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S] 우리는 살아남아 다시 외친다.

 

ㅣ마리안

 

ⓒ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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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년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2016년 5월 17일 새벽. 한 20대 여성이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흉기에 찔려 살해당했다. 검거된 피의자는 범행 동기를 묻자 “여자들이 무시해서”라고 답했다. 강남역이라는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공간에서 한 여성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죽었다는 사실은 수많은 여성들의 몸에 체현되어 있던 감정들―공포와 분노, 두려움과 슬픔, 울분과 무력함―을 불러 일으켰다. 왜 ‘당신’은, 아니 ‘나’이자 ‘우리’는 죽었어야 했나.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는 수많은 포스트잇에 ‘언어들’이 새겨졌다. 수많은 ‘경험들’이 길거리에서 외쳤다.

“저였을 수 있었습니다. 여성으로서, 한국의 삶은 하루하루 ‘살아가는’이 아닌 ‘살아남는’이 맞는 표현이니까요. 죽인 남자를 탓하기 전에 죽은 여자를 탓하는 나라의 여자로서 더 이상의 비극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을 힘이 없다는 것이, 그저 분노할 뿐이라는 것이, 꿈을 잃은 당신에게 다시금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935번째 포스트잇)

“여기까지 찾아와서 ‘여성 혐오’가 아니라고 ‘여성 혐오’(라고)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은 시민발언대에서 벌벌 떨면서, 그리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증언’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들어주세요. 제발….” (234번째 포스트잇)

“당신은 나고, 여기 모여 있는 여성들입니다. 살아남은 것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세상을 바꾸도록 노력할게요.” (567번째 포스트잇)

“당신이 하늘로 가버린 그날부터 나도 같이 죽어버린 것 같습니다. 우리 다음 생에 다시 여자로 태어나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게 싸울게요.” (962번째 포스트잇) 1

저항의 글쓰기와 투쟁의 말하기는 이 사건을 사회가 추모하고 기억해야 할 모멘트로 각인시켰다. 사건 직후 트위터 계정과 페이스북 페이지가 만들어지며 추모운동이 시작되었고, 전국 곳곳에서 총 35,000장 이상의 포스트잇과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고백하는 자유발언대가 이어졌다. 포스트잇에 쓰인 애도와 분노는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라는 대표 문구가 나타내듯 여성혐오 사회에서 당신의 죽음은 곧 나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었으며, 이는 ‘죄책감과 자조’를 넘어 성차별적 구조의 변혁을 요구하는 ‘분노와 다짐’으로 이어졌다. 2

피해자가 ‘감히’ 개방된 공간에 자발적으로 나와 성폭력 사실을 말한다는 경험은 정치적이고 혁명적인 ‘증언’으로서의 ‘피해자의 말하기’를 재구성하는 동시에 공감과 지지로 맺어진 “여성연대(Sisterhood)” 3를 형성했다. 또한 중요하게, 명명의 경합 과정을 통해 이 사건을 결국 “묻지마 살인”, “(이른바)정신병자가 저지른 살인”이 아니라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즉 여성혐오에 기반한 ‘5·17 페미사이드(femicide)’로 기억해냈다. 1년간 지속된 싸움들은 살아남은, 그래서 ‘남겨진’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 사건을 주지시키며 하나의 ‘역사’로 만들어내었다.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은 그렇게 1주기를 맞게 된 것이다.

지난 주 수요일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의 1주기 추모집회가 열렸다. 추모시 낭독으로 시작된 집회는 사건이 일어났던 노래방 앞에서 묵념을 하고, 강남역 10번 출구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헌화를 하고, 강남대로를 함께 걷는 것으로 이어졌다. “우리의 두려움은 우리의 용기다!”, “우리의 말하기가 우리의 무기다!”, “우리의 연대가 우리의 힘이다!”. 왠지 모르게 생전 처음 갔던 퀴어 퍼레이드, 처음으로 무지개를 안고 밤의 신촌 대로를 뛰었던 그 순간과 겹쳐보였다. 똑같이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터질 것 같은 기분이어서 그랬을까. 우리가 여기 있다고. 살아남아 함께 모여 말하고 있다고. 길에서 쳐다보는 이들에게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사실 같은 날(5월 17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류(ICD)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날(1990년 5월 17일)을 기념하는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이었다. 상상하건대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여성과 성소수자로 가를 수 없는” 내 한 몸이 신논현역과 세종문화회관 중 어디에 있어야할지. 바로 그 전날이었던 5월 16일, 육군본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육군 성소수자 색출사건으로 구속된) A대위에 대한 재판에서 징역 2년이 구형되었다. 그리고 이 글의 최종본을 잠망경에 송고한 5월 24일에는 A대위에게 유죄(징역 6월과 집행유예 1년의 형량)가 선고됐다. 사적 공간에서 업무상 관련 없는 합의된 상대와 성관계를 가졌던 A대위에게 적용된 죄목은 군형법 92조 6 추행죄 위반. 내가 어느 곳에 있었던, “새로운 시대”는 아직 ‘우리들’에게는 오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1주기가 되었는데 여전히 나는 추모 발언들을 듣다가 치마가 들려 속옷을 뻔히 보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곤 혹시나 사진이 찍혔을지, 인터넷 어디에 올라올지, 댓글로 무슨 욕을 들을지, 끝나지 않는 상상에 공포를 느꼈다. 돌아가는 길에도 지하철에서 누군가 내가 들고 있는 플랜카드를 보고 해코지를 할까 두려웠다. 처음으로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지 거의 5년이 되었는데 나는 점점 더 심해지는 성소수자 혐오발언들을 듣는다. 사랑과 섹스를 색출하고 처벌하는 군대와 ‘존재’에 반대하는 대선후보들을 목격한다. 이렇게 우리는 다시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살아남은 우리는 ‘감히’ 말함으로써 또 다른 역사를 만든다.

그렇게 다시 1년이 시작되었다.

Notes:

  1.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2016.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 – 어떤 애도와 싸움의 기록』. 나무연필.

  2.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2016.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 – 어떤 애도와 싸움의 기록』. 나무연필.
  3. 이지원. 2017. “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1주기 집담회 <강남역 이후, 다시 만난 세계> 발제문. 2017년 5월 13일. 서울여성플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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