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두 번째 푸큐 영화제를 마치며

FUQ로고

| 잠만보

두 번째 FUQ 영화제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공부도, 감수성도 한참 부족한 내가 정말 FUQ 활동을 해도 될지, 이 공동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이제는 누군가에게 FUQ에 대해 소개하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져 버렸다. FUQ(푸큐: Feminists Unite with Queers)는 페미니스트와 퀴어가 연대하여 소수자인권에 대한 인식과 젠더 감수성의 확산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공동체다. 현재 녹지, 레인보우피쉬, 성평등위원회, 여백, 자유인문캠프, 중앙문화와 같은 교내 단체들이 FUQ를 구성하고 있고, 2015년 여름부터 첫 번째 FUQ영화제 기획을 시작으로 매 학기 페미니즘과 퀴어 이슈를 주제로 다양한 행사들을 하고 있다.

올해 FUQ 영화제는 아직 더위가 한창이던 8월 끝자락에 기획회의를 시작해서 겨울의 초입이 돼서야 개최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을까’의 고민이 매주 이어졌고, 때때로 진전없는 논의 속에서 자신감을 잃는 순간들도 있었다. 영화제의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 프로그램 구상, 상영작 및 연사 섭외, 후원금 모금과 홍보물 디자인까지 해야 할 일들은 많은데 기획단 대다수가 실무경험이 부족했고, 학업과 병행하다 보니 일에 대한 집중도도 FUQ에 가진 애정과 책임감에는 비례하지 못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늘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주변 분들 덕분에 ‘우리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하는 걱정을 덜어내고 부족한 부분들을 하나씩 메워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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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개최된 영화제는 11월 1일부터 나흘 동안 총 세 편의 영화와 한 편의 강연으로 구성되었다.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의 낙태 경험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자, 이제 댄스타임>. 편견과 차별에 맞서 가족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게이커플과 다운증후군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초콜렛 도넛>. 끊임없이 혐오를 양산하는 세력과 이에 대응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모습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불온한 당신>. 총 세 편의 상영작과 함께 각각 조세영 감독, 나영정 활동가(SOGI법정책연구회, 장애여성공감), 이영 감독을 GV에 초청했다. 나영 활동가(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의 “페미니즘 × 퀴어, 섹시하게 함께하기” 강연은 페미니스트와 퀴어가 어떻게 연대하여 차별과 위계로 가득한 사회에 균열을 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시사했다.

고민하고 갈등했던 만큼 좋은 작품, 좋은 강연으로 채워진 영화제였다. 1회 영화제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들도 있었다. 영화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9~10월 동안 텀블벅 후원페이지를 운영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무사히 목표 금액을 달성했고, 그밖에도 지난번과 같이 여성/성소수자 친화적 기업과 단체에 문의를 하여 후원금을 모으기도 했다. 인권센터와의 협력 또한 색다른 경험이었다. 인권주간과 FUQ 영화제 기간을 맞춰서 각종 부스사업과 강연, 휴먼북 등 풍성하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영화제와 함께 열릴 수 있었다.

출처: 중앙문화

출처: 중앙문화

아쉬운 점도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행사 진행이 너무 미숙했고 내내 실수를 연발했다. 전체적으로는 준비가 더뎠던 만큼 충분한 홍보가 이뤄지지 못한 탓인지 참여 인원이 예상보다 적었고 우리만의 축제가 된 듯했다. 두 달여 동안 열심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행사가 끝나자 허탈함이 밀려왔다. 뒤이어 ‘우리끼리는 얼마든지 소통하고,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다 해도 그 이상의 것들, 더 많은 사람들과 가치를 공유하고 외연을 넓히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할까?’하는 고민도 따라왔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섣불리 그런 걱정을 하기에는 모든 일을 손쉽고 간편하게 처리하려고 하지 않았나 하는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어떻게든 영화제를 치러내야 한다는 의무감만 가득했고 정작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고 싶은 건지에 대한 핵심이 없었다. 한동안 FUQ에 관련된 사람과 일이라면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미안함과 창피함을 안고 지냈다. 나 같은 사람이 FUQ에 속해도 될까를 고민하던 그 시기 동안 느꼈던 공동체가 가진 무게감과 중요성을 새삼 곱씹어보게 되었다. 앞으로 FUQ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그 무게감과 중요성만큼 신중하게 논의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기획에는 스스로도 그런 고민들이 선행되지 못했고, 기획단 내부에서도 영화제에만 초점을 맞춰 FUQ 자체의 운영이나 방향성에 대한 논의들을 충분히 나누지 못했던 것이 제일 아쉽고 후회된다.

영화제 이후 진행된 피드백 회의에서도 비슷한 의견들이 이어졌다. 매 학기 꾸준하게 행사를 기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FUQ의 내실을 다지고 구성원 간의 교류를 늘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더불어 매 학기 담당자가 바뀌는 현재의 시스템보다는 1년 단위로 장기적으로 FUQ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영화제의 경우에는 제일 큰 행사이기 때문에 기획 시기를 앞당겨 보다 다양한 논의와 신중한 결정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지배적이었다. 이번 행사를 치르며 우리가 부족했거나 놓치고 지나갔던 부분들에 대한 아쉬움을 구성원들 모두 동감하고 있었다.

출처: 중앙문화

출처: 중앙문화

우리 이야기를 계속 할 수 있는 장을 넓혀나간다는 의미에서 FUQ의 역할은 중요하다. 페미니스트와 퀴어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모여 ‘정상’과 규범의 사회가 만들어내는 억압과 타자화에 대항할 방법들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이 연대가 더욱 소중하다. 하지만 단지 우리에게 이야기할 장이 필요하고 계속해서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에 FUQ가 지속돼야 하는 거라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이 공동체의 의미를 물어야 할 때인 것 같다. 우리가 정말 흔들고, 깨뜨리고, 새로 짜고 싶은 판은 뭘까. 어떤 방식과 대안들로 그것을 실천할 수 있을까. 밖으로 목소리를 냈던 만큼 이제는 내부의 소통과 재정비를 통해 그 답을 찾아야 한다.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FUQ가 만들어온 경험이 이 연대의 가치와 가능성을 설명해주듯이 앞으로 이어질 치열한 고민의 과정은 FUQ를 보다 성장시킬 것이다. 그 점이 더더욱 FUQ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질 더 많은 시도와 이야기들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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