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S] 5월 24일이 뜻깊은 날로 남기를 바랐다

ㅣ이해경

5월 24일이 뜻깊은 날로 남기를 바랐다. 한국에서는 A대위의 무죄가, 대만에서는 아시아 최초의 동성혼 법제화가 선고되는 날이기를. 비록 한국은 고작 몇 년 전 계간(鷄姦)이 항문성교로 바뀌었을 뿐,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것을 행위한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을 가진 나라지만, 그것이 ‘진보’하는 시대에 밀려 무너져 내리는 그 시작을 맞이하고 싶었다. 멀지 않은 나라 대만에서, 동성애자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법적 결합을 맺거나 혹은 거부할 자유를 쟁취하고, 그 누구도 자신의 성적 정체성·성적 지향·젠더 표현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함을 다시 한번 알리는 그 순간을 함께 마주하고 싶었다. 긴 시간이 흘러 돌아봤을 때 5월 24일이 역사에 남는 한 발자국의 전진으로 기억되길 바랐다.

 

피우진 중령(현 보훈처장)은 ‘군대는 남녀차별 없이 계급 아래에 평등할 것’이란 생각에 교사 일을 그만두고 군인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하지만 군대는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바지를 걷어 ‘각선미’를 확인했고 화장을 요구했으며 부사관들을 접대에 동원하라고 명령했다. 항명을 이유로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이미 한계는 정해져 있었겠지만) 보직 해임을 당했고 중령에서 더 진급하지 못했다. 2002년 유방암 판정을 받아 유방 절제 수술을 받았고(업무에 방해될까봐 암에 걸리지 않은 나머지 한쪽도 절개했다) 3년 후인 2005년 병력을 이유로 전역을 강제당했다. 군내 성폭력 문제, 여군 권리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피우진 중령은 그들에게 눈엣가시였을 테다. 2년여 간의 소송 끝에 복직했지만, 1년 만에 만기 전역(중령 연령정년)해야 했다.

 

2017년 5월 24일. 한국은 ‘군대’라는 조직의 특수성을 이용하여 성적 지향 및 정체성을 근거로 개인을 처벌한 인권 탄압국이 되었다. A대위는 “타 부대 소속군인”과 “개인적인 공간”에서 “합의 하에” 사랑을 나누었다는, 그런데 그가 ‘게이’였다는 이유만으로 전역을 1주일 앞두고 구속되었다. 군과 국가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이 아웃팅 되었고 어머니는 아들의 구속 소식을 통해서 아들의 정체성을 알게 되었으며 제대 후 예정되었던 일자리마저 사라져버렸다. 군 조직은 한 개인의 삶과 존엄을 철저히 파괴했다.

 

A대위가 어떤 마음으로 군인이 되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속한 조직에 해를 끼치기 위해 군인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피우진 중령은 ‘계급 아래 평등한’ 군대에서 국가에 헌신하기 위해 군인이 되었다.하지만 피 중령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쏟아지는 차별과 배제에 맞서 싸워야 했다. A대위는 ‘게이’라는 사실만으로 강제 연행되어 실형을 구형받은 범죄자가 되었다. 누구의 잘못인가? ‘여성’이며 ‘게이’인 군인 개인의 잘못인가, 아니면 남성 중심적이고 성폭력적이며 동성애 혐오적인 군대 조직과 제도의 문제인가.

 

지금껏 단 한 번도 ‘여성’과 ‘게이’가 국회의 과반을 차지했던 적이 없다. 단 한 명의 ‘여성’이나 (오픈리) ‘게이’도 군의 수뇌부 직책에 도달한 적이 없다. 현재 군대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남성’들에 의한 ‘남성’ 조직화의 결과다. 장병에 대한 반인권적 처우(낮은 임금, 열악한 환경 등), 각종 비리, 군내 성폭력 모두 ‘남성’들이 만들고 수행하며 유지한 체계다. 그 체계 안에서 성폭력과 차별, 배제의 위협과 끊임없이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은 ‘여성’이며,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법 앞에서 자신을 숨겨야만 하는 것은 ‘게이’이다. 장병 처우 문제가 논란이 될 때 비난받는 대상은 ‘여성’과 ‘꼴페미’고, 군 기강과 군사력을 저해하는 존재는 ‘게이’이다.

 

‘촛불 혁명’이라고 부르던 이들이 있었다. 포스트-촛불 시대에 우리는 ‘정권 교체’를 이루었고 ‘진보가 승리’했다고 선언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들이 ‘진보’와 ‘정권 교체’라는 희망 속에서 미래를 말하던 이 시대가, 한 사람이 ‘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의 인격을 파괴당한 그 야만의 시대와 같았다. 수많은 성소수자 단체와 개인들이 함께 촛불을 들었는데, 왜 그 촛불의 빛은 A대위가 갇혀있던 공간으로는 스며들지 않았는가. 당신들이 말한 ‘진보’는 대체 무엇이며, 당신들이 말한 ‘승리’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묻고만 싶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쳤던 정부는 ‘비정상의 일상화’를 남겨두고 무너져 내렸고 그 자리를 채운 새 정부는 ‘비정상’의 자리를 ‘정상’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일상이 된 ‘비정상’ 탓에 ‘정상’이랄 것이 ‘비일상’적으로 느껴져 마치 하루마다 무언가 바뀌어나가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군형법 제92조 6항과 A대위의 구속이라는, 이 야만스러운 ‘비정상’을 마주할 때면 세상은 너무나도 그대로임을 깨닫는다. “인권” 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당선된 지 2주가 흘렀는데 군 조직은 아랑곳하지 않고 혐오와 폭력을 밀고 나간다. 누구도 이들을 멈춰 세우지 않는다. ‘촛불’과 ‘진보’와 ‘승리’의 시대에 한 사람의 존엄과 삶의 파괴가 있었다.

 

2017년 5월 24일. A대위가 유죄 선고를 받은 이 날, 대만에서 동성혼 법제화 소식이 들려오길 바란다. 한국의 인권 탄압이 국제사회에 더 크게 알려지길 원한다. A대위에게는 사랑한 것 외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 성적 지향 및 정체성을 근거로 ‘게이 색출 및 처벌’ 작전을 벌인 장준규 육군참모총장 이하 군 조직을 규탄한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언제고 당신들은 오늘의 역사 앞에 고개 숙여야 할 것이다. 군형법 제92조 6항의 폐지, 군사법원 폐지를 바란다. 군대는 사회에서 격리된 외딴 섬이 아니라, 사회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장소이다. 사회가 성평등, 반성폭력, 인권을 향해 내딛는 걸음만큼, 군대도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끌고라도 나아가야만 한다. 다시는 누구도 자신의 존재만으로 처벌받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진보’이며 ‘승리’이다. 그것이 내가, ‘우리’가 바라는 ‘미래’와 ‘시대’다.

 

P.S.

“2017년 5월 24일 현지 시간 4시 대만 사법원은 민법 동성혼 금지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사법원은 “민법 제972조 현행 규정이 이성만이 법률상 혼인관계를 할 수 있고 동성 간의 결혼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헌법 제22조 혼인자유규정, 헌법 제7조 평등원칙에 위반된다. 이러한 위헌 부분은 2년을 기한으로 개선해야 한다. 만일 2년 내 여전히 법률규정이 정비되지 않았다면 동성커플은 민법에 따라 호적사무소에서 결혼등기를 수리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네트워크 – 가구넷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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