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전세와 곰팡이

집을 떠나 서울에 산다는 것, 대학에 다닌다는 것은 살 ‘공간’을 필요로 한다.

고구미2rgb ⓒ 한국경제매거진

| 고구미

 

“아, 이거 안 되겠는데요”
한 쪽 벽에 잔뜩 존재감을 뽐내고 있던 곰팡이 녀석들을 박멸하기 위해 부른 인테리어 사장님은 이건 어쩔 수 없겠다며,
곰팡이가 득실거리는 벽 위에 다시 벽지를 발라버렸다.

“곰팡이 또 피면 부르세요”
아, 또 이사를 해야 하나. 이번 집은 오래 살겠다고 다짐했는데, 또다시 이사할 집을 찾아야 할 듯하다.

 

서울살이 5년 차, 프로 자취생이 된 나는 거의 매년 이사를 했다.
비싼 집에서 좀 더 저렴한 집으로, 월세에서 전세로, 평지에서 언덕으로 옮겨갔다.

 

# 자취의 시작 : 보증금 2000 / 월 45

첫 번째 집은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훌륭했다. 중앙대 근처에서도 집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후문 인근이었다. 처음으로 딸을 외진 곳에 내놓는 엄마는 값이 비싸더라도 안전한 곳으로 신경 써서 구해주셨다. 하지만 그 집의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집 선택에 내 의견은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고, 방 크기는 화장실, 부엌을 다 합쳐도 원래 내 방보다 작았다. 어쨌든 그곳에서 내 첫 자취생활은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왁자지껄한 기숙사 생활을 했던지라 혼자 누운 밤은 공허했다. 쓸쓸함을 달래려 라디오를 자주 들었다. 그것도 지겨워지자 매일 밤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벌였다.

대학에 오니 생각보다 돈 들어갈 일이 많았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에 저렴한 집으로 옮기겠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집을 구하기 시작하면서 바로 후회가 들었다. 저렴한 곳을 알아보기 위해 상도에서 흑석으로 내려왔다. 월세로 다달이 돈을 버리느니 대출을 받더라도 전세가 좋겠다는 엄마의 말에 선택지가 더 좁아졌다. 썩 내키지 않았지만, 중문에 전셋집을 하나 찾아 계약했다. 방은 좁았고, 부엌은 없었다. 말하자면 부엌은 있지만, 화장실 안에 부엌이 있는 구조였다. 전세가 이곳 밖에 없으니 이런 불편쯤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볼 일’을 보던 곳에서 요리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필요한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 안전한 나만의 방 : 전세 5000

새로운 집에서도 많은 일이 있었다. 하루는 오후에 혼자 방 안에 누워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 문을 따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도둑이었다. 갑작스러운 누군가의 침입에 멍하니 그 사람을 쳐다봤다. 그도 방 안에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 못했던 것인지 멍하니 서서 나를 쳐다봤고, 이내 정신이 들었는지 달아났다. 나도 정신을 차리고 따라 나갔다. 이미 그는 시야에서 사라진 후였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니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온몸의 기운이 빠졌다. 서둘러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과 형사 여럿이 집으로 왔다. 형사들은 도둑이 들었다는 말에 놀라 쫓아온 애인을 밖으로 내보내곤 내게 물었다. “정말 방에서 아무 일이 없었나요?”, “솔직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처음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말뜻을 이해한 후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아, 내가 위험할 수 있었구나. 안도감을 느낄 찰나, 집에는 과학수사대가 와서 지문채취를 해갔다. 지문은 검출되지 않았고,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라 예상했던 건물 내 CCTV는 모형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주인집에선 어떤 보상도 해주지 않았고, 열쇠를 바꿔 달라고 요청했지만 1주일 후에야 교체해줬다. 도둑이 든 이후 하루 하루가 공포였다. 홀로 방에 누워있으면 누군가 들어올 것 같다는 막연한 공포와 내가 그 집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도둑이 또 다시 나를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한동안 혼자 집에서 생활하지 못하고 애인과 함께 있거나 친구 집에 머물렀다. 학기 중이었기에 집을 옮기지도 못하고 그곳에서 3개월 남짓을 더 보낸 후에야 집을 옮겼다. 1년 만에 집을 또 옮기다니. 다음엔 꼼꼼히 살펴서 더 안전하게 오래 살 수 있는 집을 찾아야겠다고 자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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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심, 필요 없습니다 : 전세 4500

이번 집은 중대 병원 쪽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친구들은 내게 ‘어째 점점 정문 쪽으로 밀려나니?’하고 말했다. 전세 매물이 없어 집을 구하는 데 품이 많이 들었지만, 500만 원이나 싼 곳을 구해 무척 뿌듯했다. CCTV도 잘 되어 있고, 주인아저씨도 같은 건물에 사시니 안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이사 온 그 날부터 주인아저씨의 간섭이 시작된 것이다.

주인아저씨는 계약서를 쓰며 친구들을 많이 데려오는 건 곤란하다고 했다. 친구를 한 달에 5번 이상 데려오면 공과금 2배를 내야 한다고 했다(나중에 확인하니 실제로 계약서에 이 조항이 명시되어 있었다). ‘그걸 어떻게 일일이 관리하겠어?’하는 마음에 대충 ‘네~’라고 했다. 내 예상과는 달리 주인아저씨는 정말 일일이 CCTV를 보며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고, 친구가 방문하는 횟수와 명수까지 체크했다. 쓰레기 버리는 날을 착각해서 다른 요일에 버리기라도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전화가 왔다. “학생? 내가 그 날은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아, 이 사람은 매일 CCTV 앞에서 사는 걸까?’ 싶을 정도로 일일이 통제당하는 기분이었다.

하루는 집에 누워있는데, 복도에서 큰 소리가 났다. 문에 가까이 가서 소리를 들었다. 주인아저씨와 옆집 사람이 다투는 소리였다. 당시 시간이 밤 12시 무렵이었다. 애인이 자주 집에 오는 게 화근인 듯 했다. 주인아저씨는 옆집 사람에게 윽박질렀고, 그 소리는 문틀을 넘어 내 방으로 꽂혔고, 내게 위협감으로 다가왔다. 몇 주 뒤, 주인아저씨는 “남자 끌어들이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쫓아냈다”며 내게 자랑했다. 당시 애인이 가끔 집에 놀러오던 나로선 경고의 메시지로 들렸다.

잠시 마트에 갈 때도,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도 옷차림에 신경 썼다. 문 밖을 나서면 주인아저씨가 쳐다보고 있는 듯한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애인이 오거나, 친구가 올 때도 눈치가 보였다. 집에서 다른 사람과 소소하게 시간을 보내던 즐거움도 사라졌다. 이 사람이 CCTV를 보며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나를 해체할지 두려웠다.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쳐도 괜히 죄인이 된 것 같아 위축됐다. 결국 그 집을 나오기로 결심했다. 내가 나오기 전, 이미 많은 이웃(여성)들이 간섭을 견디지 못하고 그 건물을 떠났다.

집을 나오던 날, 주인아저씨는 “너 때문에 옆집 애들이 보고 배워서 남자를 끌어들인다”며 나를 비난했다. 내가, 내 집에서, 내 애인과 시간을 보내겠다는 게 그렇게 큰 잘못이었던 걸까. 과연 내가 남성이어서 ‘여자를 끌여들였다’면 주인아저씨는 같은 말을 했을까. 방도 뺏겠다 한바탕 뒤집어엎고 싶었지만, 그 사람이 엄마의 번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발목을 잡았다.

 

# 곰팡이, 전쟁의 서막 : 전세 4500

험난한 길을 거쳐 지금 사는 집으로 왔다. 다행히 같은 가격의 집을 구했다. 상도역과 숭실대역 사이 그 너머 어딘가의 고도가 조금 높은 곳이었다. 집에 가기 위해선 험난한 언덕을 올라가야 했지만, 이걸 감수할 만큼 집은 깔끔했고, 동네 분위기는 한적하고 좋았다. 곰팡이라는 녀석이 등장하기 전까진….. 겨울이 되니 갑자기 곰팡이들이 꽃 피기 시작했고, 왕성한 번식활동을 벌였다. 아깽이(반려묘)는 왜 그렇게 곰팡이 쪽에 가서 몸을 비비는 건지, 커지는 곰팡이만큼이나 내 속상함도 커졌다. 락스, 베이킹파우더, 치약 등 곰팡이에 좋다는 것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봤지만, 난 결국 곰팡이에게 패하고 말았다. 전문가들도 이건 너무 심각해서 어쩔 수 없다며 손발을 들었다. 곰팡이와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선 집을 옮겨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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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이버 웹툰 <은주의 방>, 노란구미 5화 중

 

# 전세를 찾아서

이제 다시 전세를 찾아 긴 여정을 떠나야 한다. 한국, 특히 서울 땅에서 전세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그동안 전세를 구하기 위해선 부동산과 몇 차례 전화를 거치고, 학교 커뮤니티를 샅샅이 살피고, 정문 앞 게시판을 눈에 불을 켜고 파헤쳐야 했다. 부동산에서도 전세매물이 워낙 없으니 전세를 구한다고 하면 달가워하지 않았다. 왜 이렇게 전세를 찾는 게 어려운지 찾아보니 은행 금리는 오르지 않는데, 전세에 대한 수요는 높아지니 전세난이 지속되는 것이라 했다.

월세도 워낙 비싸 다달이 4-50만 원을 버리느니 은행 대출 이자를 갚는 것이 낫겠다는 엄마의 의견에 따라 그간 4년간 전세만을 찾아다녔다. 전세를 찾다 보니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LH 전세대출’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제도도 계속되는 전세난으로 매물 자체가 없는 데다, 정부에서 요구하는 기준이 까다로워 성사율이 10%미만이라고 한다. LH지원을 받고 있는 친구들은 집주인들이 LH를 해주는 조건으로 실제 전세가보다 1, 2천만 원을 높게 부른다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의아함을 표했지만, 친구들은 그렇게라도 집을 구할 수만 있다면 감지덕지라고 했다.

 

 

# 서울에 산다는 것

집을 떠나 서울에 산다는 것, 대학에 다닌다는 것은 살 ‘공간’을 필요로 한다. 나는 5년 간 자취를 통해 그 ‘공간’을 얻었고, 서울에 사는 많은 대학생은 자취, 하숙, 기숙사, 고시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저마다의 공간을 얻고 있다. 사는 장소도, 형태도, 가격도 다르지만 대부분의 대학생은 저마다의 사정을 갖고 살아간다.

서울에 올라와 혼자 자취를 하면서 여러 집을 거쳤고 많은 일을 겪었다. 때로는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냐며 상황을 탓하기도,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전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 해시태그 운동에서 볼 수 있었던 ‘혼자 사는 여성’들의 현실적인 공포를 보면서, 타지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생활하는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겪은 일들이 나만의 특수한 경험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내 상황에 맞는 집을 구하기 위해 각종 사이트를 밤낮으로 뒤적이고, 월세나 보증금을 벌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고,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갑자기 문을 따고 들어오진 않을까 걱정하며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지고, 한 번 더 문단속을 하는 삶. 그것이 현재 자취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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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과방에서 흑석동을 내려다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학교 앞에, 서울에 이렇게나 집이 많은데, 왜 내가 맘 편히 살 수 있는 집은 없을까. 부담가능하고, 깔끔하고, 교통이 편리한,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한 집을 구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일까.

 

이런 한탄을 하며 나는 오늘도 집으로 돌아간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나만을 위한 공간’은 이 곳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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