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310관이 기억하는 것

벽면을 바라봤다. 그곳엔 생략되고 삭제되고 조립된 것이 너무 많았다.

|따아 

국내 대학건물 중 최대 규모라고 했다. 310관(100주년 기념관 및 경영경제관) 얘기다. 무려 지하 6층부터 지상 12층까지 있다. 아찔하리만큼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310관을 보고 있자니 일상이 되었던 공사장과 그곳에서 매일 같이 들려오던 소음, 좁고 불편했던 통행로 같은 것들이 아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른 주변 시설들과는 잘 어우러지지 않는 듯한 거대하고 세련된 외관을 거쳐, 탁 트인 미로 같은 내부를 걸어가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310관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100주년

100주년 기념관 준공식 ⓒ 100주년 기념사업단 

310관의 정식 명칭에는 ‘100주년 기념관’이란 말이 붙는다. 다가올 2018년이 개교 100주년이라고 한다. 학교 홈페이지에는 ‘중앙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 배너가 따로 있고, 310관 2층에는 ‘100주년기념사업단’ 사무실도 있다. 조금 찾아보니 학교는 2000년대 초반부터 중앙대 발전계획(현 ‘CAU 2018+’)을 세우며 개교 100주년을 맞이할 준비를 요란하게 시작한 듯하다. 2018년이 개교 100주년인 건 초기의 ‘중앙유치원’도 포함한 거라나.

100주년 기념관답게 1층 로비 벽면에는 그간 중앙대의 사진 1,780장들로 구성된 ‘History Wall(Flash100)’이 전시되어 있다.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면 ‘100’이란 숫자도 크게 보인다. ‘100년’이란 말이 상징하는 것은 결국 ‘유구한 역사’일 테다. 격자무늬로 배열되어 있는 사진들을 쭉 살펴보다 ‘이 사진들은 다 누가 고른 걸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비교적 최근의 사진들을 눈여겨보다가 비리로 구속되었던 박용성 전 이사장의 얼굴에서 시선이 멈췄다.

박용성

박용성 전 이사장. 뇌물, 회계 전출 등 ‘중앙대비리’로 지난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History Wall’이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있는 내력 중에는, “2011년 본·분교 통합과 적십자간호대학 인수”가 있다. 자연스레 다시 눈을 돌려 박 전 이사장의 얼굴을 봤다. 저 얼굴을 가까이서 본 적이 있다. 서초동 법정에서 봤다. 그때의 기억이 조금씩 떠올랐다. 언론에 연신 중앙대가 보도되던 그때. 파란 검찰박스가 캠퍼스에 등장했던 그때. 나는 박 전 이사장과 박범훈 전 총장의 공판에 참관한 적이 있었고 그들은 후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죄목 중에는, 바로 저 본·분교 통합과 적십자간호대학 인수가 있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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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성은 교수의 목을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쳐줄 것”이라던, 바로 그 이사장이다.

비리로 얼룩진 역사는 어느새 자랑스러운 역사로 탈바꿈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전시된 공간이 310관이라는 점도 아이러니했다. 310관은 서울캠퍼스의 고질적인 공간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열쇠’처럼 여겨졌다. 공간문제가 불거질 때면 학교 본부는 해결책으로 늘 310관을 내세웠다. 그런데 그 기형적인 공간문제를 초래한 것이 바로 본·분교 통합 그리고 단일교지 승인이었다. 2 하지만 그 모든 맥락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조금 옆으로 걸음을 옮기니 어떤 이의 부조상이 보였다. 오른쪽의 설명을 읽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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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성 전 이사장이 비리로 학교를 떠난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의 형제가 이사장에 취임했고, 동판이 되었다.

두산 체제 아래 행해졌던 모든 것은 어느새 ‘성장’과 ‘발전’이 되어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성장’은 가시적인 결과물로 나타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내 새로운 건물들이 지어졌고, 중앙일보 대학평가 순위는 10위권 내로 진입했다. 하지만 그 이면엔 이사장 중심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이 있었다. 그 결과 학과가 사라지고, 언론의 자유가 침해되고, 이러한 흐름을 반대하는 학생들은 징계당했다. 조금 무서워졌다. 시간이 흐른 뒤에 그 모든 것들이 세세한 맥락이 삭제된 채 ‘성장’이나 ‘발전’ 따위로 기억되면 어떡하지?

 

그 앞을 스쳐 지나갔을, 그리고 앞으로 지나갈 수많은 사람을 상상해봤다. 이 광경은 그들의 의식에 조금씩 그러나 공고히 쌓여갈 것이고 이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될 것이다. ‘History Wall’이 보여주는 건 결국 학교 본부가 기억하고 싶은, 내세우고 싶은 역사다. 그리고 그곳에 박 전 이사장이 있다는 것은 학교 본부가 그로 대표되는 과거의 과오를 반성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반성하지 않음을 넘어, 그의 형제의 얼굴을 우상화하여 벽에 박제함으로써 여전히 두산의 가치가 유효함을 드러내는 암시다.

 

그래서 기록은 중요하다. 화려한 벽면 뒤편의 역사를 끄집어내고 폭로하는 것이 그래서 필요하다. 학교 본부도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 기록의 기능을 성실히 수행해왔던 교지편집위원회(교편위)에게 아직도 공간을 내주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교편위, 즉 <중앙문화>와 <녹지>는 철거가 예정된 학생문화관(206관)에 남아 여전히 공간 문제로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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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벽(‘History Wall’)을 통해 기록되고, 이로써 ‘기억돼야 할’ 정돈된 것들과 불순물이 나뉜다.

 

이해는 간다. 310관은 철저히 학교 본부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지만, <중앙문화>와 <녹지>는 학생들의 시각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비판해왔다.

다시 한번 벽면을 바라봤다. 그곳엔 생략되고 삭제되고 조립된 것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나를 당당히 둘러싼 웅대한 공간은 그 모든 복잡다단한 흔적들을 매끈히 가려내고 있었다.

 

 

Notes:

  1. “박 전 총장, 상고심에서 징역 2년”, <중대신문> 2016.11.13.
  2. “아직도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 작년 중앙대 사태를 돌아보며”, <잠망경> 2016 새내기 특별호 참고.
  3. “우리는 왜 빨간벽돌에 남았나”, <중앙문화> 71호 참고.

1 Response

  1. 흠흠

    본분교 통합과 단일교지 승인에서 비리는 박용성과 박범훈이 저질렀다 쳐도 결국 이득은 학생들이 다 받지 않았나… 분교시절 안성으로 입학한 학생들에게는 관심없는 이야기겠지만 본분교 통합 이후 안성캠 입학한 학생들 입장에선 땡큐 아닌가? 그리고 두산 들어오고 나서 중앙대가 비약적으로 발전한건 명백한 사실이잖아. 잠망경은 자신들만의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기록하면서 마치 중립적인 대단한 기록인양 이러한 에세이 남기는건 “우리도 언론이다”라고 인정해달라는 “인정투쟁”하는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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