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환의 무방비 도시] 공포를 먹고 산다

나는 군대에서 공포에 굴복했다. 복무 기간 중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지만 한마디도 못 했다. 공포에 벌벌 떨었던 시간만큼 부끄러운 것도 없었다. 그 공포는 여전히 순간순간 나를 엄습한다. 나의 글들을 보는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내 미래에 불이익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인의 입을 틀어막아 생존하는 권력이라면, 그 권력은 벌거벗겨야 할 대상이다. 결국 공포를 사라지게 만드는 주체는 공포를 이겨낸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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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주환

 

“너는 너의 사상이 불온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나?”

입대한 지 4개월 된 신병에게 대대장이 한 첫 질문이었다. 입대 전에 갔던 반값등록금 시위 현장에서 찍힌 사진 등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윽고 그는 나의 페이스북 글들을 운운하며 나를 ‘불온한 인간’으로 몰고 갔다. 경고성 발언도 잊지 않았다. 군대에서 정치적 발언 등을 했다간 영창이 아니라 교도소를 갈 수도 있다는, 결국 말조심하라는 이야기였다. 이미 어떤 부대에서는 정치적 발언을 이유로 징계를 받은 병사가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대장과의 면담 며칠 후 첫 휴가를 나갔다. 군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영화들을 하루에 몰아봤다. 그중에는 독일 영화 <타인의 삶>이 있었다. 영화에는 세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했다. 동독의 비밀경찰 비즐러와 반정부 성향의 시인 드라이만, 그의 부인이자 배우인 크리스타. 영화는 전반적으로 비즐러가 드라이만의 집 곳곳에 도청장치를 설치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상황에서 전개됐다.

드라이만의 모든 말과 행동을 감청하고 기록하는 비즐러의 모습을 보고는 대대장이 떠올랐다. 그가 혹여 나를 감시하려 하지는 않을까. 동기나 선임들을 불러 내가 무슨 발언을 했는지 캐묻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그러면서 대대장이 언급했던 ‘교도소행’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후 나는 군대에서 말을 조심했다. 뉴스를 멀리했고 정치적 이슈에 입을 다물었다. 예전에 올렸던 SNS의 글들을 지웠다. 언제 어디서 대대장이 나를 감시하고 있을지 몰랐으므로 책잡힐 일을 만들지 않는 것밖에 도리가 없었다.

 

공포팔이라는 전략

그것은 확실히 공포였다. 공포는 가시적인 위험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이다.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대상에 대한 두려움인 불안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자동차를 타고 가며 ‘혹시 사고가 나면 어떡하지…’라고 상상할 때는 불안감이 든다. 반면 당장 눈앞에 달려오는 자동차를 지각할 때는 공포가 엄습한다.

<타인의 삶>에서 동독 정부는 불온한 작품을 썼다는 빌미로 노(老) 극작가인 예르스카에게 집필 정지 처분을 내렸다. 작가에게 펜을 들지 말라고 하는 조치는 작가 사회에 그야말로 공포 자체였다. 많은 작가들이 몸을 사린 것은 당연했다. 이후 동독 정부가 할 일은 쉬웠다. 몸을 사리지 않는 드라이만들을 비즐러와 같은 첨병을 이용해 걸러내기만 하면 그뿐이었다.

대대장은 이러한 방식의 내부에 있었다. 이미 국가는 여러 명의 병사를 영창이나 교도소로 보내 이를 본보기로 삼아 군대 사회에 공포를 심어줬다. 그리고는 대대장 등을 통해 나와 같은 병사를 감시하고 걸러내려 했다. 덕분에 내게 정치적 발언은 곧 교도소행이라는 등식은 추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이처럼 공포를 주입하는 것은 권력이 반항을 장기적으로 잠재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는 그 권력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드러내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군대는 행정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문제투성이다. 그러니 공포를 이용하지 않고선 병사의 사상을 통제할 수 없다.

박근혜 정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저항의 원인을 해결할 능력이 없으니 공포로라도 저항을 잠재우려 한다. 백남기 씨가 사망한 원인을 끝내 인정하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백남기 씨 사망의 주범인 정부가 사과도 하지 않는 모습은 우습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시무시하다.

이제 정부는 ‘불법 시위’에 참여했다며 나를 실존적으로 위협할 수 있다. 경찰의 채증 건수는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증가했고 진압 강도는 날로 거세지고 있다. 저항 세력에게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여론을 돌아 세우려 한다. 아무리 굳센 의지라도 날로 심해지는 위협 앞에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백남기 씨가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이후 열린 2차 민중총궐기가 얼마나 반쪽짜리 시위로 끝나버렸는지는 이 정부가 실행하는 ‘공포팔이’가 꽤나 효과적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이 정부는 세월호 유족을 소외시키고 사드 배치 반대 목소리를 묵살하는 등의 숱한 과정을 거치며 공포를 팔아왔다.

동시에 이 정부는 확실한 비즐러들을 거느리고 있다. 검찰과 경찰, 국정원, 새누리당, 전경련, 비선실세… 열거하기도 힘들다. 그들은 대통령을 위해 곡기까지 끊으며 없는 간첩도 창조해낸다. 별다른 지시가 없더라도 알아서 정권에 해가 될 요소들을 축출한다. 어떤 기업은 신입사원 지원 대상자들의 SNS를 검사해보기도 한다.

 

주체, 공포를 이겨내야 가능한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타인의 삶>은 비즐러의 ‘변절’로 인해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비즐러는 점점 드라이만의 삶에 애정을 느낀다. 그리곤 감시 기록을 삭제하며 그를 보호한다. 덕분에 드라이만은 동독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고도 살아남는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을 제대로 감시하지 않은 이유로 좌천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독은 무너진다.

<타인의 삶>은 사회를 바꾸는 힘으로 비즐러들의 변화와 희생을 제시한다. 물론 이 결말은 아름답다. 하지만 비즐러의 변화가 가능할지를 생각해보면 그 이상은 왜소해 보인다. 현재 비즐러들의 충성심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

그런 와중에 ‘감시받는 자’들은 고위공무원, 대기업, 경찰과 검찰을 욕하면서도 그들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키운다. 비즐러를 없애지 못한다면 차라리 비즐러가 되겠다는 이야기다. 공포의 객체는 공포가 사라지리라는 믿음을 잃어버릴 때, 차라리 공포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것일까.

그러나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비즐러는 혼자 바뀌지 않았다. 비즐러를 바꾼 것은 드라이만이다. 자유를 향한 그의 갈망이 비즐러를 감동케 했다. 동독의 독재정권은 민중의 힘에 무너졌다. 이는 수많은 감시받는 자들이 비즐러들의 마음을 돌렸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군대에서 공포에 굴복했다. 복무 기간 중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지만 한마디도 못 했다. 공포에 벌벌 떨었던 시간만큼 부끄러운 것도 없었다. 그 공포는 여전히 순간순간 나를 엄습한다. 나의 글들을 보는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내 미래에 불이익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인의 입을 틀어막아 생존하는 권력이라면, 그 권력은 벌거벗겨야 할 대상이다. 결국 공포를 사라지게 만드는 주체는 공포를 이겨낸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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