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S] 페미니즘 ‘졸업’ : 유동하는 페미니스트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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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자가 학부에 처음 입학했을 때는 페미니즘이 지금과 같은 ‘리부트’ 현상이라고까지 불리기엔 민망한, 그런 상황이었다. 물론 학내에 여성주의 동아리라던가, 성 소수자 인권 동아리가 있긴 했지만 규모가 지금의 반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교양 강좌, 사회과학 내 전공 중에서 페미니즘 강좌, 강사 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지금만큼의 수요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기도 했거니와 수요가 있다고 해도 굳이 학교 측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민망한’ 그런 시기였다. 그렇기에 나를 비롯한 몇 명의 친구들은 막연하게나마 양적으로 조금 더 많은 학회, 강의, 동아리를 바라곤 했다.

그런 와중에도 누군가는 끊임없이 나를 둘러싼 현실과 나 자신의 존재를 설명할 언어를 갈구했고, 그 결과 나는 ‘페미니즘’을 만났다. 처음에는 선후배, 동기 포함 10명 안팎의 사람들이 모여서 시작한 흔한 독서토론 소모임이었는데, 한두번 페미니즘 서적을 읽었고 그 다음 학기 부터는 자연스레 ‘페미니즘 동아리’가 되었다. 그때 우리는 분명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이유로 인해 마주한 페미니즘에 경도되었었다. 교실 안팎에서 우리는 ‘페미니스트’로서 싸웠다. “모든 투쟁은 분노만큼의 동지애가 필요하다”고 하던가. 돌이켜보면 참 다행인 것이 바로 ‘우리’라는 조직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적어도 ‘말이 통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위로가 되던, 그런 나날이었다.

그리고 난 군 휴학을 했고 다른 친구들도 각자의 일, 취업 준비로 인해 동아리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수많은 학내 동아리들이 그러하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러나 휴가 도중, 복학 후 만난 친구들에게 사라진 것은 ‘동아리’라는 조직이지 ‘페미니즘’은 아니었다. 친구들은 여전히 치열하게 교실에서 혹은 거리에서 울고, 싸우고, 환호했다. 그러면서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고 나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모두 졸업생이 되었다. 나는 나 나름대로의 고심 끝에 대학원에 입학하여 공부를 이어나갔고 다른 친구들도 그토록 바라던 취업에 하나 둘씩 성공했다. 그리고 바야흐로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지금의 사회를 우린 함께, 그러나 각자의 위치에서 마주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시점으로부터 약 2주 전 몇 번의 약속 시간 조절 끝에 우리는 다시 모였다. 친구들은 대부분 어엿한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졸업한 뒤로는 1달에 한 번도 보지 못하는 상황이 당연하고, 또 그래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이번 만남은 유난히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다들 과감하게 야근을 빼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뻔하지만 가장 가까운 주제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진상 고객 상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회사 과장 아들 돌 잔치까지 가야하냐는 푸념부터 정년에 가까운 부장이 곧 은퇴하면 벌어질 일을 다 같이 상상하기도 했다. 아직 취업을 준비 중인 친구는 노트북을 꺼내서 이번에 지원한 대기업 입사 원서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사회 선배’들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이들과 함께 있으니 고작 1시간 전 대학원 동료와 ‘프랑스 공화주의 역사가 사회과학 인식론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 나눈 것이 떠오르면서 웃음이 나왔다. 세상이 달라 진건지, 내가 달라 진건지, 친구들이 달라 진건지, 애초에 같았던 적이 없었던 건지 헷갈리던 와중 한 친구가 회사 내 성희롱 문제를 어렵게 꺼냈다. 평상시 친구들이 겪었던 젠더 차별적 발언부터 술자리 성희롱 문제, 옆 부서의 누구는 회사 내 센터에 신고를 했는데 ‘좌천’당했다는 이야기 등. ‘놀라울 것도 없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놀랍게도 친구들이 다니는 모든 직장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에이 씨O. 난 그냥 취집할라고.” 갑자기 한 친구가 말했다. ‘술 많이 먹었네’하고 어색하게 웃는 와중에 그 친구가 말을 이어갔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해? 죽어라 2년간 취업준비해도 거지같은 회사는 월급도 쥐꼬리만하고, 난 여자라서 승진도 안시켜줘. 분위기도 겁나 가부장적이라 오래 못있겠어. 담배 끊는 것도 힘들어 죽겠고. 그렇다고 다른 ‘엄청 좋은’ 회사 또 준비해? 그짓거리를 또 하라고 나보고? 난 못해. 그럴 기운도 없다. 정말.” 친구의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다른 친구들도 놀란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현실이 전혀 놀라울 것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친구가 ‘취집’을 입에 담는 것이 놀라워야 하는가? 그렇다면 왜? 페미니스트의 행동과 사상에 유난히 ‘자격 심사’가 많이 따르는 이유는 그만큼 그것이 기성 사회로부터 견제 받는다는 것의 반증이기에, 그 친구에게 “모름지기 페미니스트라면…”을 들먹이며 페미니스트 자격 심사를 할 권한은 나에게도, 누구에게도 없었다. 또한 그 ‘취집’이 “할거야!”하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말한 친구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다.

“에라이. 페미니즘 졸업해야지!” 또 다른 친구의 말 때문에 무거웠던 분위기는 이내 웃음바다로 바뀌었다. 그 웃음은 그 상황에서 너무나 필요한 웃음이라는 것을 우린 알았기 때문에 몇 분이나 끊이질 않았다. <페미니즘 졸업>, 이 얼마나 적절한 명명인가. 이제 그들에게 페미니즘이 주었던 언어는 오히려 ‘알고도 당하는’ 고통을 선사하기라도 하는걸까. 한때 자신을 살게 했던 그것이 이젠 전혀 다른 방식으로 목을 조인다. 학교에서 직장으로, 학생에서 회사원으로의 시공간, 지위의 위치이동은 왜 페미니즘 ‘졸업’이라는 발화를 가능하게 하는가? 고민하던 찰나에 다른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넌 그러니깐 공부 열심히 해라!” 짤막한 응원 뒤 대화 주제는 금세 직장 얘기, 취업 얘기로 되돌아갔다. 머릿속엔 고민이 떠나지 않았다. 당장 상황을 보아서는 페미니스트 정체성은 이익과 손실을 담보하는 듯 보였다. 내 친구들은 돈을 위해 그것을 포기하고 나는 돈을 포기한 대신 그것을 여전히 담지한 아주 이상한 모양새. 그 상황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지만 웃음으로 논리적 간극을 덮어버리는 아주 슬프고 이상한 모양새였다.

2.

집에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서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몇 가지 생각과 자기비판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 지면을 빌려 그것을 간단하게나마 적어본다.

첫 번째, 유동하는 페미니스트 정체성이다. 페미니즘은 다양한 상황과 위치에 놓인 개인의 경험에서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각 상황과 위치에서 행해지는 페미니스트 실천들이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등 각 상황에서 페미니스트로서 행하는 실천의 성격은 다를 것이다. 때론 시위같이 적극적인 행위양식일수도 있고, 때론 특정 체제에서 기대되는 정체성과 다른 정체성으로 스스로 정체화를 수행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결코 간과하면 안되는 것이 ‘이 상황에서는 이 실천, 저 상황에서는 저 실천’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개개인에게 익숙한 상황, 장소와 그에 따른 실천이 존재하며 그 과정 속에서 변증하며 구성되는 페미니스트 정체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익숙한 상황, 장소는 변화하기도 한다. 아니, 아주 사소하게라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교실에서 사무실로, 동아리방에서 회의실로 내 친구들의 시공간이 변화하듯 말이다. 이 변화는 ‘익숙했던 실천’이 더 이상 불가능해짐을 인식 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그로 인한 당혹감을 느끼는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페미니즘 졸업”이라는 발화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의 그 실천과 함께 존재해온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하는 꽤나 뼈아픈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이 유동하는 실천과 페미니스트 정체성이 연결성보다는 단절이, 그리고 결국 “페미니즘 졸업”이 되는 것은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며 젠더 위계적 구조와 조직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론 대부분의 기업에서 생산된 이익이란 여성들의 경력단절, 사내 성희롱, 반강제되는 가사노동 등 다층적 젠더차별을 대가로 한, 혹은 그것에 기반하여 생산된 ‘가부장적 이익’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 여성 취업률 등 양적 지표로 대표되는 ‘여성 지위 상승’이라는 레토릭은 우리 사회에 경제적으로 ‘자립적인’ 여성을 요구한다. 결국 현 사회에서 대부분의 여성은 자립적이기 위해 가부장적 이익 구조 내부로 들어가야만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처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운명은 그녀가 페미니스트이건 아니건 예외없이 적용 된다. 즉 문제는 여성들의 이동이 진정한 의미의 주체적 이동이 될 수 없는 구조에 있다.

이처럼 젠더 차별적 구조는 이 장소, 저 장소에서 때론 은밀하게, 때론 당당하게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유동하는 과정 내에도 위치하고 있다. 또 한 각기 다른 상황과 위치에서 다양한 형태로 개인에게 부여되는 ‘페미니스트 자격시험’은 역설적으로 그 상황 내부에서 역시나 다양한 형태로 기능하는 위계적 구조를 폭로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유동하는 페미니스트 정체성이 고통스러울지언정 그것에 죄책감을 가진다거나 실패한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고 싶다. (내 친구들인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내가 기존에 해오던 실천이 지금 내 상황에서 가당치 않다거나, 혹은 ‘정말 지쳐서’ 잠시(어쩌면 앞으로도) 그것을 못한다고 해서 나의 페미니즘을 한때 가졌던 치기어린 비판의식 정도로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실천을 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매 순간의 전략화’다. 실천은 유동하는 위치성에 따라서 그 성격이 변화하기 때문에, 오히려 유동하는 개인은 다양한 시각과 경험, 전략들을 소유하고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존재다. 그 발화 가능성은 과거의 어떠한 상황 속 페미니스트로서 ‘나’와 이동 중인 ‘나’ 그리고 마침내 이동한 ‘나’가 폭로하며 그려낸 경험의 지형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또 다른 이들의 유동이 ‘나’의 무수하게 연속되는 그 지형과 마주할 때, 개인적 전략의 가능성은 집단적 연대의 가능성으로 변모한다. 유동 과정 속 개인의 읊조림은 집단의 구호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오히려 그들의 죄책감, 고민, 심지어 포기에 대한 경험 들이 ‘우리’의 연대를 더욱 강하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글 역시 그 일부가 되길 기대한다. 듣는 이가 있는 이상 더 읊조리길.

두 번째로 그 날의 짧은 대화를 통해 난 ‘나의 페미니즘’이 기대고 있는 안일한 진보의 이미지, 시간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혹 나는 배출된 페미니스트의 양적 수혈이 언젠간 반드시 가부장제라는 ‘악령’을 무찌를 것이라는 안이한 기대를 하고 있진 않았는가? 마치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가졌던 막연한 불만을 ‘페미니즘 유행’이 해결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처럼. 혹은 혁명을 “앞만 보고 줄기차게 달리는 세계사의 기관차”에 비유한 마르크스의 모습이 내게 있지 않았는가? 끝없이 유동하는 그들, 그 유동 과정 중에 그들이 겪는 괴로움과 죄책감의 기억을 뒤로한 채 페미니스트 정치학을 연대의 정치학이 아닌 단순한 힘겨루기의 정치학으로 상정하지는 않았는가? 치열한 ‘멈춤’이 필요했다. “혁명은 그 기관차에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잡아당기는 비상 브레이크”(벤야민, 2008; 356) 1라고 말한 벤야민적 사유말이다.

“페미니즘 졸업” 전 피억압자로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과거는 항시적 비상사태인 지금으로 끊임없이 호명되고 소환되어야 한다. 그들이 내뱉는 그 읊조림은 억압된 과거의 미완결성, 그리고 그것이 현재로 언제나 열려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것은 ‘나의 페미니즘’이라는 거 대한 진보적 프로젝트가 가지고 있던 균일하고 끝없이 뻗어나가는 시간성에 균열을 낸다. 그들 개개인이 억압된 구조 하에서 겪은 유동 경험, 그로인해 파편화된 페미니스트 정체성은 미래를 위해 연소해야할 연료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지금, 나의 고통을 함께 구성한다.

변화에 대한 믿음은 그 믿음의 주체에 대한 질문으로 매시간 향해야 할 것이다. 믿음의 주체가 미처 포섭하지 못한 혹은 의도적으로 포섭하지 않은 비동일자들에 대한 관심, 이것은 ‘졸업한 페미니스트들’의 염세주의가 다시 한 번 변화에 대한 희망의 연대로 변모하는 과정에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준다.

“페미니즘 졸업”을 말하기까지 그들이 겪었던 수많은 모순적 상황, 그 과거는 단순히 ‘힘내서 잊어버릴’ 기억들이 아니다. 그 과거는 지금의 내게,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스트 정치학에 적극적으로 호소하는 주체적 기억이 될 수 있다. 벤야민의 말처럼 진보는 때론 “우리가 숨 쉬었던 공기 속에 존재하고, 우리가 말을 걸 수 있었을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에게 예전 사람들을 맴돌던 바람 한 줄기가 스치고 있지 않은가?”(위 책; 331)

 

Notes:

  1. 벤야민, & 발터. (2008).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폭력비판을 위하여, 초현실주의 외. 최성만 옮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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