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펄프의 비평] 당신은 살아있는 인간인가

대표자들의 자존심이 무너졌을 때 대표자들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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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펄프

“살아있는 인간은 빼앗으면 화내고, 맞으면 맞서서 싸웁니다!”
웹툰 <송곳>에 나오는 대사다. 오늘날 ‘자존심’의 의미를 이보다 분명하게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단순히 재산을 빼앗기고 물리적으로 맞는 경우뿐만 아니라, 누군가 ‘나의 것’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모든 경우가 해당할 것이다. 예컨대 누군가 나를 권리 가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경우가 있겠다.
최근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이 자존심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여름 시작해 아직까지도 싸우고 있는 이화여대가 그렇고, 햇수로 2년 가까이 싸우고 있는 동국대가 그렇고, 올해부터 싸움의 고삐를 당기고 있는 서울대가 그렇다. 세 학교는 2학기 들어 연달아 전체학생총회(이하 총회)를 성사시켰다. 참여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2학기에 총회를 성사시켰다는 점에서 학생들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이화여대는 잘 알려졌다시피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싸워왔다. 하지만 총장은 버텼고, 이에 항의하기 위해 이대 학생들은 총회에 몰려들었다. 서울대는 일방적으로 시흥캠퍼스를 추진하는 학교본부에 맞서 싸우고 있다. 총학생회를 비롯해 학생대표자들이 꾸준히 대화를 요구해왔으나 성낙인 총장은 무시로 일관해왔다. 동국대는 논문표절이 적발된 보광 총장의 사퇴와 종단개입 반대를 요구하며 오랜 투쟁을 이어왔다. 하지만 보광 스님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 대학의 학생들이 총회를 성사시킨 데는 이 같은 맥락들이 있다. 학생들을 ‘권리 가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학교본부들, 그리고 이에 자존심 걸고 몰려나온 학생들.

최대 이벤트 전체학생총회
전체학생총회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다소 딱딱하게 학생회칙을 인용하자면, 총회는 “본회(총학생회)의 활동에 관한 최고 의결권을 갖는다.” 쉽게 말해 학생들의 의사를 가장 강력하게 반영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장치다. 원칙적으로 모든 학생 회원이 1인 1표의 의결권을 가지며 “회원 전체에게 관련된 중대한 사항을 토의, 결정한다.” (부)총학생회장에 대한 탄핵도 결정할 수 있다. 중앙대의 경우 전체 학생 회원 가운데 1/8 이상(이 비율은 각 대학마다 다르다)이 참석해야 총회가 성사된다.
이처럼 중요한 장치인데도 중앙대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학생들은 총회에 대해 처음 들어봤을지도 모른다. 그럴 만도 하다. 2013년 이후 개최된 적이 없다. 구조조정의 전조가 짙게 깔리던 2014년에도,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이 학교를 뒤집어놓은 2015년에도, ‘프라임 사업’이 학생들을 사분오열시킨 2016년에도 총학생회는 총회를 개최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준비하는 데 수고가 많이 들고, 개최해도 성사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각각의 이슈들을 학교본부와 원만하게 협상해 해결할 일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개최되고, 심지어 7년 만에 성사까지 된 것이 2013년이다. 4개 학과(비교민속·가족복지·아동복지·청소년)에 대한 폐지 이슈가 있었다. 2013년 이전에 마지막으로 개최된 것은 2010년이었다. 당시까지는 ‘새 학기가 시작되면 총회를 연다’는 것이 일종의 상식인 시기였다. 총회는 여러모로 학생사회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 학생들의 단결된 힘을 과시함으로써 학생과 학교본부 사이의 권력균형을 맞추고, 총회라는 ‘빅 이벤트’를 통해 학생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다시 말해 총회는 형식적으로는 토론의 장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무력시위의 장이다. 총회를 마친 서울대·동국대 학생들이 일제히 본관으로 향해 시위를 벌인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총회에 상정된 안건이 부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미 총회를 소집한 시점에 안건 가결은 정해진 것이며, 중요한 것은 오직 총회를 성사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므로 총회 개최가 더 이상 상식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은 위축된 학생사회의 현실을 방증하는 것이면서, 흐름을 반전시킬 계기가 마련되지 못함을 뜻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전학대회가 달라졌다
총회가 사실상 사라지자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가 최고의결기구 노릇을 했다. 회칙상 전학대회는 “학생총회가 열리지 못할 경우 최고 결정권을 위임받아 활동”하는 기구다. 즉 당 학기 총회가 성사되지 못했을 경우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임원”들이 모여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기구다. 하지만 중앙대에서는 학생총회가 열리지 ‘않아’ 왔으니 매 학기마다 전학대회가 개최되어 왔다. “중대한 사항” 전부를 논의하는 총회에 비해 격이 낮기 때문에, 전학대회에서는 “본회 활동의 총 노선 및 주요 사업 승인”이나 “본회 예·결산의 심의 및 의결” 같은 구체적인 내용들만을 의결할 수 있다.
하지만 활용에 따라 전학대회도 ‘한가락’ 하는 기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10월13일 열린 2016년 2학기 전학대회가 증명했다. 이 회의에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부 학생회장이 추가 안건을 발의했다. ‘중앙문화, 녹지 공간 확보를 위한 본부 측에 의견표출 및 중운위 성명서’라는 타이틀의 이 안건은 당초 전학대회 공고에는 없던 내용이다. 학생회칙은 개회 전 “재적 대표자 1/5 이상의 연서” 또는 “회원 300인 이상의 연서”를 통한 추가 안건 상정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 안건은 재적 인원 182명 중 147명이 찬성해 통과됐다.
교지편집위원회(중앙문화·녹지, 이하 교편위)는 현재 편집실이 있는 학생문화관의 철거 이후 새 공간을 배정받지 못했다. 이 문제로 학교본부와 꾸준히 면담해왔으나, 행정부총장이 “제도권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공간을 주기 힘들다”는 말로 협상을 거부한 뒤 면담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교편위 성명서) 이런 상황에 대해 전체학생대표자들이 목소리 내주기를 요청한 것이다. 회칙이 보장하는 민주적 절차를 능동적으로 활용한 ‘한 수’다. 사실 전학대회는 지금까지 관행적인 면이 강했다. 중앙운영위원회가 상정한 몇몇 안건들을 서둘러 해치우고 몇 시간 만에 폐회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1학기에는 새벽까지 예산안에 대한 치열한 심의를 이어가더니, 2학기에는 추가 안건을 상정하고 통과시키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자들의 자존심은 어떤가
하지만 전학대회가 제 기능을 다했는지를 판단하긴 아직 이르다. 안건상정·가결보다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다.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대학을 다닌 필자가 지금까지 봐온 결과, 학교본부는 성명서 정도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중앙운영위원회가 전학대회에서 발의하고 통과시킨 성명서가 여럿 있었지만, 학교본부가 그 내용을 반영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심지어 2013년 총회에서 가결한 요구사항도 이행하지 않았다. 이처럼 학교본부가 학생사회의 자존심을 무너뜨렸지만, 지금껏 여기에 제대로 대응한 총학생회는 거의 없었다.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기 일쑤였다. 오직 학생총회/전학대회의 의결까지가 자신들의 역할이라는 듯이.
이렇게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학대회에서의 추가 안건은 총회에서의 안건보다도 더욱 강력한 정당성을 지니는 것이라고. 학생사회의 총의가 이미 모인 상태에서 형식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총회라면, 더 이상 학생사회에 총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전학대회가 열린다. 수천 명이 모이는 총회에서는 치열한 토론이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300명이 채 안 되는 전학대회에서는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추가 안건이다. 돌발적으로 제시된 안건이 대표자들의 토론을 거쳐 가결됐다는 것, 이보다 더 정당성이 강력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올해는 좀 달라야 한다. 전학대회의 풍경이 달라진 것처럼 말이다. 교편위 공간확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학생 대표자들은 이를 자신들의 ‘대표성’이 무시당한 것으로 규정하고 ‘자존심’을 발휘해야 한다. (물론 학교본부가 학생 대표자들의 목소리를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대표자들의 자존심이 무너졌을 때 대표자들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일어나지 않은 일이고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일이지만, 노파심에 이렇게 미리 적는다. 당신들의 자존심을 너무 쉽게 저버리지 말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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