013년 비교민속학과를 비롯한 4개 학과를 폐과시키는 구조조정 당시, 학생들이 만든 대응기구였던 공동대책위원회가 세웠던 전략은 이랬다. “대학평의원회의 심의를 거친 후” 학칙개정을 할 수 있다는 학칙 상 규정을 활용해, 구조조정 계획안에 대한 심의를 대학평의원회에서 무기한 보류시켜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다행히 당시 교수 평의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해 이 전략을 실제로 실행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심의를 보류하거나 말거나. 대학본부는 다음 단계를 쭉쭉 밟아 이사회 의결까지 한 큐로 달렸다. 이때 학생들이 가처분 소송을 냈다. 2013년 8월, 기각됐다. “대학평의원회는 의결기구가 아닌 심의기구인데 평의원회의 심의 거부로 학칙의 효력이 없다고 한다면 심의기구에 의해 학칙개정을 아예 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심의권 남용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이것이 판결의 요지였다. “의결기구가 아닌 심의기구”이기 때문에 학칙개정에 대해 유의미한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장일치 거수기 법인이사회

 법인이사회도 거쳤단다. 정말 대단한 “논의”를 거치신 것 같다. 이사회가 어떤 식으로 회의를 진행하는지 궁금한 사람은 꼭 회의록을 구해서 읽어보시길 권한다.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A가 안건을 설명하다. B가 원안대로 의결할 것을 발의하다. C가 동의하다. D가 제청하다.” 그 다음에 만장일치로 통과된다. 만장일치가 아니었던 적은, 적어도 내가 본 바로는 없었다. 그러니까 거칠게 말하자면 법인이사회는 ‘허울 좋은 거수기’에 불과하다. 그럴 수밖에. 이사회 구성을 살펴보시라. ‘교육경험’을 갖춘 이사는 총장과 (특이하게도) 이사장을 제외하면 두 명밖엔 없다. 그렇다면 12명의 이사회에서 대다수는 뭐하는 사람들일까. 대체로 어느 어느 기업 회장님들이다.
 물론, 실제 회의가 저렇게 단순하게 진행되지는 않고, 회의록이 간략하게 기록될 뿐이라고 반론을 펼칠 수도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알 게 뭔가? 그 회의에 참여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데 말이다. 참여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립학교법은 사학비리를 막기 위해 ‘개방이사제’를 두고 있다. 하지만 학생이 개방이사로 참여할 가능성은 한없이 0으로 수렴한다. 중앙대의 경우 12명의 이사 중 3명이 개방이사인데, 이 개방이사는 개방이사추천위원회가 추천한다. 그런데 이 추천위원회의 구성을 보자. 총 5명인데, 법인에서 2명을 추천하고, 평의원회에서 2명을, 초․중․고등학교 학교운영위원회에서 1명을 추천한다. 평의원회에서 학생평의원의 비율이 20%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해보자. 이미 추천위원회 자체가 법인으로 기울어져 있다.

 

법 밖으로 나와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은 사립학교법이 규정한 범위 안에서 ‘합법적’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것이 ‘민주적’이었다고 말하려면, 학생은 애초에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정말로 그런가? 학생인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 같은 절차를 ‘민주적’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합법적’인 것이 아니라 ‘민주적’인 것을 좇아야 한다. 그리고 ‘민주적’인 것이 ‘합법적’인 것이 되도록 한다면 금상첨화겠다.
 이 절차를 개정해서 민주적으로 만들면 참 좋겠지만, 학칙개정을 위한 안건발의는 대학본부만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총학생회 회칙이 얼마나 민주적으로 설계됐는지를 알 수 있다. 회칙에 따르면, 전체 학생회원 중 1/500 이상에 해당하는 회원이 연서명하면 개정안건을 발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리고 설령 안건을 발의한다 해도 다시 위에서 언급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가시밭길을 넘어 지뢰밭길이다. 요컨대 이런 것이다. 대학본부가 학칙을 만들고, 대학본부가 학칙을 집행하고, 대학본부가 학칙을 개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롭게 절차에 따라서 항의하라”는 말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뭘 해야 할까. 아무런 권한 없는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게 뭘까. 이상적으로는 상위법인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는 것이 정답이다. 심의기구인데다 20%만큼만 참여할 수 있는 대학평의원회이지만, 그 정도의 숨통이라도 트게 한 것은 2005년 참여정부 시절 사립학교법을 개정해서다. 하지만 지금 정부에서 그 같은 변화를 기대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학생들이 사립학교법 개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쉽지 않다. 결국 ‘운동’이다. 합법의 장에 우리가 참여할 숨구멍이 없다면, 우리는 그 법 밖에서 숨구멍을 만들어내는 수밖엔 없다. 운동이라고 별 게 아니다.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내라고 학생들이 집단으로 모여서 대학본부에게 강력히 요구하는 것, 그게 운동이고, 우리는 그것을 해야 한다.

 

[사진출처 :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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