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로운 영화] 낯선 물체들

서사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영화 안에 들어있다. 장면에는 서사 말고 무엇이 들어있는 것일까. 혹은 어떤 운동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정오의낯선물체

| 이솔찬

영화를 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매번 생각한다. ‘그 즐거움은 어디서 나오는가.’ 사람마다 다 다른 기준이 있으며, 누구는 서사를, 누구는 배우를, 누구는 장르를 기대하며 영화와 마주할 것이다. 많은 영화보기의 방식이 있기에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일 또한 항상 즐겁다. 그리고 앞으로 글로써 독자들을 만나는 만큼 영화보기의 방식보다는, 필자가 선호하는 영화를 향한 글의 상태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해보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했다. 한 편의 영화를 경유하며 그 상태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자.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정오의 낯선 물체>는 어느 정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부분이 그러할까. 단적으론 영화의 서사가 그렇다. ‘태국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상인들을 인터뷰 하고, 영화는 인터뷰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구체가 등장해서 매번 다른 사람들로 바뀌어 나간다.’정도의 서사다. 서사를 글로 풀어내는 순간 매우 이상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흥미로운 건 영화는 매 장면이 활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서사의 이상함이 느껴지지 않는, 서사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영화 안에 들어있다. 장면에는 서사 말고 무엇이 들어있는 것일까. 혹은 어떤 운동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거리의 상인들에게 어떤 말이든 해달라고 한 뒤, 그 ‘어떤 말’의 해당되는 이야기를 영화는 찍기 시작한다. 짐작 건데, 웬만한 관객은 이 이상한 도입부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항을 격을 것이다. 다소 무겁게 시작하는 인터뷰는 다큐멘터리로 시작된 영화의 형식을 탈바꿈시켜준다. 그 변화가 이루어지는 순간 영화는 어떤 중도의 상태에 빠진다. 정확히 규정할 수 없는, 극영화도 다큐멘터리도 아닌 그 사이를 오가는 횡단의 움직임이 영화의 매 장면을 변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영화에서 어떤 구체가 등장하고, 그 낯선 물체는 장면마다 다른 인물로 변해간다. 정확히 말하면 변신한다. 어떤 아이가 되기도 하고, 주인공이 되기도 하며,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거의 매 쇼트마다 바뀌고, 영화는 매번 다르게 구성된다. 중요한건 그 물체로 인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운동이 있다. 인물에게 매번 다르게 형성되는 관객의 긴장감이 그것이다. 인물은 그저 서있는데, 다른 인물들과의 말로써 저 인물이 구체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리고 저 인물의 변화는 장면의 구성과 성질 자체를 달라지게 하는 구심점이 되며, 관객은 그 변화의 움직임을 지켜보게 된다. ‘낯선 물체’로 지칭된, 혹은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 어떤 한 인물을 해석하기란 불가능하다. 영화는 ‘낯선 물체’를 통해 어떤 유동적인 활성과 활극의 긴장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분석을 한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없다.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글의 도입부에서 이 영화의 서사조차도 글로 풀어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가 이 영화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나 정의를 했다고 한다면 그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거리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것보단 영화 안에서 일어나는 운동들, 혹은 변화들이 주는 감흥을 느끼는 것이 영화를 보다 흥미롭게 보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의 감상 방식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많다고 생각한다. 그건 이 영화가 그러한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 상태를 느낀 한 관객으로서 매번 변하는 어떤 생명체라고 말하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이런 명쾌하거나 명징하지 못할 수 있는 필자의 방향은 ‘매번 누군가로 바뀌는, 어떤 규정할 수 없는 물체 같은 활동과 활성을 지니도록’이라는 이 영화에 대한 매혹적인 표현 때문에 만들어졌다. 이제부터 쓰게 될 글에서 <정오의 낯선 물체>가 그러하듯 미지의 것들, 또 그것으로부터 느껴지는 매혹적인 순간들을 찾고자한다.

 

* 코너 소개

디지털 이미지 시대가 도래한 이후, 우리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영상의 물결 속에서 영화를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리 넓은 의미에서의 경험을 뜻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경험의 폭은 점점 더 좁아져 간다. 서사와 텍스트에 의존하는, 나아가 영화 바깥의 이야기들을 좇는 것이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 영화의 경험을 뜻하는 것일까. 한편으로 영화를 감각한다는 시청각적 경험 속에서 우리는 매번 모험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하나의 영화를 감각하면서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활력을 찾아내고 붙잡는 것이야말로 본질적 의미에서의 경험이며 영화적 모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경험 속에서 낯선 순간들이 찾아오기 마련인데, 이때 그것의 성질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돌이켜 보며 그 특유의 활기를 언어로 붙잡아보려 한다. 점점 더 번져나가는 경험의 빈곤과 반복되는 일상이 일으키는 감각의 마취 속에서 영화라는 활기를 체험하는 것에 주목하는 행위가 가져다줄 작은 변화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