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운동소모임 A선배에게

l 코노

 

선배는 그때를 기억하십니까. “요즘 애들은 학점챙기기 바쁘단 말이야.” 

이제 대학생 집단에는 어떤 공동체의 향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손에는 담배, 다른 손에는 운동화를 든 당신은 말했습니다. 운동 소모임 연습이 끝나고서 였습니다. “이렇게 모여서 운동이나 하는거지”하고 당신은 붙였습니다. 의아했답니다. 거기엔 공동체가 있었으니까. 운동소모임, 그것은 소위 ‘파편화’되었다는 대학에서 여전한 기세를 지녔으니까.

우리는 매주 만나서 운동했고, 돌아가는 길에 술을 마셨습니다. 모임에는 쉬지 않고 떠드는 카톡방이 있었고, 그 안에는 까마득한 선배들, 여서 일곱살 위의 선배가 서너명, 열살 차이나는 선배가 한둘 포함되었습니다. 매 해, 축구와 농구, 몇 학과의 야구소모임으로, 공 주위로 학우들은 헤쳐모였습니다. 나는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났습니다. 저는 잊고 있었답니다. 저와 함께 들어온 제 동기, 여학우 매니저는 어디갔을까.

우리 소모임에서 여성 구성원은 항상 고민거리였습니다. 이 여성 구성원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가까이에는 답인 듯 한 이미지가 있었답니다. ‘운동’+’여자’+’매니져’의 스테레오타입 삼위일체였죠. 그것은 <슬램덩크>의 소연이였고, <썬더 일레븐>의 나츠미였습니다. <마지막 승부>의 다슬이 혹은 심은하, 축구 예능 <슛돌이>의 이연두 였는지도 모릅니다.

여성 구성원 대부분이 기록지를 작성하거나, 소모임 운영에 관한 일을 맡았습니다. 그 운영에는 응원과 같은 것들도 포함되었죠.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선배들과 동기들은 고민했었어요. ‘운동을 가르치’는 일을 시도했었죠. 허나 이 ‘가르침’은 분명 ‘같이 운동하는 것’과 달랐습니다. 가르치는 선배와 배우는 후배 모두에게 즐겁지 않았는지, 이 방책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곧 여성구성원들이 떠났죠.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떠났던 이들을 향해 ‘여자들은 원래’라고 탓하던 것은 지금도 그대로인가요?

사실 우리 소모임은 이들이 왜 즐겁지 않은지 걱정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듬해면 다시 많은 여성구성원이 들어오게되니까. 그렇게 신입생 혹은 저학번 여성 구성원이 지속되고, 나이-학번에 비례해서 발언권이 생기는 사회와- 대학에서, 여성구성원의 말할 수 있는 힘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통제되니까. 그것은 우리 카톡방 속의 여성을 향한 혐오발언에 대한 브레이크가 되니까.

선배는 대학 사회내에서 선-후배간의 교류는 이제 불가하다고 말했지만, 그건 너스레였어요. 소모임에는 소위 고학번들이 많았죠. 공과 공 사이에 ‘형’과 ‘형님’의 심포니가 있었어요. 저 역시 목소리 하나가 되어 거들었습니다. 그 순간들이 오래도록 부끄러웠습니다. 형과 형님의 코트, 체육관 혹은 운동장. 이제 파편화되었다는 대학에서 여전한 공동체, 남성연대. 공 주위로 모인 우리는 ‘혐오’와 ‘형님 문화’의 추진력으로 강하게 회전했습니다. 중점으로의 원심력은 증가했고, 동시에 우리는 탈구된 이들에게 혐오를 던졌지요. 이제야 그것을 호모소셜로 이름 붙입니다.

운동 소모임을 나온지 벌써 이 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아르바이트하는 가게에 축구소모임 단체손님이 왔어요. 그 학우들은 학과 여학우들을 얼굴을 평가하고, ‘섹스’ ‘클럽’ ‘색기’와 같은 단어를 합창했습니다. 그 소모임 안에서 힘들어하며 버티는 학우들이 있겠죠. 이 조직이 바뀌길 기도하며 노력하는 친구들이 그 안에도 있겠죠.

선배를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그 단체 카톡방에 계시는지요. ‘그런 이야기’들이 만드는 공동체에 힘 쏟고 계시는지요. 선배, 그때 우리는 저렇지 않았겠죠. 우리는 달랐겠죠. 그렇다는 답이 어려워서 몇 일을 고민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정말 달랐나요. 여자매니저 제 동기는 왜 그곳을 나와야 했을까요.

편지를 보냅니다 선배. 공주위로 모인 우리들은 어떤 원을 그렸나요. 개인화, 파편화되었다는 대학사회에서 공 주위로 살아남았던, 우리의 그 공동체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요.

대표이미지 ⓒ 영화 <족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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