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A, 남중생A, 그리고 ‘나’ A.

여중생A

| 이해경

중학생이 되었을 때였나. 남들보다 이르게 철들었다고 생각했던 나는 말도 곧 잘했고 눈치도 빨랐다. 동생은 나와는 참 달랐다. 그는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동생을 때리고, 또 때렸다. 게임을 많이 했다고, 자꾸 놀러 나간다고, 공부를 안 한다고, 묻는 말에 제대로 답을 못한다고. 그저 그런 이유들이 모두 폭력의 근거가 되었다. 나는 목격자였고, 방관자였고, 피해자였다. 때론 폭력을 피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동일시하던 공모자이기도 했다. 소년이었던 동생은 참 많이 아팠다. 그걸 지켜봤던 내겐 지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머리에도 마음에도 자꾸만 남아있다.

 

고등학교 3학년 겨울 어느 날. 아버지는 집을 나가겠다며 몇 백만 원을 달라고 했다. 집엔 당장 내 몫의 등록금도 없었다. 그는 그걸 나무라던 자신의 어머니를 때렸다. 할머니가 아버지의 주먹질에 얼굴을 맞던 그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는 소리를 지르고 욕을 했고, 폭발이라도 한 것처럼 주방에 있는 물건들을 전부 내던졌다. 이내 주방에 있던 칼을 집어 들고는 전부 죽이고 자기도 죽을 거라며 고함을 쳤다. 열아홉, 열일곱의 남자 아이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맨몸으로 그를 막아섰고 그는 집을 나갔다. 그가 그대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가족사진 안에서 그의 자리만 도려내면 남은 이들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며칠 후에 그는 제 발로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기 하루 전에는 내게 연락해 따로 만나자고 했다.(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경찰에 전화해달라고 당부하고 한 공원으로 나갔었던 기억) 제 손으로 집 안에 있는 온갖 것들(물건, 사람, 마음, 그 모든 것)을 부순 이는, 제 발로 나갔다가 자기 의지로 돌아왔다. 불과 일주일 전과 똑같은 공간에서 같이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일상’이 반복됐다. 그렇게 또 지겹게 ‘가족’이 되었다.

 

집을 나가는 것도, 들어오는 것도 오로지 가해자의 선택이었다. 집에 남은 이들은 그저 남아있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집이 여기에 있는데 도망을 간다면 어디로? 도망을 간다 해도 어떻게 사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집안에 있는 뾰족한 것들을 모두 모아 방 한구석에 숨겨두는 것이었다. ‘자는 동안 찔릴 수 있다’는 생각에 며칠간 잠을 못 잤고, 가해가 ‘우발적’이었던 것이길, 이번 한 번에 그치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매일 그가 죽길 기도했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어리석어 보일까. 그런데 그 시간, 그 공간에서 우리가 무얼 할 수 있었을까. 그가 그토록 강조하던 ‘가족’에게서 내가 받은 ‘선물’은 그런 기억들뿐이었다. 그리고 집에서 혼자 도망쳐 나오는 데까지도 2년이 더 걸렸다. 그 폐허에 다른 이들을 남겨 두고 나 혼자.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며 그것들을 복기해 적어낼 정도로 조금씩 무뎌졌다. 하지만 피해자였던 나보다도 그의 시간이 더 빨랐던 것 같다. 결국은 가족밖에 없다며, 가족끼리 의지해야 한다며, 그는 ‘가족’을 말하며 모호한 사과를 했고 거기엔 항상 변명이 따라붙었다. ‘나도 힘들었다고’. 어린 우리를 태우고 가드레일 밖으로 떨어지려는 충동을 겨우 참았던 적이 있었다는 고백도. 그리곤 몇 번, 동생이 자신과 잘 대화하지 않으려 한다고 하소연했다. 지금도 우리는 ‘가족’이고 나는 어쩌다 한 번 마주치는 얼굴과 건너의 목소리에 웃음을 담으려 노력한다.

 

그가 악마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구조와 개인이 얽힌 복잡한 문제들이 무기력을 강요했고 한 사람이 오랜 물리적, 정신적 고통 속에서 ‘괴물’이 되었다. 늪에 빠진 개인을 가족이라는 사적 안전망(빈곤층 가족은 안전망이라는 그물의 손잡이조차도 만져볼 수 없다)으로는 도저히 구해낼 수 없었고, 사회가 무엇도 해주지 않았을 때 한 가족 내에서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를. 그리고 폭력의 장면과 서사들. 무력한 사회 시스템과 ‘가족’이라는 파편들. 아마 이게 나, 그리고 나의 ‘가족’만의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기사화된 사건들 아래에 가해자의 삶에 주석을 달던 수많은 입들이 정작 피해자를 위해서는 꾹 다물어져있던 일들을 보았다. (촉망받는, 안타까운, 꿈이 있는 따위의) 가해자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피해자는 지워진 기묘한 세상. 나는 아버지의 삶을 조금은 연민하지만, 그 날의 시간을 이해하지도 더욱이 용서하지도 않는다. 한 번 그어진 상처는 결코 그 전처럼 없던 것이 되지 않는다. 고통은 고통이고, 가해는 가해다.

 

가정폭력, 데이트폭력이 이슈가 되었을 때 ‘왜 도망가지 않았어?’, ‘왜 헤어지지 않았어?’라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는 이들 또한 보았다. 그 시공간에 한 번도 위치한 적 없던 입으로,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듯, 피해자의 선택지를 쉽게 판단하던 이들. ‘친밀한’ 관계에 놓인 이에게서 폭력을 당했을 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짜인 거미줄을 단칼에 찢어내고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고작 방구석에 칼들을 밀어 놓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저주와 기도로 떨던 그 밤들은 ‘아니’라고 말했다.

 

피해자도 잘못이 있다는 말들. 그 날 내가 조금 더 공손하게 말했다면, 혹은 그 돈을 주겠다고 말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동생이 조금 더 눈치가 빠르고 말을 잘했더라면 맞을 일 따위는 없었던 걸까. 그 겨울 밤. 한평생 견디는 삶을 살았을 할머니는 그에겐 우리밖에 없으니, 우리가 의지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고민하는 것도 걱정하는 것도 보듬는 것도 언제나 피해자들의 몫이었다.

 

결코 어떤 잘못도 피해자가 피해당해 마땅하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피해자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책임도 없다. 그 모든 것은 오로지 가해자에게 있다. ‘고장 난 남자를 고치는 건 당신(피해자)이 아니라 이 사회가 해야 하는 일이다’(다큐멘터리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우리는 아버지를 ‘고칠’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 몇 년간 ‘이런 일로 나를 가정폭력의 피해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폭력의 세기와 빈도를 추로 삼아 무게를 재고 ‘그렇게 말할 수 없다’고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어느 날 우연히 찾아본 만화(“여중생A”)의 인물에게서 자꾸만 내 모습이 겹쳐보였다. 나는 남중생A 그리고 남고생A였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남중생A 또는 남고생A가 ‘미래’의 아버지가 되어버릴 수 있는 세계에서, 고작 더러운 피를 변명하지 않으려고 페미니즘을 공부하게 된 것은 아닐까. 당신의 피에 섞인 폭력의 글자들을 털어내고 또 지워내려고.

 

이 글 안에는 3년의 언어들이 뒤섞여 있다. 이 주제에 관해 처음 썼던 건 2015년의 언제였고, 부끄러움에 묻어두었다. 2016년 언젠가 다시 한 번 꺼내보았던 글을, 또 다시 묻었다. 어쩌다가 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언어들이 방문 밖을 나선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아니, 이제야 그 말들이 비로소 밖으로 나갈 준비를 마쳤는지도 모르겠다.
감히 흉터를 안고 사는 모든 ‘나’ A들에게 무한한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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