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오늘 아침은 ‘사건’이 되지 못했다

 

 총학생회가 대응한다. 전학대회 하루 뒤인 7일 오후, ‘중앙대학교 전체학생대표자’ 명의의 전공개방제도에 대한 규탄성명이 발표됐다. 그리고 주말이 지나 오늘 화요일 오전 8시 30분 즈음, 총학생회와 중앙운영위원들은 본관에 등장했다. 오전 9시 본관 3층 교무위원회의실에서 교무위원회가 열렸고, 본 회의에서는 18년도 전공개방모집제도에 대한 의결이 예정되어 있었다. 총학생회를 위시한 중앙운영위원회는 전공개방제도에 대한 학생들의 반대 이유 및 요구사항 5가지가 담긴 항명서를 전달했다. 이른 아침, 본관에 나온 이들은 “학생들과 소통해주십시오”라고 외쳤다. 이들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기란 어렵다. 4월 4일 전공개방제도의 설명회도, 7일에 있었던 중앙운영위원회, 총장단, 실무처장단 긴급 면담도 하루 뒤면 내용보고나 속기록이 올라온다. 대의 민주주의 하에서 총학은 대표자에게 요구되는 소통, 보고와 전달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기에 오늘의 항명서 전달은 아쉬움을 동반한다. 그들은 항명서를 전달했다. 그 종이에는 반대이유와 요구사항이 담겼다. 그러니 ‘반대이유와 요구사항이 담긴 항명서’라고 말할 수 있다. 허나, 전달된 것은 종이 뿐이었다. 오늘 오전 총학생회장-부회장과 중앙운영위원 열 명만이 그곳에 자리했다. ‘항명서 전달식’이 있다는 사실을 학우들은 몰랐다. 전학대회에서 우리가 합의한 ‘규탄’은 오늘 오전 열명의 대표자가 외쳤던 구호 “학생들과 소통해주십시오”, 그 이상이었다. 학내 언론에 취재를 요청하지 않았는지, 우리의 목소리가 전달되는 현장에 UBS와 중대신문은 없었다. 대의민주주의이기에 언제고 던질 수 있는 비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오늘 오전의 일은 ‘사건’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는 안될 일이었다. 종이가 아닌 항명서가 만들어지던 날, 전체학생대표자회의를 휘감던 흥분을 기억한다. 우리가 여기 모였고, ‘이제 바꿔낼 수 있다’는 열기가 가득했던 그날.  변화를 향한 기대가 강당에 모인 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와 합쳐져 102관 3층 대강당을 감쌌다. 대학본부의 탑다운식 의사구조, 전공개방제도의 성격, 그리고 학과 서열화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에 단과대를 막론하고 중앙대 학우의 대표자 200여명은 연거푸 큰 박수로 응답했다. 변화의 의지, 흥분된 목소리,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기대. 오늘 오전 9시 본관에서 진행된 간소한 ‘종이 전달식’에 채 담기지 못한 것들이다.

 아쉬움은 지난 4일 설명회에서 본부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비민주적” 절차를 “충분히 민주적”이지 못했다는 긍정적 어구로 치환하는 본부의 시도. 이 우스운 말장난은 그들이 언제고 쳐놓은 ‘소통을 하긴 했는데’란 방패였다. 여전히 대표자들의 진정성을 믿기에, 이른 아침 학교 본관에 나온 총학생회와 중운위 대표자들의 노력이 ‘전달을 하긴 했는데’로 수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 오전은 어땠어야 했는가. 부정의한 대통령을 끌어내린 것은 단 한 주의 촛불이나, 어느 토요일 하루의 집단적 움직임이 아니다.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나온 변화를 말하는 발언과 이에 응답하는 박수소리는 지난 겨울 우리가 지녀온 대한민국의 진보를 향한 기대에 모자라지 않았다. 그 흥분된 목소리와 바꿔낼 수 있다는 의지가 한장의 종이로 수렴되거나, 조용한 전달식으로 끝나서는 안됐다.

 총학생회의 소통을 향한 진정성을 의심치 않는다. 아니, 총학을 응원한다. ‘서로 막힘없이 통하는 일’이라는 소통의 사전적 정의는 끊임없이 소통을 말하는 일이 아니라, 학우들이 함께 자리한 공간에서 끌어낸 변혁적 분위기를 축소하고 왜곡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대표기구가 전달해야할 ‘학우들의 에너지’가 축소 혹은 왜곡되는 순간 학생사회의 ‘소통’은 행위일 뿐 지향이 아니다. 여전히 총학이 믿는 소통이 후자일 것이라고 믿는다. 전공개방제도와 공간을 배정받지 못한 교지, 이들에 대한 학우들의 염원을 총학생회는 ‘사건’으로 만들지 못했다. 허나, ‘사태’ 역시 끝나지 않았다. 오늘 아침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이제 사건을 시작할 시간이다. 학우들의 목소리와 열기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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