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S] 나의 빈곤, 그리고 페미니즘

무지와 가해의 조건을 이해하는 것과 그것들을 정당화하는 것은 구분되어야만 한다. ‘가난해서 몰랐다’ 혹은 ‘못 배워서 모를 수밖에 없다’는 말은 현실의 조건을 지적하고 있기도 하지만, ‘빈곤층’을 타자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말들이기도 하다. 무지를 빈곤으로 정당화하는 논리는 빈곤을 무지와 연결 짓고 빈곤층을 혐오하고 타자화하는 논리의 양면이다.(‘못 배우고 가난하니 모를 수도 있다’가 ‘가난해서 저렇게 몰라’라는 말의 양면인 것처럼) 그렇기에 ‘저소득-저학력’이라는 사회경제적 조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다른 개인을 세심하게 상상하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보통 남자“가 무지와 가해를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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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경

나는 날 때부터 저소득층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빈곤은 성장의 기억 곳곳에 들어차있고, 현재의 삶에서도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마다 마주하게 된다. 저소득층이라는 사회경제적 배경과 그 정체성은 삶을 옥죄는 사슬이다. 무언가를 더 가까이 보고 싶어서, 조금 더 멀리 있는 것들을 마주하기 위해서,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싶을 때, 단단하고 아프게 발목을 당기는 무언가. 점차 무뎌지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나는 꽤 힘들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어’라고 생각했다.

빈곤과 불평등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선택했던 학과에는 여성학 수업이 있었다. 그곳에서 배운 ‘교차성’ 개념은 나의 세계를 크게 뒤흔들었다. 내가 젠더, 인종, 섹슈얼리티, 계급, 학력, 장애 등의 교차에서 피해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가해자였다는 것을, 피착취자인 동시에 착취자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좁은 틀이 와장창 깨져버리는 느낌이었다. 이때부터 저소득층이라는 계급적 ‘열등함’이 다른 교차를 상상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동력이자 렌즈가 되었던 것 같다. 빈곤은 교차로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었고, 페미니즘을 향한 통로가 되었다.

부족하지만 조금씩 공부해갔다. 페미니즘은 시스젠더-헤테로-남성인 나를 설명하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백인-중산층-비장애-시스젠더-헤테로-남성-…이라는 이상적 ‘인간상’은 비정상성과 비규범성을 배제함으로써만 구축될 수 있었다. 페미니즘은 오랜 기간 이 역학에 천착해왔고 많은 것을 드러내 보였다. 비정상성과 비규범성으로 배제되는 여집합들을 설명하는 과정은 곧 그것들을 배출해냄으로써 유지되는 ‘상상의 집합’에 대한 설명으로까지 이어졌다. 나는 그곳에서 가득 찬 균열을 감추고 있는 ‘시스젠더-헤테로-남성’이라는 ‘순수’의 불안정성과 취약성을 목격하게 됐다. 남성을 인간과 등치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남성성’에 대한 설명을 상실한 철학, 이론과 달리 페미니즘은 ‘여성성’에 대한 고통에 찬, 집요하고 면밀한 성찰과 탐구를 이어갔다. 어찌 보면 역설적이게도, 나는 페미니즘을 통해서야 ‘남성성을’ 인식하고 고민하고 성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경험이다. 그렇기에 ‘내가 했으니 당신도 해야 한다’는 말은 가당치도 않다. 저소득층인 내가 페미니즘을 접하고 나의 삶과 위치를 페미니즘의 사유와 연결지어볼 수 있었던 것은 학벌 때문이었다. 나의 빈곤이 교차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 것 또한 진학한 학교에, 학과에 그러한 사유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특별히 뛰어나거나 풍부한 도덕성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나는 비록 가난했지만, 학벌의 사다리를 부여잡았기에 페미니즘을 알 수 있었고 비로소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저소득, 저학력 “남성”에게 그 사회경제적 조건이 페미니즘을 접하는 데 있어 주요한 방해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페미니즘은 단순히 공감이나 선함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부와 고민, 성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여유와 자유는 공존할 수 없었고 사상과 철학을 공부할 수 없었”다는 정중식씨(중식이밴드)의 말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솔직한 고백일 지도 모른다. 한국사회의 구조 속에서 저소득, 저학력 “남성”이 페미니즘을 접하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렇다면 저소득, 저학력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 특히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접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 그럼에도 그들을 면하게 해줄 수 있는 길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결코 무익한 일은 아니리라 믿는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들은 무지 혹은 가해에 대한 정당화가 아니라 그것들의 조건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과 연결되어야 한다. ‘평범한 개인들’이 성차별, 성폭력, 여성혐오, 대상화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수행하게 만드는 구조와 조건 말이다. 무지와 가해의 조건을 이해하는 것과 그것들을 정당화하는 것은 구분되어야만 한다. ‘가난해서 몰랐다’ 혹은 ‘못 배워서 모를 수밖에 없다’는 말은 현실의 조건을 지적하고 있기도 하지만, ‘빈곤층’을 타자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말들이기도 하다. 무지를 빈곤으로 정당화하는 논리는 빈곤을 무지와 연결 짓고 빈곤층을 혐오하고 타자화하는 논리의 양면이다.(‘못 배우고 가난하니 모를 수도 있다’가 ‘가난해서 저렇게 몰라’라는 말의 양면인 것처럼) 그렇기에 ‘저소득-저학력’이라는 사회경제적 조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다른 개인을 세심하게 상상하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보통 남자“가 무지와 가해를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가난해서 배울 수 없었고, 그래서 모를 수밖에 없다는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는 “여성”들과 또 다른 “남성”들을 지워버린다. ‘저소득-저학력’이라는 유사한 사회경제적 조건하에서도 누군가는 페미니즘을 공부한다. 그렇게 공부를 시작하는 이들은 주로 삶을 통해 불평등과 차별, 폭력과 혐오를 경험한 이들이다. 물론 이들도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자신이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교차점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할 것이다. 하지만 ‘필요한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것’처럼 피해 입은 이들만이 공부하는 것은 어딘가 부당하지 않은가. 그들에게 차별과 폭력, 혐오를 가한 이들, 혹은 가할 수 있는 이들이 그대로라면 말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여성들”이 바라는 것은 모든 이들이 오랜 시간을 들여 어려운 페미니즘 이론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남성”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그럼으로써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위계에서 얻고 있는 권력과 이익, 누군가에게 가했거나 가할 수 있는 차별과 억압, 폭력과 혐오를 고민하고 성찰하라는 요구는 지나치지 않다.

(저소득과 저학력이 뭉뚱그려지는) 빈곤이라는 것은 또 어떤가. ‘빈곤 청년’이라는 언어가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처럼, ‘빈곤층’은 주로 “남성”으로 상상되고 만다. “남성들”의 입과 손에서 만들어진 빈곤한 “여성”은 주로 늙거나 병들거나 효녀이거나 ‘창녀’일 뿐이었다. 드라마는 여기에 ‘청담동 앨리스(신데렐라)’ 정도를 끼워 넣었을 뿐이다. 분명 빈곤층 여성은 무엇도 손에 쥘 수 없었지만, 빈곤층 남성은 누구라도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계급적으로 하층에 위치해있더라도 그들에게는 가부장의 권력이 주어졌다. 빈곤의 계보 속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가 겪어온 서사처럼 말이다. ‘가난’에서마저도 모두가 똑같이 ‘가난’하지 않다.

종종 ‘페미니즘은 남성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말을 접하게 된다. 페미니즘은 성별이분법 하에서의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 성역할, 이성애각본을 비판한다. ‘성별’에 부착된 역할과 의무를 떼어버리는 것,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의 삶에도 기여한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남성’의 삶에 기여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기는 것이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 이전에 불평등한 사회에서 젠더의 차이가 어떤 차별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성찰해야만 한다. 페미니즘에서 그저 ‘남성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나를 정당화하고 연민할 수 있는’ 부분만 취사선택한다면, 그것을 공부나 고민 또는 성찰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언젠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년 간 가정, 학교, 미디어, 혹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나의 몸 곳곳에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인 권력의 글귀를 새겨 넣었다. 많은 것들을 체화했고, 또한 많은 것들이 말과 행동에 반영되었다. 그런 내가 불과 몇 년을 공부했다고 해서 그것들을 지워낼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수 없다. 그저 채 지워지지 않은 글귀들을 지우고 또 지우고, 다 지워지지 않은 흔적을 기꺼이 안고 성찰하는 삶을 이어가는 것만이 유일한 길일테다. 그게 내가 죽을 때까지 페미니즘을 공부해야겠다고, 그래서 영영 가닿을 수 없을 페미니스트라는 지향을 위해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문신은 새기는 과정도 쉽지 않지만, 지우는 데는 시간과 비용, 아픔이 훨씬 더 크게 요구된다고 한다. 전부 지워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한국사회에서 ‘헤테로섹슈얼/시스젠더/남성/비장애인/…들’은 각각의 위계에 따라 자신의 몸 곳곳에 수십 년 간 권력과 폭력의 글귀를 새겨나간다. 그러한 정체성 밖의 ‘여집합들에 속한 이들’은 그 위계에 의해 수십 년 간 상처와 고통, 혐오의 흉터로 몸을 가득 채워간다. 권력과 폭력의 글귀는 새겨지던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비용, 고민과 성찰을 동반해야만 지워질 수 있으며, 그마저도 전부 지워지지 않는다. 상처와 고통, 혐오의 흉터는 어떠한 것으로도 보상될 수 없고, 완전히 아물지도 잊히지도 않는다. 우리는 그런 사회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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