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는 처음부터 물었으면 좋겠다

나는 처음부터 물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어떤 실수를 했고,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아니 그 전에 우리는 누구인지, 우리의 방식은 무엇인지부터 함께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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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서울캠퍼스 중앙마루에서 진행된 ‘중앙대학교 시국선언’ 행사에는 8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굿과 서예 퍼포먼스를 거쳐 여러 학과와 단과대, 양 캠퍼스 총학생회장들이 릴레이로 시국선언문을 낭독했다. 학생들은 촛불을 들고 함께 참여했고 나는 서서 그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행사를 마친 후 대표자 몇몇을 붙잡고 물었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실 예정이신가요?”

 

다소간 침묵이 이어졌다. 물어보는 나도 사실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시국선언문엔 ‘국민’, ‘주권’, ‘헌법’, ‘의혈’같은 단어가 많이 나왔다. 대동소이한 내용의 글을 엄중한 목소리로 읽어가던 대표자 중 다음 행보를 언급한 사람은 행진을 기획한 한 학과뿐이었다. 촛불집회, 시국선언, 대자보, 행진, 광화문 집회 참여. 그다음엔 뭘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의혈이 한강을 건너면 역사가 바뀐다.”

 

행사 내내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문장을 듣고 뒤틀린 나는 “정말?”이라고 반문하고 싶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날마다 내가 당장 자살하면 안 되는 이유를 하나씩 추가하려고 애를 썼는데 그중에 뭐가 있었냐면 내 장례를 치르기 위해 엄마·아빠가 당장 써야 하는 목돈이 있었다. 돈 때문에 죽고 싶었는데 돈 때문에 죽지도 못하는 **’ ‘근데 니들은 마냥 웃겼겠다. 국민연금 다 해 처먹으면서 *나 웃겼겠다. 우리가 죽을 돈이 아까워서 살아가는 꼬라지가. 아니 웃기기는 했니?’

 

11월 14일 연세대학교 대나무 숲에 올라온 글의 일부다. 한강을 건너 역사를 바꾼 것도 대학생, 글쓴이도 대학생인데 뭔가 좀 많이 다른 것 같다.

 

“대한민국의 지성인으로 우리가 부여받은 소명에 얼굴을 맞대고 진척의 언덕에 깃발을 꽂는 우리는 중앙대학교 학생이다”

 

총학생회장은 시국선언문을 읽어 내려갔다. 양복을 입고 큰 목소리로 외치는 그와 촛불을 들고 그를 지켜보던 우리에겐 아픈 소리를 할 틈은 없어 보였다. 자꾸 어색해졌다. ‘의혈’도 ‘지성인’도 ‘소명’도 사실 좀 부담스러웠다. 나는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데, 또 누구는 돈이 없어 죽지도 못 하는데, 다 해 처먹는 저것들을 향해 분노를 내뱉는 건 너무 대학생답지 못한 걸까, 나는 대학생다운 마음을 가진 게 아닌 걸까.

이 와중에 ‘우리는 소시민’이라고 말하는 학생회가 있었다. “예술대학 학생회는 올해 침묵했습니다”라고 말을 시작한 그들은 ‘이렇게 글 한 번 쓰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고 했다. 그들의 시국선언을 듣고 질문이 생겼다. “앞으로 어떤 행사를 할 거예요?” 가 아니라 “왜 우린 글 한 번 쓰는데 이렇게 힘들까요?” 묻고 싶었다. 이야기 나누고 싶어졌다.

그들은 사과를 했다. 처음 들어본 사과였다. ‘프라임 사업 때, 예술인 블랙리스트 사건 때 목소리 내기를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학우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왜 그때는 목소리를 못 냈어요? 물어보고 싶었다. 그들을 추궁하자는 게 아니다. 거기에 있던 대다수의 학생회가 시국선언은, 아니 대자보는, 집회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모두 처음처럼 굴지 않았다. 모두들 항상 해왔던 것처럼 의연했다.

나는 그게 어색했다. “시국선언”도 “지성인”도 “한강도하행진”도 우리가 줄곧 해오던 말들은 아니었다. 나는 그 말까지 건너가는 게 조금은 어려웠다. 인터뷰에서 예술대 학생회장은 “다음 학생회는 우리가 했던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처음부터 물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어떤 실수를 했고,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아니 그 전에 우리는 누구인지, 우리의 방식은 무엇인지부터 함께 찾고 싶다.

 

* 사진 제공 : 교지 <중앙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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