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S] 나의 마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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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바

첫차를 기다리기 위해 이태원 어디쯤의 정류장에 앉아 있던 나는, 옆 사람의 유난히 큰 하이힐에 시선을 멈췄다. 평소 구두를 잘 신지 않는 나에게도 그건 꽤나 커보였는데 마치 남자 발 마냥 긴 폭이 어쩐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시선을 올리기도 전 곧장 도착하는 차에 허겁지겁 올라타 버스에 서 뒤를 돌아봤을 땐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었다. 문득 떠오르는 사람에 심란해진 마음을 애써 눌렀고 내 신발장 안 먼지 쌓인 하이힐을 이리저리 만져보던 그녀가 생각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우리는 간혹 레즈비언 커플로 패싱되기도 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여자로 넘겨 집혀지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신나 보였다. 그럴 때면 우린 되려 손을 잡으며 애정행각을 하듯 장난을 치곤하는데 그마저도 연신 쏘아대는 눈총에 얼른 그만두어야 했다. 스포츠 머리에 남색 교복바지를 입고 있던 소년과 나는 어느덧 매월 화장품 세일기간에서야 비로소 가장 돈독해지는 사이가 되었다. 2년 전 자신을 여자라고 고백한 나의 엄친아에게 아끼던 립스틱을 선물해 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그날 밤 벤치에 앉아 연신 울어 대던 남녀를 보며 지나가던 누군가는 소리 내 혀를 찼다. 아마 우리가 다투거나 헤어짐을 앞에 둔 연인처럼 보였던 모양이지만 나에겐 그녀가 손에 움켜진 립스틱보다 더 슬픈 건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경계로 내 옆자리의 있던 소년도 함께 사라졌다.

상태로 따지자면 마치 커밍아웃을 한 쪽처럼 퉁퉁 불어있던 내게 침묵을 깨고 먼저 말을 건넨 건 그녀였다. 이해해줘 고맙다 입을 여는 그녀에게 오랫동안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얼마나 힘들었니’ 따위의 대사조차 칠 수 없었던 건 사실 그런 그녀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왜…하리수 같은거..”라고 말끝을 흐리며 쏟아지던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이전의 사고를 통째로 무너뜨려야만 했다. “천하장사 마돈나…그런거..?”라며 답문한 우리의 대화는 당시 트랜스젠더에 대한 나의 얄팍한 미디어 지식을 끝으로 곧장 또 다른 침묵으로 이어졌다.

그날 이후 우리의 관계에서 바뀐 건 별로 없었지만 갑자기 생긴 ‘오래된’ 여자 친구를 대하는 방법을 새로 익히기 위해 애썼다. 예로 “넌 여자가 아니라서 몰라”와 같은 말은 어떠한 맥락에서도 금지어처럼 작용했다. 사실 그녀의 커밍아웃 이후에도 1년 가까이 줄곧 그녀를 ‘게이인 여자’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대체로 헛소리에 가깝지만 그 당시 난 게이와 트랜스젠더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헤테로에 불과했다.

퀴어에 대한 내 지식의 한계는 그녀를 레즈비언으로 만들기도 했고 종종 그녀가 마치 여러 개의 자아가 있는 것처럼 대하곤 했기에 우리의 대화는 매번 나를 갈림길 앞에 세워 놓았다. 그것들은 남자나 여자 혹은 ‘알 수 없음’과 같은 표지판들로 이루어져서는 나의 대답 하나하나를 모두 검열했다. 당시 정말 아무것도 ‘알 수 없음’의 상태였던 내가 대화에서 쉽게 길을 잃는 건 너무나 당연했고 줄곧 멋쩍은 상태에 놓여 진 우린 함께 방황했다. 그러한 것들이 반복됨에 그녀와의 관계에서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고 아슬아슬하게 숨겨오던 무지가 친구를 상처 입히는 순간들은 한 발자국씩 나를 자꾸 뒤로 밀어냈다.

고등학교 시절 숏 컷이 유난히 예쁘던 여 선배에게 눈길을 주는 것조차 잘못으로 느껴지던 나에게 자신을 여자라 이야기하는 옆 집 남학생은 실로 다른 세상의 일 같았다. 그럼에도 어쩐지 당시의 나는 “가장 따듯한 색, 블루”를 챙겨볼 만큼 본인이 ‘쿨’하다는 말도 안 되는 나르시시즘에 빠져있었는데 딱 그 정도의 오만한 쿨함 앞에 단짝의 커밍아웃은 도로 나를 자가당착에 던져놓았다. 그 어리석은 자기애는 실은 스스로가 얼마나 닫혀있는 사람인지 인정할 수 없게 했고 이는 곧 내게서 거울 앞 치파오를 입고 춤을 추던 나의 마돈나, 그녀를 더 쉽게 빼앗아 갔다.

피해자가 되는 것만큼이나 가해자가 되는 것은 끔찍하다. 특히 그 상대가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서로를 쉽게 무너뜨린다. 무심코 뱉을 수 있는 말 하나로도 친구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어 무서웠고 허공에 놓인 줄을 건너는 것 마냥 친구 곁을 맴돌았다. 지친다 느껴졌고 그녀의 불편함을 ‘예민함’으로 치부하던 무척이나 익숙한 광경에 나에게까지 신물이 났다. 그녀가 자신의 정체성에 묶여 눈에 띄게 선을 긋는 나를 붙잡지 못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배로 상처받을 어린 소년을 뒤로한 채 일상에 파묻힌다는 핑계로 연락은 차츰 줄어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지금의 나는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성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잠재적 가해자쯤이 되었다. 자신을 이성애자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사람을 대하는 공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젠 그녀를 레즈비언 ‘남성’으로 대하는 일만큼은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간 죄책감에 이것저것 뒤적여 본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무지를 인정하는 사이 그 많던 갈림길은 곧 그녀의 이름 하나로 좁혀진 듯 보였다.

옷 장 구석에 놓인 겨울코트를 다시 꺼내들면서 나는 새삼 시간을 실감했다. 문을 열기 전 유리에 비친 어깨만큼 길어진 그녀의 머리와 함께 우리는 1년이 가까운 공백을 사이에 두고 다시 마주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눈에 띄게 부드러워진 친구의 얼굴선을 아는 척 할까 잠시 고민했다. 그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진 듯 보였지만 그녀 입술 위에, 여전히 내게 익숙한 립스틱 색이 있었다.

 

*필자 소개 : 주로 본인의 경험에 빗대어 글을 쓴다. 그러나 단 한번도 이틀 이상 일기를 써본적 없고 그저 가끔 글로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페미니즘S] 코너 소개 : 페미니즘’들’에 대해 다룹니다. 형식도 관점도 스타일도 다른 세 명의 필자가 한 주씩 돌아가면서 글을 씁니다. 자바, 마리안, 해경의 글을 기다려 주세요.

*사진 :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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