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쫑긋쫑긋]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를 만나다

페미니즘은 원래 다양한 거잖아요. (…) 모든 사람들이 각자 처한 위치에 따라 다른 생각들을 할 수 있고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왜 여성들에겐 하나의 목소리를 내라고 하는 걸까요.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어요. 각자의 역량에 맞게 운동을 한다는 측면에서 지지하는 거죠. 저희 세대가 할 역할은 새로운 운동적 흐름을 일방적으로 이끌어가는 게 아니고, 다양한 목소리가 충돌하거나 갈등하면서도 협상하고 연대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쫑긋쫑긋15

|고구미

페미니즘과 관련된 뉴스마다 이름을 올리는 사람. 최근 페미니즘에 대한 논란 속에서 본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제 역할을 다해왔다. 그녀는 더 많은 목소리가 나오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말했다. 묵묵히 연구와 교육을 하고, 시민단체, 학회 등 각종 활동을 병행하면서도, 발화가 필요할 때면 늘 목소리를 더하고 있다. 이번 학기 동안 일요일에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 대학 내 성평등 문화를 만드는 것에도 깊은 고민을 갖고 있는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를 만나 학내 성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요즘 바쁘게 지내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올 한해 페미니즘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인터뷰도 많이 하시고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제가 겁이 좀 없어요. 저는 공부를 나중에 했기 때문에 전업주부의 경험도 있고, 스스로 내 인생을 어떻게 가야 할 것인지 고민하고 내 삶에서 여러 가지를 체험한 후에 여성학이란 걸 선택한 거예요. 이미 그때 바닥을 쳐봤기 때문에 더 이상 바닥칠 것도 없고, 그래서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요.

물론 눈에 보이지 않게 불이익도 있어요. 소송을 당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제가 각종 블랙리스트에 다 올라와 있어요. 세월호 관련 글을 써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도 올랐구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이 정권과 일본 우익들의 타깃이 되기도 하고, 올해엔 특히 일베가 메갈리안이라고 털어서 주변에서 걱정하기도 했고요. (웃음)

그러나 제가 아무리 여성으로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다 해도 정규직 교수라는 굉장히 특권화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해요. 발화에 권위가 있잖아요. 그런 사람이 앞장서서 비판적 발언을 해줘야 상대적으로 취약한 다른 사람들이 잘할 수 있는 동력이 되는 거죠. 저는 그게 두렵지 않아요. 오히려 그럼으로 인해 더 많은 동지를 만나고, 친구와 좋은 제자들을 만나기 때문에 훨씬 에너지와 영감을 받고 저도 계속 성장해가고 있는 거죠. 특히 학생들을 통해 많이 배우고 성장했죠.

최근 중앙대에서 성평등 단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잖아요. 중앙대에 FUQ(Feminists unite with Queers)가 생기기도 했고, 다양한 성평등 행사가 개최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처음에 학교에 오셨을 때와 어떻게 다를까요.

제가 2007년에 중앙대에 왔을 때, 내가 할 역할이 뭔지에 대해 고민했어요. 나는 이제 갓 온 ‘여교수’이니 힘도 없고 하니까 열심히 씨를 뿌리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학생들에게 학내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정치적 발언들도 많이 했죠. 그러다가 2008년에 기적처럼 저에게 학내 성평등 상담소를 만들 기회가 열렸죠. 학내에 상담소가 있긴 했지만 명문상으로만 되어 있었거든요. 2007년에 있었던 교수 성폭력 사건의 영향으로 학생들은 이미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요. 그래서 학생들과 함께 위원회를 꾸려서 성평등 상담소를 만들게 됐어요.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좋은 결과였죠. 그리고 이후엔 인권센터로 확장되었어요. 인권침해 문제가 섹슈얼리티의 문제만은 아니고, 장애인 문제나 성소수자 문제, 교수와 학생 간의 위계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도 있었죠. 그걸 접하면서 각종 취약한 존재로서 학생들의 위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학생들과 함께 길을 걷다 보니 결국 전국 최초로 대학 내 인권센터가 만들어지게 된 거죠.

그렇다면 지금 중앙대에서의 여성주의 활동은 어떻게 보시나요?

지금은 여성주의 학회 여백, 레인보우 피쉬, 성평등 위원회 등이 생겼죠. 저는 지금 중앙대의 흐름이 아주 뿌듯해요. 기본적으로 섹슈얼리티와 젠더 이슈는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젠더의식 없이 섹슈얼리티를 다룰 수 없다고 봐요. 퀴어도 페미니즘 의식이 없으면 실천 불가능하죠. 그런데 훌륭한 친구들이 페미니스트와 퀴어 연대체도 딱 만들어줬어요. 저는 정말 우리 학생들이 자랑스러워요. 하지만 총학생회나 단과대 학생회 등과 너무 분절되어 있는 건 아쉬운 부분이에요.

학생사회의 변화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교수사회 내에도 성평등에 대한 인식의 괴리가 클 것 같아요.

10여 년 전 학내 교수님들의 성인지 감수성은 형편없었어요. 하지만 이후 괜찮은 젊은 교수님들이 꽤 들어오셨고, 계속 서로 얘기하고 활동에 참여하면서 의식이 성장하니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다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어요. 내가 이렇게 말하면 문제제기를 당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생기니까 자기 규율을 하는 분위기가 좀 생겼다고 할까. 적어도 여러 사람이 있는 공적인 자리에서는 성적 농담이나 여성비하 발언을 하는 게 상당히 자제하는 분위기에요. 제가 있을 때와 없을 때가 다르다곤 하지만 (웃음).

임용이나 이런 문제로 여성교수가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나요?
우리 과 교수가 총 11명이고, 그중에 여성이 6명이에요. 전국 어느 학과, 대학에도 이런 곳이 없어요. 대부분의 학과에서는 여성 교수 비율이 현저히 낮아요. 생물학적 여성 한 명을 교수로 채용하고 그 사람한테 여성, 젠더 관련된 것을 다 맡기죠. 하지만 생물학적 여성이 다 페미니스트인 건 아니잖아요.

임용뿐만 아니라 학문적인 내용까지도 많은 영향을 끼쳐요. 페미니스트들은 굉장히 무서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페미니즘은 안 해도 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니까 페미니스트 학자를 안 키우고, 가르치지도 않는 경우가 많죠. 보직 교수 중 여성 비율도 너무 낮고, 말 잘 듣고 순종적인 여성을 토큰으로 뽑고 싶어 하는 경향이 아직 강하죠.

말씀하신 교수사회 내 성차별을 이유로 교수님께서는 학내 성평등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여교수회를 고민하신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우리 학교에 ‘성평등을 지향하는 여교수 모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교수 사회 내 전반적인 젠더불평등도 있지만, 학생들의 문제, 교내 여성 비정규직의 문제 등 여러 가지 차별적인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해요. 여성 교수들과 함께 성평등한 문화를 만들자는 것은 그들이 가진 특권을 해체하라는 게 아니고, 이미 특권을 갖고 있으니 소수성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최소한의 책임감을 갖자는 거예요. 꼭 자기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자기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차별받는다는 걸 인지하길 바라는 거예요. 학생의 문제이면서, 동료의 문제이기도 하고, 사회 문제고, 사실 교육자로서 기본적인 책무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학내에서 추가적으로 필요한 제도적인 부분은 뭘까요?

제도적인 측면에서 가장 시급한 건 인권, 민주주의, 평등, 성평등 등을 교양필수 과목으로 만드는 거예요. 공존과 공생이라는 세상을 보는 기본적 가치관을 습득한 후 기술적인 과목들을 배워야 그 기술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사용될 것인지 알게 되잖아요? 이건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기본전제이기도 하지요. 그러니 의대, 공대 같은 학과에서도 반드시 필요하구요. 입시 위주 교육에서 미처 습득하지 못한 이런 인식론을 대학에서 가르쳐야지요. 중앙대 학생들이 이런 감수성 정도는 갖추게 되면, 학생 스스로도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회적 평판도 높아질 터이니 소위 학교 ‘브랜드 가치’도 올라가겠죠. 무엇보다 차이와 다양성이 중요해질 미래에 반드시 필요한 과목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적인 이야기를 여쭙고 싶습니다. 올해 다양한 여성운동이 있었는데, 사실 한국의 여성운동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잖아요. 이런 의미에서 최근 한국 페미니즘의 역사를 설명해주는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라는 책이 출판되기도 했고요. 그동안 어떤 여성운동이 있었는지 설명해주시겠어요?

한국 페미니즘은 19세기 후반인 1898년에 발표된 <여권통문>이 그 시작이라 볼 수 있어요. 여성도 인간이라 주장하면서 평등한 교육의 기회, 직업의 중요성 등을 강조했지요. 이러한 흐름은 일제 식민지 시기까지 이어져요. 하지만 식민체제 하에서는 민족독립이 가장 중요했고, 이후엔 전쟁, 독재체제, 군사정권 등을 겪으면서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이 성장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물론 여성 노동자 운동이나 교회여성운동 등 각종 인권 운동들이 명맥을 이어 왔습니다. 하지만 집단적으로 여성운동이 등장한 것은 80년대라고 볼 수 있어요. 민주화의 과정에서 진보 여성운동이 발생한 거죠.

서구에서는 참여권, 참정권, 노동권, 교육권 등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운동이 200년을 갔어요. 이걸 First Wave라고 해요. 그 후 소강상태였다가 68혁명 이후에 일상, 문화, 섹슈얼리티 등 다양한 영역 속에서 여성의 실질적인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이 있었어요. 이게 Second Wave에요. 서구는 이렇게 순차적인 역사가 있지만, 한국은 80년대에 운동이 시작되면서 법, 제도, 문화, 성적 권리 등의 아젠다들이 한꺼번에 들어오죠. 실질적으론 90년대부터 여성과 관련된 법이 본격적으로 제정되거나 개정되었고, 불과 10년 안에 상당한 수준의 법 제도 개정이 이루어졌지요. 문제는 제도적으론 서구가 2, 300년간 싸워서 만든 것을 상당 부분 획득했다고 하더라도, 성평등에 관한 시민의식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거예요.

동의합니다. 이번 촛불집회 내 여성혐오 문제를 보면서도 우리 사회 내 성평등 의식이 매우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올해가 굉장히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생각해요. 2008년 광우병 사태, 노무현의 죽음, 그때 등장한 일명 ‘촛불 소녀’라는 여고생 촛불시위 등이 있었죠. 저는 이게 87년 이후 20여 년이 지나면서 민주주의적인 제도뿐 아니라 이를 실천하는 시민들이 성장한 것이라고 봐요. 이들이 10년이 지난 지금은 20~30대 중후반이 되었고, 2015년엔 메갈리아가 등장했어요. 이들이 택한 전략은 미러링이었죠. 그리고 2016년엔 강남역 살인사건이 폭발적인 전환점이 되었죠. 강남역 살인사건은 일반 여성들이 일상에서 여전히 취약하며 불안하고, 잠재적 피해자의 위치에 놓여있다는 걸 보여주었죠. 그래서 여성혐오에 의한 살인이라고 명명한 것이고요. 많은 사람들이 성폭력 필리버스터를 했고, 이후에 구의역 사건에서는 추모 포스트잇을 붙이기도 했고, 이후엔 메갈리아 티셔츠 사건이 나죠. 겉보기엔 남녀갈등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론 남성 지배사회에서 그동안 발화할 위치가 없었던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어요. 이것은 서구의 Second Wave에서 떠오른 주요 아젠다와 동질성을 지니는데요. 재생산권과 연결된 낙태죄, 성폭력, 일상 속의 성매매, 이와 연결해 위안부 문제까지. 이런 것들이 다 남의 문제이거나 개별적 문제가 아니고,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 그러기에 사회 구조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싹튼 것이지요. 여성들은 어린 시절 여성이기 때문에 겪었던 차별의 경험, 성추행이나 성희롱의 경험들을 끄집어내면서 상호공감과 연대감을 확장시킬 수 있었지요. 개별적인 문제라고 생각했고, 개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라는 인식의 확장이 이루어진 거죠.

올해 여성운동을 어떻게 보셨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길 희망하시나요?

지금의 여성운동은 8, 90년대 방식의 조직된 집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율적으로 의식화된 이들의 느슨한 연대체에 의해 추동되고 확산되고 있어요. 평등의식을 직접 몸으로 체화한 개인이 온라인에서 문제의식을 확장하면서 집단 지성을 발휘하고, 새로운 연대체를 구축하고 있는 거죠. 이들은 실제 현장에서 자기 몸으로 문제를 표현하는 걸 익히고 체화하고 하는데, 저항감각을 몸으로 체험하게 된 거죠. 사실 이론적으로 익힌 인식론의 전환은 굉장히 허약할 수 있거든요. 지금 세대는 민주주의, 인권, 평등 등을 몸으로 직접 체현했어요. 과연 이게 쉽사리 사라질까요? 전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봐요. 길게 보면 이 사람들이 앞으로 20년, 30년 뒤에 대한민국의 허리가 될 때 대한민국이 더 나은 사회로 흘러갈 것이라고 믿는 거죠. 이게 굉장히 독특한 2016년 한국의 페미니즘 흐름이라고 봅니다. 저는 사회정의 프로젝트로서 페미니스트 운동이 아래로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봅니다.

특히, 여성운동에서 메갈리아의 등장이 큰 이슈였습니다. 페미니스트 내부에서도 처음엔 메갈리아에 대한 입장이 갈리기도 했는데, 교수님께선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전 다 지지해요. 페미니즘은 원래 다양한 거잖아요. 이번 DJ DOC 사건도 그렇고, 사람들이 ‘어떤 여자들은 괜찮다는데 왜 너희들이 이러느냐’ 이런 질문을 해요. 남자들이 다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여자들의 생각도 다양하지요. 각자 처한 위치와 이해관계에 따라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거에 매달리고, 거기엔 계급, 세대, 의식의 층위 등이 있잖아요. 모든 사람들이 각자 처한 위치에 따라 다른 생각들을 할 수 있고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왜 여성들에겐 하나의 목소리를 내라고 하는 걸까요.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어요. 각자의 역량에 맞게 운동을 한다는 측면에서 지지하는 거죠. 저희 세대가 할 역할은 새로운 운동적 흐름을 일방적으로 이끌어가는 게 아니고, 다양한 목소리가 충돌하거나 갈등하면서도 협상하고 연대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