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S] 애틋한 만큼 되고 싶지 않은

여성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엄마가 될 몸이자 걸어 다니는 아기 자판기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어느새 나는 20대 서울 가임여성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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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바

뒷목이 차가운 느낌에 꿈에서 깬 후, 젖은 베개가 불쾌할 새도 없이 세상 모든 신에게 진심을 다해 감사함을 중얼거린다. 양팔 가득 선물을 안고서 사람들과 마주 앉아 있는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겁에 질려 있었다. 눈치를 살피며 애매한 미소와 함께 전달되는 축하 인사를 세 번째 받는 순간 비로소 내가 홀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오고 가는 어색한 축복 속엔 덩그러니 놓인 어제와 다를 바 없는 23살의 내가 있다. 휴학을 고민하며 시급으로 시간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교 3학년생은 아이에 대한 준비는커녕 졸업 후 진로도 결정하지 못한 채 아기 신발을 건네받곤 애써 담담한 척 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번은 약국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망연자실하던 꿈이 깨고도 한동안 가시지 않는 현실감에 줄곧 이불 끝을 붙잡고 있었다. 잔 감정이 채 가시기도 전 부리나케 탁상 위 달력을 반쯤 감긴 눈으로 세어본다. 이처럼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잉태’의 악몽은 당시 애인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주기적으로 나를 찾아온다. 물론 잠에서 깬 옆자리에 타인과 함께라면 그 공포가 배가 되는 것쯤이야 너무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혼자 침대에서 깬 들 이 같은 악몽은 결코 나를 피해가지 않는다. 단편시리즈마냥 매번 조금씩 바뀌는 꿈에서 조차 항상 변하지 않는 설정이 있다면 현실 그대로인 나의 모습과 결국엔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 있다.

전날 보다 잠든 좀비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 보다 주변사람들의 축복이 훨씬 두려운 이유는 그것이 전달해오는 현실성에 있다. 후자는 당장 내일의 일이 될 가능성이 다분해 눈을 뜬 후에도 꿈이기에 안도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현재의 나는 하고 싶거나 되고 싶다 여기던 목록들을 직접 손으로 지워나갈 생각이 없기에 이 악몽의 갈래들 그 중심에는 조용히 무너져갈 스스로가 서 있다. 특히 반복적으로 두려움의 기로에 서 스스로 몸을 되짚는 시간들은 정신적인 가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함께 걱정하는 상대방의 존재도 직접적으로 내 신체를 통해야 하는 검열 과정의 초조함이나 죄책감을 상쇄시키지 못한다.

이때 불안을 동반한 거짓말처럼 희미해지는 서로에 대한 신뢰는 꿈에서와 같이 마지막 선택지 하나만을 남겨둔다. 지금의 나는 나 이외의 또 다른 삶 하나를 책임질 용기도 능력도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존재하고 똑같이 살아가고 싶은 두 생명 사이 엄마인 것은 일단 그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난다. 삶과 주체로써 나를 지키고 싶은 결정은 여러 곳에서 범법행위로 처벌 받고 다수에게 살인이라 이름 붙여진다. 범죄자가 되지 않기 위해 신분도 확인되지 않는 의사에게 손을 뻗거나 행여 다른 선택을 하더라도 이는 줄곧 ‘사고’라는 프레임에 갇혀 사회의 눈총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중요한 건 좀 더 나아진 상황이 가정되더라도 결론은 크게 변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올라간 나이나 안정적인 직장 혹은 배우자와 함께 일 때조차 여전히 ‘준비’는 어렵다. 본능과 동일시되는 모성애를 강요받으며 육아휴직이 곧 퇴사의 여부와 가까워지는 곳에서 나에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길에서 마주하는 아이에게 쉽게 시선을 떼지 못하지만 그게 전부이다. 아이를 위해 삶을 움직이지 않는 부모, 특히 엄마는 실제로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될 뿐이다.

가끔 나는 엄마에겐 차갑고 아빠에게 무심한 딸이 된다. 그 철없는 이기심은 항상 받는 이의 포용과 희생으로 돌아오며 의무라 여기던 그들의 헌신이 사실 사회가 만든 부모라는 역할과 함께한다는 걸 배웠다. 부모의 기준에서 아내의 역할은 남편의 역할보다 무섭도록 엄격하다. 그게 또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만큼 더 자신이 없어 졌다. 가부장제 혹은 권위와는 거리가 멀 것만 같던 아빠도 직장인인 엄마와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누지 않는다는 사실을 20년도 더 지나서야 문득 깨달았다. 똑같은 출근시간에도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 것은 필히 엄마의 몫이었으며 아빠는 본인의 ‘도움’을 자랑스러워했다. 엄마가 명예 혹은 일에 대한 열정을 보이는 것은 자식인 나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과욕이라 느꼈고 동시에 그것이 아빠에겐 당연한 ‘사회생활’이 된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지나치게 평화롭고 누구도 부당하다 먼저 목소리를 내지 않던 지난날에 작아진 엄마가 이제야 눈에 선명해졌다.

휴대폰으로 비친 분홍색으로 난무된 통계사진에 말문이 닫혀버린다. 지난해 말 국가는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통해 가임여성 인구수를 공개했다. 여성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엄마가 될 몸이자 걸어 다니는 아기 자판기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어느새 나는 20대 서울 가임여성이 되어 있었다. 일상에서도 누구에게나 쉽게 엄마가 될 사람이라 가정되며 혹 이에 반기를 들 땐 대게 감정이 없거나 ‘국민’의 의무를 배반 한다 손가락질 받는다. 그래서 종종 타인에 의해 골반 넓이를 공개적으로 평가받으며 언제든 신체만으로 그 가치를 평가받는 국가의 공공재 역할도 할 수 있어야 했다. 여성으로써 국민의 의무가 비어있다면 언제든 채울 수 있는 자궁을 준비해야 하는 사회라면 나에게 필요 없다. 그리고 그런 곳에선 앞으로도 의무를 다할 생각 역시 없다. 그동안 묵묵히 자신을 놓쳐온 엄마가 애틋한 만큼 그녀처럼 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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