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S] 어폴로지apology, 그리고 ‘우리’의 책임에 대하여

이 장면들은 교과서에 실린 사진 속의 ‘위안부’ 여성들의 삶이 ‘과거’에 박제된 기록이 아니라 현재에 계속되고 있는 삶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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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조윤

 

‘울 것 같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떠올렸던 감정이다.

1990년 11월,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신대대책협의회가 조직되었고, 91년 8월 14일, 피해자(고 김학순)가 최초로 ‘위안부’ 피해 경험에 대한 공식 증언을 하였다. 그리고 92년 1월 8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가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나의 삶과 일본군‘위안부’ 운동의 흐름 속에서 태어나고 떠나간 삶, 만남과 접촉, 연결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병렬적으로 흘러갔다. 나는 (아마도)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한 장의 사진과 몇 줄의 서술을 통해 처음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나 사이의 시간적 간격에서 느껴졌던 거리감,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마주하기 힘들 것 같다는 두려움, 이에 대한 죄책감 등 일련의 감정들은 이를 다른 이들의 몫 혹은 ‘나중의’ 문제로 미루게 만들었다. 그리고 기약 없는 ‘나중에’는 점점 이 문제에 무감하게 만들었고, 마치 이것을 겪지 않았던 것처럼 망각하게 했다.

이후 2017년 3월, 나는 영화 <어폴로지>(감독 티파니슝, 2017.3.16 개봉)를 통해 다시 일본군’위안부’ 여성들을 만나게 된다. 영화는 일본군에 의해 성노예로 강제 연행되었던 한국의 길원옥 할머니, 중국의 차오 할머니,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의 현재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영화는 길원옥 할머니의 노랫소리로 시작된다. 노래를 배경으로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는 차오 할머니, 아델라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의 모습이 비춰진다. 노랫가락은 곧 일본을 방문한 길원옥 할머니가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로 전환된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 카메라는 이 목소리를 짓밟기 위해 모인 극우단체의 모습을 담아낸다.

“돌아가! 추잡한 할망구들”, “한국의 매춘부들아, 꺼져라!”

‘매춘부’라는 명명에는 일본군‘위안부’ 여성에게 가해졌던 강제적 폭력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역사적 부정의를 왜곡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게다가 사람이 사람에게 욕설과 폭력을 행해도 된다는 화자의 인식에는 일본군‘위안부’ 여성들이 ‘인간’ 범주 바깥에 놓여 있다는 사고와 ‘인간’인 자신-‘비인간’ 여성이라는 위계적 관계가 깔려 있다.

당신은 스크린 너머로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폭력의 광경들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일본군‘위안부’ 여성들과 활동가들이 매순간, 온 몸으로 부딪혔을 폭력들을.

이 폭력의 장면들은 욕설과 고함으로, 마을을 떠도는 소문으로, 혹은 이들을 침묵하게 만드는 시선으로 구성된다. 이 장면들은 교과서에 실린 사진 속의 ‘위안부’ 여성들의 삶이 ‘과거’에 박제된 기록이 아니라 현재에 계속되고 있는 삶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만든다. 이는 일본군‘위안부’ 여성을 ‘과거’에 묶어둔 채, 이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나’라는 (내가 만들었던 부끄러운) 경계를 허물고, 삶과 삶이 얽히는 순간으로 연결된다.

필요할 때니까 부르겠지 싶어서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니까” 여전히 길원옥 할머니는 일본, 중국, 스위스 등의 강의실, 거리 위, 곳곳에서 정의로운 문제 해결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랜 시간 많은 장소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때까지 수 백 번, 혹은 수 천 번 되풀이 되었을 길원옥 할머니의 이야기는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나에게 ‘들리기’ 시작하였다.

많이 울었다. 경험하는 것, 인식하는 것, 이야기하는 것,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분투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왜 ‘이들만’의 몫이어야 했는지. 이 기나긴 분투 속에 나는 어디에 있었는지.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이 문제를 외면했던/외면해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부끄러운 내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비, 소녀, 그리고 당신.”

이 영화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 눈빛, 손짓, 필요와 소망을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당신의 무엇을 건드린다. 윤미향 대표(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지금까지 충분히 잘 하셨다”고 말하며, ‘우리’의 책임과 약속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이미 함께했지만 아직 구성원은 아닌 ‘우리’에 참여하자고 너(당신)를 초대한다(Derrida, 1997: 29; 영, 2013: 204).”

어폴로지, 특히 이것이 국제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에서 발생한 사건을 둘러싼 사과일 때, 여기에는 많은 행위자들이 개입된다. 사과를 해야 할/요구하는/받아야 할/받아들이는 사람·집단·국가. 사과에 얽힌 행위자들, 내용, 그리고 책임에 대한 논의는 결코 간단하지 않지만, 전시 하에 체계적인 성폭력을 저질렀던 일본 정부와 개인들, ‘위안부’ 피해자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묻지 않은 채 감히 일방적이고 졸속적인 ‘위안부’ 문제 합의를 진행한 한국 정부의 사과가 있어야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여기, “죄는 없지만 책임을 진 자들”(영, 2013: 155)이 있다. 어떠한 폭력에 대해 보이는 무관심, 무지, 외면하는 모습들은 폭력을 경험한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소멸시켜 버림으로써,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지원한다. 한국 사회에서 억압된 혹은 침묵된 시간으로 표현된 지난 50년, 아델라 할머니가 마주해야 했던 “당신만 당한 거 아니야. 이 마을 여성들 다 당했어”라는 냉대, 차오 할머니를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쉬쉬하면서도” 기어코 뱉어내는 소문들. 그 결과 이들의 가슴에 새겨진 ‘수치(shame)’의 감정과 침묵의 세월들. 욕설과 고함으로, 수근거림으로, 혹은 시선으로 구성된 폭력들, 그리고 이 폭력들을 지속되게 만드는 무관심. 일련의 상황과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한테 사과하려고 안 합니까. 우리 살아있을 때 해야지.”

<어폴로지>는 촬영 기간 동안 있었던 죽음들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와의 만남을 소망했던 아델라 할머니, 중국의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

현재 한국의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는 39명이다.

나비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참고

영, 아이리스 M.(2013),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 허라금·김양희·천수정(역), 서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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