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환의 무방비도시] 다시, 악의 평범성

수많은 언론이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만을 집중 조명해도 우리는 그 너머를 봐야 한다. 악을 평범하게 흘려보내는 사회가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가를 말이다.

무방비도시3

 

| 홍주환

악은 평범하게 이어진다
1965년 인도네시아 쿠데타가 일어날 당시 군대는 100만명이 넘는 공산주의자, 지식인 등을 학살했다.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은 대학살이 40년 이후, 학살자들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를 보기 전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감독인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학살자들에게 그들의 ‘영웅담’을 영화화하자고 제안한다. 당시 학살의 주연이었던 안와르 콩고와 ‘프레만(freeman)’들은 조슈아의 제안에 들떠 두 개의 촬영(학살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영웅담에 대한 영화 촬영)에 임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그들에게 질문한다. ‘왜 그랬습니까?’ 답은 제각각이지만 핵심은 동일하다. ‘나는 정당했다.’, ‘국가를 위해서 그런 것이다.’ 4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도 학살자들의 참회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떵떵거린다. 당시 학살을 이끌었던 단체인 ‘판차넬라 청년회’는 아직도 위력적이다. 안와르 콩고는 국회의원 선거까지 출마할 만큼 지역의 유세가다. 반면 학살된 공산주의자들의 가족, 친구들은 여전히 하류층에 머물고 있으며 판차넬라 청년회의 핍박을 받아야 하는 처지다.
<액트 오브 킬링>은 한나 아렌트와는 다른 측면에서 ‘악의 평범성’을 다룬 작품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가능케 하는 근대의 몰-인간성을 분석했다면, <액트 오브 킬링>은 악은 악을 ‘평범하게 흘려보내는’ 사회 내에서 유지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전히 군부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도네시아에서 학살은 정당하다고 여겨진다. 판차넬라 청년회의 모임은 도심의 중심가에서 치러지며 많은 인파와 정재계 인사가 참여한다.
악인들은 가끔 참회의 가능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회로부터 방해받는다. <액트 오브 킬링>의 학살자들은 영화 촬영 막바지에 다다르자 갑자기 과거를 후회하는 듯 눈물을 보인다. 그러나 곧이어 그들은 여론과 언론의 지지 속에서 스스로 흘렸던 눈물을 잊어버릴 것이다. 영화 중간, 인도네시아 국영 TV의 진행자는 안와르 콩고와 프레만들을 인터뷰하며 이런 말을 한다. “더 인도적이고 덜 가학적인 방식으로 촬영할 수 있었는데, 과감하게 몰살 장면을 표현한 안와르 콩고와 프레만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개인이 후회하려고 해도, 어떤 사회는 그 후회를 잘못된 것이라고 채찍질한다. 악은 다시 평범하게 흘려보내 진다.

악은 사회를 침식시킨다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긴 시간 동안 은폐됐던 악행이 폭로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는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을 드러내는 사건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정치인과 기업인, 공무원, 언론이 ‘국정 농단’을 방조해왔는지가 여실히 나타난다.
대기업은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돈을 보낼 때 최순실의 존재를 몰랐을 리가 없다. 친박 실세 노릇을 하며 대통령을 예전부터 보좌했던 새누리당의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는 애초부터 최순실에 대한 취재 정보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청와대가 <조선일보>를 공격하자 정보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안종범과 우병우부터 청와대 내에 근무하던 경호원에 이르기 까지 아무도 최순실에 대해 털어놓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가 악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뭔 큰 문제가 있겠어’라는 ‘평범한’ 생각을 했을 때, 그런 평범함이 모여 악은 탄생하고 존속한다. 물론 평범함은 만들어졌다. 얼마 전 현대차는 리콜 은폐 의혹을 언론에 제보한 내부고발자를 해고했다. 지난해 ‘정윤회 문건’을 제보했다며 박관찬 경정 등은 기소 당했다. 기업에서든, 공직에서든 누구라도 문제를 제기했다간 목이 달아난다. 그렇다. 사회는 우리에게, 그저 평범하게, 눈앞의 악을 흘려보내라고 호통 친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그는 하야해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고 최순실이 감옥에 가도, 악을 흘려보내는 사회가 바뀔지는 미지수다. 최순실 게이트의 주범인 대통령, 청와대, 대기업, 새누리당 중 그 누구도 진심어린 참회를 하고 있지 않다. 물론 그들은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고 있지만 언젠간 또 다시 ‘제 2의 최순실’을 만들어내고 방치할 것이다. 돈 많은 대기업은 또 다른 ‘최순실’에게 돈을 바치고 머리 좋은 고급 공무원들은 또 다른 ‘최순실’에게 청와대 문서를 주는 카르텔의 구조는 공고하다.
안와르 콩고는 어떤 이유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느냐고 질문하는 카메라 앞에서 “국회의원이 돼야 더 많은 돈을 뜯어낼 수 있거든”이라고 대답한다. 최순실은 이런 말을 했다. “지금까지 언니 옆에서 의리 지키니 이만큼 받잖아.” 두 말의 유사성이 무섭다. 저런 말을 저리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사회라니. 그런 곳을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렇기에 수많은 언론이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만을 집중 조명해도 우리는 그 너머를 봐야 한다. 악을 평범하게 흘려보내는 사회가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가를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을 끌어내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최순실 게이트를 만든 ‘악의 평범성’을 청산해야 한다. 청산하지 못한 악은 차곡차곡 쌓여 사회의 무덤을 일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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