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앙대에서 성정치를 고민하기

‘우리’가 즐겁기 위해 ‘여기 없다고 여겨지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배제하고 타자화하고 희화화하며 이를 사소화하게 되면 학생정치는 분리의 울타리가 되며 정지한다. 학생사회의 다양한 결을 수용할 수조차 없다. (…) 기층 단위에서부터 출발하는 성정치와 전체 학생 차원을 포괄하는 성정치가 결합됐을 때 학생사회는 감수성과 민주주의의 확산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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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경

2015년을 기점으로 페미니즘이 여러 이슈와 함께 사회 전반에 가시화되고 확산되기 시작했다. 대학사회도 그러한 흐름 위에서 변화하고 있다. 내게 2013년 처음 마주했던 학교와 졸업을 앞둔 지금의 학교는 조금 다른 풍경을 하고 있다. 2013년만 하더라도 총여학생회는 공석이었고 레인보우피쉬의 대외활동은 활발하지 않았으며 성평등위원회나 여성주의 학회도 없었고 여성주의 교지 <녹지>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몇 년 사이에 레인보우피쉬가 정동아리로 승격했고 성평등위원회, 여성주의 학회 <여백>이 설립됐으며 페미니스트-퀴어 연대체인 FUQ가 꾸려졌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조차도 쉽게 꺼낼 수 없던 대학사회에서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행동하는 공동체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모든 게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성평등위원회의 설립은 총여학생회가 폐지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학내에 여러 공동체가 생기고 성정치가 가시화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성폭력, 성차별, 혐오표현 등이 발생하고 있다.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생리대 사업을 한다면 면도기도’.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을 한다면 비뇨기과도’ 같은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이는 성평등을 양성평등이라는 틀 안에서의 동등한 물품수혜 정도로만 생각하는 인식이 학생사회 안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학생사회가 전반적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분명히 온도차가 있다. 특히 정치 및 제도 영역에서의 변화는 더디다. 총학생회장단의 성비는 단적인 사례다. 2012년 54대 총학생회 ‘카우V’부터 2017년 임기를 진행할 59대 총학생회 ‘Sketch Up’까지 6년간 총학생회장단은 모두 남성으로, 단 한 명의 여성도 포함되어있지 않다. 총학생회 선거 전체를 살펴봐도 이 기간 동안 총학생회장단으로 입후보한 여성은 단 두 명(54대 선거 정후보, 56대 선거 부후보)뿐이다. (“총학의 계보학”, 중앙문화 편집부, <중앙문화> 65호)

총학생회장단 후보들은 대개 학과 및 단과대학 학생회장단 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러한 경험을 중요한 경력으로 인정받는다. 바꿔 말하면, 학과 및 단과대학 학생사회를 둘러싼 분위기, 권력구조 등이 총학생회까지 이어지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총학생회장단의 구성은 그것이 딛고 있는 학생사회의 맥락, 분위기, 권력구조 등의 일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성비는 하나의 중요한 사례인 셈이다. 6년간 ‘남-남’ 총학생회장단만이 존재해왔다는 것은 그것이 위치해 있는 학생사회가 기층단위에서부터 남성중심적인 구성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게 만든다. 양성 이분법 내에서의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젠더 자체가 곧 페미니즘 감수성의 불/가능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압도적인 성비는 우리가 풀어야 할 의문점이다.

대학사회 전반에 성평등 및 반성폭력 문화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전체 학생 차원과 기층 단위 차원 모두에서 활발한 활동이 필요하다. 전체 학생 차원에서는 이제 막 성평등위원회, 학회 등이 설립되고 운영되고 있지만, 기층단위까지 확산되어 있지는 않다. 몇몇 기구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전체 학생 차원에서든 단과대나 학과 학생회 차원에서든 성평등 및 반성폭력 기구, 규약, 교육, 세미나 등을 찾기는 어렵다. 이는 우리가 중앙대에서 성정치에 관해 더욱 치열하게 고민해야만 하는 이유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하는가?

총학생회 차원에서의 변화는 총여학생회의 폐지와 성평등위원회의 신설이다. 총여학생회는 2014년 폐지되었다. 불과 1년 차이지만, 2014년은 그 다음 해처럼 페미니즘과 학내 성정치가 가시화되었던 시기가 아니었다. 안건을 제시한 ‘마스터키’ 총학생회는 ‘남여 평등이 상당히 실현되어 여성 인권을 위한 독립기구는 필요하지 않다’, ‘인권센터가 있으므로 기타 역할은 총학생회 산하기구를 통해 대체할 수 있다’를 폐지의 이유로 내세웠다. 총여학생회 폐지안은 근거와 (선출직 기구를 전학대회를 통해 폐지한) 절차의 타당성 모두 부족했지만 통과되었다.(상세한 논의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안태진, 중앙문화 68호)를 참고 ) ‘마스터키’ 총학생회는 대안으로 ‘여성국’ 신설을 논의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성평위의 설립이었다. 이러한 대안이 충분한 숙고나 논의 절차를 거친 것은 아니었고, 성평위는 설립부터 불안정성의 문제를 안게 되었다.

성평위의 설립은 학생사회에서 젠더 및 섹슈얼리티 이슈를 담당하는 제도화된 기구가 신설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전까지 총학생회가 특기구를 문화위원회, 인권복지위원회, 졸업준비위원회처럼 총학생회의 업무를 나누어 전담하는 ‘실무기구’로만 활용해왔다는 점에서 성정치를 담당하는 성평위의 신설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산하기구’ 설립은 여러 학교에서 총학생회의 한계를 넘어 다양성을 포함하는 학생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주요한 방법이 되고 있다. 총학생회가 전문성, 당사자성, 지속성, 기존 업무 등의 한계로 인해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으로까지 외연을 넓히고 학생사회 전반의 감수성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다양한 기구가 설립되어 관심과 감수성을 가진 학우들이 학생사회에 더 많이 참여할수록 학생 자치가 활성화되며 다양한 이해관계와 감수성, 결을 고려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서울대, 고려대, 한양대 등의 학교에서는 성평등, 여성 인권, 퀴어(소수자), 장애권, 유학생, 대학행정 및 교육 문제 등 다양한 영역의 ‘정책 및 당사자 기구’가 설립되어 활동하고 있다.(구체적인 비교와 설명은 “메마른 학생자치, 산하기구 같은 걸 끼얹나…?”(채효석, 중앙문화 68호)를 참고) 각 학교마다 산하기구의 명칭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중시되는 요소는 전문성, 지속성, 독립성이다. 총학생회나 중앙운영위원회, 학교 본부의 성향과 무관하게 고유의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학생회칙으로 위원회의 구성원 및 대표단 선출, 예산, 활동의 독립성 및 안정성을 보장하고 있다. 고려대의 경우 총학생회 선본이 채식인을 포함하는 공약을 내놓는다거나 페미니즘과 퀴어 이슈에 기반을 둔 단체들이 선본에 공개 질의서를 보내고 답변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는 고려대가 특별히 뛰어난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로만 구성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오랜 시간 다양성을 존중하는 학생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제도적, 정책적 고민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은 중앙대 서울캠퍼스의 산하기구 관련 조항이 10장 54조, 55조로 끝나는 것과 달리 고려대에서는 133조부터 147조까지 이른다는 점에서도 단적으로 비교해볼 수 있다.

타학교와 비교했을 때 성평위가 놓여 있는 불안정한 위치는 더 잘 드러난다. 타학교들이 산하기구의 독립성, 지속성, 전문성을 보장하기 위해 예산, 활동, 인사권을 학생회칙을 통해 보장하고 있는 것과 달리 중앙대는 그러한 보장이 전혀 제도화되어있지 않다. 이는 총학생회가 산하기구를 실무기구로 활용해왔던 맥락에서 부분적으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무기구는 총학생회 업무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위원장단도 선본에서 함께 활동했던 이들이 임명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체제 하에서 산하기구는 정책 기구 혹은 당사자 기구라기보다는 업무를 분담하는 실무기구의 성격을 띠게 된다. 산하기구의 위치나 역할에 관해 제대로 된 논의가 없었기에 갑작스레 설립된 성평위는 기존의 산하기구 체제에 그대로 편입된 것이다.

성평위뿐만 아니라 학우들의 다양한 감수성과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산하기구가 확대되기 위해서도 실무기구 중심의 산하기구 체제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실무기구와 정책 및 당사자 기구를 명확히 구분하고 각 기구의 적절한 위치와 역할을 고민하고 논의하고 제도 내에 반영해야 한다. 특히 정책 및 당사자 기구의 전문성, 독립성,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인사, 예산, 활동의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현재 설립되어 있는 성평위를 중심으로 이러한 가치의 중요성을 논의해보고자 한다. 우선 각 기구의 정체성과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으면 기구 간 역할 중복 및 혼선이 발생하게 된다. 학생복지양성평등위원회(세종대)는 그 명칭으로서 이러한 문제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성평위는 성정치와 관련된 문화, 교육 사업을 전담하고 인권복지위원회는 기존 운영방식대로 물품 및 서비스 제공을 전담하는 것이 기구 간 역할과 정체성을 분명하게 하는 방법이다. 물품 수혜 및 서비스는 중요하지만, ‘학생복지’는 더 많은 이슈와 문제를 포함하기에 다양한 결을 전담할 수 있는 기구의 정체성과 역할이 선명해야 한다.

기구의 독립성과 안정성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아야 한다. 총학생회 및 학교 본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여러 문제에서 성평위는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총학생회가 인사권을 쥐고 있는 성평위가 고려대처럼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선본들에게 학내 성정치와 관련된 질문을 제기하고 공개하는 건 매우 어렵다. 더 나아가 총학생회, 특기구, 학교 본부의 인사들이 성폭력 혹은 문제적인 언행을 일으켰을 때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성평위가 학생사회 차원에서 문제를 충분히 공론화하고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까. 2015년 문제가 된 박용성 전 이사장의 ‘분칠하는 여대생 뽑지 마라’는 발언에 제대로 문제제기할 수 없었던 성평위의 모습은 제도적 독립성과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산하기구의 무력함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성평위의 사례로만 생각해보더라도 산하기구 체제가 학생사회의 다양한 관심, 감수성, 이해를 포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제도적 독립성이 전제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여러 학교들에서도 이러한 가치가 가장 중시되고 있으며, 이는 우리에게 산하기구 체제 개편과 학칙 개정에 있어서 참고할 사례들이기도 하다.

전체 학생 차원에서 학회, 교지, 동아리, 산하기구 등이 운영되고 있다면, 이러한 움직임이 단과대, 학과, 동아리 전반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단과대 및 학과 학생회, 동아리연합회 및 개별 동아리에서 반성폭력 및 성평등 담당 기구 혹은 주체, 자치 규약, 교육이 확대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학과 학생회에서 단과대 학생회로, 개별 동아리에서 동아리연합회로, 나아가 성정치를 담당하는 산하기구 및 총학생회까지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가 작동할 수 있는 선순환을 만들어내야 한다. 각 단위에서 성평등 주체를 두어 성평위와 연석회의를 꾸리는 방식도 고민해볼 수 있다. 자치 규약, 교육, 담당 기구는 인권센터 성평등상담소 및 성평등위원회와 함께 고민하고 논의함으로써 공동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기층 단위에서부터 출발하는 성정치와 전체 학생 차원을 포괄하는 성정치가 결합됐을 때 학생사회는 감수성과 민주주의의 확산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2015년을 기점으로 학생사회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여러 기구의 설립 혹은 활발한 활동으로 상징되는 것처럼 학생사회 내에 페미니즘과 퀴어 이슈가 조금씩 가시화되고 확산되고 있다. 단기간에 많은 것이 나아질 수는 없지만, 고민과 노력이 점차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렇기에 무엇보다도 이러한 흐름이 학생사회의 제도와 정책, 구성에 녹아들어야 한다. 영페미니스트 운동이 활발했던 1990년대 후반, 대학사회에는 페미니즘이 가시화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대학사회에서 성정치는 힘을 잃거나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연달아 이어지는 총여학생회의 폐지는 그러한 흐름을 대표한다. 지금의 분위기와 흐름이 꾸준히 제도와 정책 영역에 수용되어야만 흐름의 변화와 무관하게 성평등 및 반성폭력 문화의 지속적인 확산을 기대할 수 있다.

분명 적지 않은 것들이 변해왔지만, 앞으로 바꿔나가야 할 것이 더 많다. 학생사회에 속한 개별 구성원뿐만 아니라 특히 학생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가 즐겁기 위해 ‘여기 없다고 여겨지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배제하고 타자화하고 희화화하며 이를 사소화하게 되면 학생정치는 분리의 울타리가 되며 정지한다. 학생사회의 다양한 결을 수용할 수조차 없다. 우리의 변화는 학생사회의 누군가가 자신의 공동체를 덜 불편하고 더 행복하게 느끼고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야만 한다. 중앙대에서 성정치를 고민해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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