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학생의 삶은 어떻게 재개발되는가

우리에게는 평등하게 쉴 권리를,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권리를, 안정적이고 깊이 있게 자치할 권리를, ‘공통재’인 대학에서 충분히 요구할 권리가 있다. ‘학생복지’와 ‘자치’에 보다 구체적인 형상을 만들어가야할 때다.

캠퍼스마스터플랜

| 짱큰콩

“언제부터일까. 캠퍼스에서조차, 돈을 내지 않으면 쉴 수가 없다.”

손에 들고 있는 커피가 아직 남았는데도, 새로 차를 주문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공강 시간, 잠시라도 머물러 있을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은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카페에서 머문다. 편히 앉아서 대화하려면 교내 카페에 가야 하고, 배터리 충전까지 필요하면 교문 밖 카페에 가야 하고, 도서관 예약을 못 하거나 적당히 느슨하게 책 보거나 공부하고 싶으면 또 카페에 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늘 무언가를 시켜두어야 한다. 강의실 층층이 있는 6인용 테이블에는 팀플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기에, 혼자서 마냥 자리 차지하고 있을 수가 없다.
보온병과 도시락을 싸 온 날에도 결국에는 카페에 가서, 다른 것 하나를 시키고 앉는다. 편히 펼쳐두고 먹을 만한 곳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강의실에서는 냄새가 날 테고, 도서관 로비에는 테이블이 없다. 카페도 실은 외부음식 반입 금지라 들고 들어가서는 안 되지만, 몰래 그러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도시락 싸기도 포기하고 그냥 카페 음식을 먹는다. 두통, 복통, 생리통으로 아픈 날엔 (카페에서 누울 수는 없으므로) 학교 밖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강의실 맨 뒷자리에 의자만 빼놓고 수업을 듣는 일이 가끔 있다. 빽빽한 캠퍼스만큼 빽빽한 강의실에서 수업에 딱 맞춰 온 학생을 위한 좌석은 없으니까. 연강이 있는 날에는 늘 맨 뒷좌석에서 수업을 듣는다. 대형 강의실이라 어떻게든 자리는 있다. 다만 마이크가 잘 안 나오거나 칠판 필기라도 있는 날에는 대책이 없다.
그곳에서 만난 교수와 학생은 서로를 잘 모른다. 한 학기를 함께 하고 몇 학기를 마주쳐도 이름 한 번 기억하기가 힘들다. 그래도 많은 학생들은 그런 대형 강의가 차라리 편하다고 한다. 학점 받기가 그나마 수월하기 때문이다. ‘D+의무 부과제’와 퍼센트를 따지는 철저한 상대평가제 아래에서 나름대로 터득한 생존 방법이다. 대형 강의만 골라 듣는 이들도 있다. 요즘은 외려 소규모 강의가 부담스럽다고 한다.
어쩌면 지금 말 꺼내기조차 너무 새삼스러운,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니까 조용히-편히 쉬기 위해서는 카페를 가야 하고, 카페를 원하는 이가 많으니 학교에 카페가 많아지면 그만큼 좋은 것인데. 사람이 많으니 대형 강의가 있고, 대형 강의실이 많아지는 게 그나마 우리의 수업권이 보장되는 길일 텐데.
그게 무엇이 문제란 말이냐, 하면 그럴 수도 있다. 다만 그런 상황도 가정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그 선후 방향이 반대일 수도 있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캠퍼스 라이프’는 어쩌면 개발되고 있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캠퍼스는 살아있다

가령 현재 영신관 앞에 조성된 중앙광장 자리에는 ‘루이스 가든’이라는 것이 있었다. 11년도까지 그 자리에 있던 루이스 가든은 지금의 매끈한 잔디밭의 모양보다는 우거진 풀밭에 가까웠다. 그곳은 늘 개방되어 있었다. 학생들은 루이스 가든에 둘러앉아 맥주 한 캔을 들이키기도 하고 기타를 치며 노래하기도 했다.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갔을 때 그곳은 집회를 나가는 학생들이 집결하던 장소이기도 했다.
캠퍼스는 학교 본부가 발표한 ‘마스터 플랜’에 근거하여 변모했다. 다만 그 이후, 확연히 달라진 캠퍼스를 거니는 학생들은 과거의 모습을 알 수 없었다. 시간은 잘도 흘렀고, 중앙광장의 과거가 어떠했든, 이제 그곳은 그저 깔끔한 잔디밭이 되었다. 관상용이라는 기능을 다하기 위해, 경비원과 교직원은 학생들이 혹여나 그곳에서 ‘반 학칙’적 행사라도 열까, 감시하기 바쁘다.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서서히 그 모습이 변하기 시작한 서울 캠퍼스의 변모 과정은 분명 특정한 경향성을 띠었다. 다만 그 경향성이란 잔디밭이라는 한 가지 사례로만 표현되기 힘든 것이므로, 간략하게나마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 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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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구 흑석동에 위치한 서울캠퍼스는 182,730㎡ 규모에 알파벳 Y자 모양을 거꾸로 튼 모양을 하고 있다. 사진의 하단으로 갈수록 경사도가 높아지는 오르막길 지형이다. 02년, 학교 본부는 중앙대 100주년인 2018년을 목표로 설정한 ‘Dragon 2018 캠퍼스 플랜’을 발표한다. 그에 따라 후문(왼쪽 끄트머리 부근)에 위치한 교수 연구동 및 체육관을 준공했고, 05년도에는 정문 근처 의과대학을 증축했다. 같은 해 박범훈 총장이 제12대 총장으로 취임했고, 그로부터 3년 뒤 두산의 박용성 회장이 제9대 이사장으로 취임한다.
이때부터다. 중앙대 본부는 캠퍼스 ‘재개발’에 그야말로 박차를 가한다. 박용성 이사장의 취임 직전 해인 07년도에는 법학관 준공을, 10년도 기숙사 준공과 도서관 리모델링을 했고 그다음 해에는 정문 쪽 R&D센터를 준공했다. 루이스 가든이 사라진 자리에는 잔디밭이 조성되었다.
R&D센터 지하로는 각종 ‘학생 지원 시설’들이 입점했다. 당시 언론들에서는 ‘맥도날드 한국 진출 24년 만에 대학 첫 입점’이라는 보도가 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은행, 카페, 편의점, 도시락점, 일반 음식점 등 다양한 프랜차이즈 시설들이 입점했다. 꼭대기 층에는 학생들이 이용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의 뷔페 및 한식당이 생겼다. 그때는 그렇게 임대 시설들이 대거 늘어나기 시작한 시기였다.
학내 상가 시설들이 대대적으로 급증하던 바로 그 시기, 학문 단위들은 대대적으로 통폐합되기 시작했다. 18개 단과대가 10개 단과대로, 77개 학과가 46개 학과로 통폐합되었다. 반대하는 학생들과 교수들은 본관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했으며, 한 학생은 공사 중인 R&D센터 꼭대기에 타워크레인을 타고 올라가 시위를 했다. 학교 본부가 징계위를 소집하여 무기정학과 유기정학으로 해당 학생들을 학교 밖에 쫓아내는 동안, 안성캠퍼스와 서울캠퍼스의 ‘교지 단일화’와 ‘본분교 통합’ 건이 성사되고 있었다. 서울캠의 기존 캠퍼스 부지와 시설 수준으로는 통합된 양캠퍼스의 인원수를 감당할 수 없었기에 학교는 부랴부랴 새 건물 기공을 서둘렀다.
많은 일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던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중앙대는 구조개혁의 롤 모델’이라며 본교에 방문하여 아낌없이 칭찬을 늘어놓고 가던 때였고, 융,복합 학문을 위해 모든 학과 단위를 폐지하겠다는 ‘학사구조선진화계획안’을 본부가 발표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바야흐로 ‘글로벌 중앙대’로 나아가는 ‘혁신’과 ‘발전’의 시기였으며, 학교 ‘경영’의 ‘노오력’은 100주년 기념관의 준공으로 상징될 터였다. 그렇게, 학교 본부가 말하는 발전과 효율의 기억을 재현하는 캠퍼스가 축조되어 갔다. 당시 학교 커뮤니티 ‘중앙인’에서는 학교의 새 건물 증축에 대한 찬사가 연일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100주년 기념관의 탄생

그리하여 15년과 16년, 우리가 현재 거니는 가장 익숙한 모습 – 오른쪽 하단 여덟 번째 사진에 나오는 ‘100주년 기념관’이 준공되었다. 4년 전 수정 발표된 ‘중앙대 서울캠퍼스 마스터플랜’의 출발점이자, 학교가 대대적으로 준비하는 100주년 기념식의 주인공이 될 공간 말이다. 더불어 최근 몇 년간 급격히 불어난 서울캠퍼스 학생 수로 인해 캠퍼스 공간 문제가 제기될 때면, 본부로부터 만능 해결사로 꼽혔던 그 건물 말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단대 건물인 만큼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가 넉넉하게 설치되었고, 대형 강의실 또한 많다. 건물 지하 일대는 모두 ‘학생 지원 시설’로 이뤄졌다. 3층의 널따란 로비는 카페 하나를 중심에 두고, 공용 휴식공간으로 구축되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이와 공간감을 가진 현란한 장소, 발전의 장소에서 강의가 시작됐고, 우리는 자연스레 휴식하러 그곳으로 향한다.

학생사회, 학생복지
과거와 오늘

한편, 비슷한 시기에 같은 공간을 앞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본부와 캠퍼스의 관계 말고, 학생과 캠퍼스의 관계 말이다. 나아가 학생사회를 중심으로 본 캠퍼스 주조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대학 캠퍼스의 중심부를 이루는 영역은 흔히 ‘코어’라 지칭된다. 서울캠퍼스의 경우 ‘코어(중심건물)’와 이를 둘러싸고서 각 학문 분야별 강의동이 모여 원형을 이루는 구조다. 중심 코어를 이루는 건물은 도서관, 학생회관, 종합 강의동이다. 2004년에 발표된 마스터 플랜, ‘Dragon 2018’에서도 학생회관의 중심성은 유지되고 있었다. (여기서 코어는 도서관-학생회관-본관이다.) 그것은 당대 캠퍼스 상황을 잘 반영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90년대 말 코어를 이루는 주체들의 연합 활동이 활발했다. 일례로 생협조합회 구성의 움직임이 있었다. 생협은 생활 물품 공동구매, 공동 이용시설 사업, 문화 복지 사업, 환경 보호 운동사업, 지역 공동체 건설 등을 목표로 삼고 활동하는 복지 위원회이다. 보통 학교 측 위주로 진행되는 이익사업인 캠퍼스 임대업의 대안으로 많이 제시되기도 하는 조직이다. 놀라운 것은 당시 중앙대에서는 이 생협조합회의 구성이 학생만이 아니라 교수와 교직원이 함께하는, 3주체의 거버넌스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당시 총학생회의 정을호 준비위원장의 말처럼 이러한 조직은 “최초의 학교, 학생, 교직원 합의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졌다.


“생협은 이미 수년 전부터 논의되고 있는 사항이며 학내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운영을 바탕으로 학내 복지증진 도모를 목표로 하고 있다. (…) 생협은 교직원 노동조합과 대학원 총학생회, 학부 총학생회, 학교 당국 등이 발족하기로 합의했으며 교수협의회도 참여할 예정이다.”
(중대신문, 1998.05.04.)

그런데 그로부터 약 10년 뒤, 12년에 발표된 마스터 플랜을 보면, 학생회관은 캠퍼스에서 더 이상 코어의 위치에 없다. 심지어 존재 자체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어떻게 된 것일까?
허물 것이기 때문이다. 캠퍼스 공간이 부족해서다. 그런데 왜 하필 학생회관과 학생 문화관이었을까. 한때 캠퍼스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다는 학생회관(및 문화관)인데, 이렇게나 조용히 허물어져도 된다는 것일까. 심지어 학생회관은 교육부가 지정한 ‘교육 기본 시설’에 속하는 데 말이다. 위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전, 비슷한 맥락의 다른 이야기를 한 번 살펴보자. 몇 가지 사례들을 통해 사건들의 정확한 ‘목적’을 알 수는 없을 지라도, 공통적으로 개입된 관계와 흐름을 포착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학생회관이 사라진’ 마스터플랜이 발표되던 그 시기, 학교에 존재하던 여학생 휴게실들이 대거 축소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총여학생회가 부재하던 시기, 학생들로부터 공간 부족 문제를 제기 받던 학교가 그 틈에 기회를 잡은 것이다. 본부는 여학생 휴게실, 팀플룸, 공용 휴게실을 하나로 합쳐 학생회관 2층에 CAU Student Lounge라는 자리를 차렸다. 여학생만 생활하는 휴게실은 비효율적이라는 이유에서다. (학교는 이후 학생 휴게시설을 더 마련하지 않았다. 학생회관은 물론 단과대별로 여학생휴게실과 공용휴게실이 설치되어 있다는 타 대학들(H대,K대,Y대 등)의 사례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된 듯하다.)
학교 본부는 ‘발전’을 위해 달려야 했기에, 무리하게 본분교를 통합, 단일교지 승인을 받아냈다. 그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했던 본부는 예정보다 일찍 100주년 기념관을 짓기 시작한다. 인준을 위해서는 녹지 공간 편성이 추가로 필요했고 그 부분을 학생회관과 학생문화관 부지로 충당하기로 한다. 처음에는 학생회관 내 여러 공간들이 100주년 기념관 지하로 들어가도록 돼있었다. 그러다 건물 준공 직전 학교가 계획을 바꿨다. 소음, 채광 등의 문제가 있으니, 학생회관 내 기구들을 100주년 기념관 내부에 위치시킬 수 없고 따라서 교양학관으로 대체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한동안 혼란이 계속되었다. 의사결정구조와 정보접근의 폐쇄성은 공간배정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이 묻히도록 했다. 이는 학생회관에 최적화된 공간 계획의 수립을 더디게 했다. 다행히 동아리마다의 특성에 맞는 리모델링을 현재 도면상으로는 합의본 상황이다. 어쨌거나 학생들이 끈질기게 학교 본부에 요구한 덕에 최소한의 공간 보장은 받아낸 셈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쉽게 끝나지 않은 듯하다. 새 마스터플랜에는 교양학관 또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회관 내 공간들이 교양학관으로 옮겨간다 해도 얼마나 오래갈지 장담할 수 없다.
한편에서는 대대적인 발전이 일어났고 한편에서는 대대적인 축소가 일어났다. 전자는 구조개혁, 건물의 크기, 수, 값의 측면에서, 후자는 학생의 자치권, 휴식권, 교육권 측면에서 그렇다. 캠퍼스 개발과정이 결코 하나의 모습만을 가지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고 어떤 것을, 왜 할 수 없었을까. 두 가지 상을 보았을 때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지금 ‘재개발’은 잠시 멈췄다. 4년에 발표된 ‘Dragon 2018 캠퍼스 플랜’을 다시 수정, 12년도에 발표한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마스터 플랜’ 대로라면 공사할 곳은 아직 한참 남았으나, 100주년 기념관 및 경영경제관(이하 100주년 기념관) 준공 이후 본부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672억 원에 달하는 빚(2015년 2월 28일 결산 기준)을 떠안고 있으며, 그것을 다 갚는 데에만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내 단과대 건물 중 최대 규모의 건물 건립(1,270억 원 규모)을 수주한 두산 건설은 쾌재를 불렀겠으나, 빚더미에 앉은 학교는 지금 웃을 수 없다. 속된 말로 ‘망하지 않기 위해’ 동문들의 지갑이 열리는 순간만을 간절히 바란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한때 캠퍼스 공간문제를 모두 다 해결해줄 듯이 장담하던 본부는 ‘공대에 한해서만 공간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다’고, 입장을 당당하게 번복하고 있다. 그러는 한편, ‘100주년 기념관 공간배정심의위원회에 학생대표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지난 총학생회의 요구에는 대학본부는 ‘그것은 학교경영과 관련된 사항이므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답한 바 있다.
학교본부는 캠퍼스 구성에 있어 늘 학생을 배제해왔다. 그 과정에서 불법을 저질렀고, 학교 재정에 손실을 입혔으며, 양캠퍼스에 공동화 현상과 공간부족 문제를 동시에 일으켰다. 모든 계획을 독단적으로 수립, 실행하지만 그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도 사과를 하지도 않는다.

캠퍼스의 구획 계획과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삶은 어떻게든 영향을 받는다. 명백한 사실 속에서 우리에게는 당장 크게 두 가지 길이 있을 것이다. 학생사회가 캠퍼스 공간을 점유,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휘해보거나, 혹은 타대학은 물론 과거의 캠퍼스에서도 가능했던 일을 포기하거나 말이다.
우리에게는 평등하게 쉴 권리를,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권리를, 안정적이고 깊이 있게 자치할 권리를, ‘공통재’인 대학에서 충분히 요구할 권리가 있다. ‘학생복지’와 ‘자치’에 보다 구체적인 형상을 만들어가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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