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기본소득, 다른 방식으로 보기

기본소득 하나로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일거에 해결될 것이라는 순전한 발상은 위험하다. 하지만 현재 기본소득은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의제이며, 그것을 열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모아 사회를 바꾸는 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기본소득 정책이 사회수당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것이 보편적 복지제도가 미발달한 한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마냥 기본소득을 ‘정치인들이 표 얻으려고 하는 짓’이라는 식으로 외면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기본소득 담론이 어떤 이들에 의해 어떤 식으로 다뤄지고 있는가이다. 

기본소득 사진_Source는 Wikidepia - Stefan Bohrer

| 영인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작년 성남시에서 청년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던 기본소득은 올해 몇몇 대선 주자들의 공약으로 가시화되었다. 기본소득을 어떻게 도입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선 주자들 간 의견 차이가 분분하나 불평등한 한국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인식은 대부분 공유하고 있다. 정치권뿐만 아니다. 학계 및 언론에서도 기본소득을 중요한 의제로 다루고 있다. 특히 <한겨레21>에서는 작년부터 스토리펀딩을 통해 기본소득 월 135만 원을 1명에게 6개월간 지급하는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하면서 지속적인 의제화를 이어나가고 있다. 기본적인 삶을 누리는 것조차 점점 어려워지면서 기본소득을 바라는 여론은 점점 확산되는 중이다.

그러나 이론으로서의 기본소득과 현실에서 나타나는 기본소득 정책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한국은 여타 선진국들에 비해 복지제도가 체계적으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본소득이 갖는 의미가 상대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 나타나는 모습을 간과한 채 이론 그 자체로서의 기본소득을 살펴보는 것은 반쪽짜리 논의가 되기 쉽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현실을 바꾸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살펴보기 위해 우선 기본소득이 무엇인지 개괄해본다.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의 정의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자산조사나 근로조건 부과 없이 모든 구성원들에게 개별적으로 국가가 지급하는 정기적인 현금성 소득을 의미한다.

기본소득은 1970년대 서구에서 완전고용과 경제성장에 기반을 둔 전후 복지국가 체제가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 기인한다. 당시 복지국가의 대안으로 등장한 ‘근로연계복지(workfare)’ 정책은 개인의 복지수급권을 노동과 연계시켰는데,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함께 진행되어 전반적인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반해 기본소득은 아무런 조건 없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소득을 보장할 것을 주장한다. 모든 시민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공유 자산에 대한 지분을 가지므로 공동체로부터 배당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핵심 이론가인 필립 판 파레이스에 따르면, 기본소득의 근본 취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만연해 있는 불평등을 해소하고 모든 이들에게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여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여기서 기본소득은 자유와 평등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는 기본소득이 본래 체제 변혁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함의한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1988년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를 결성하는 것에서 나아가 2004년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로 전환하였고, 지금까지 국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2009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만들어졌고 오늘날에도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학술적인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작년 성남시에서 기본소득을 기반으로 청년들에게 일정 금액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청년배당 정책을 시행하였고, 예산 사용을 놓고 지자체와 중앙정부 간 갈등이 벌어지면서 기본소득은 정치적인 쟁점이 되었다.

 

마냥 진보적이지만은 않은 기본소득

 

앞서 살펴본 것처럼, 기본소득은 자본주의 사회의 불공평을 개선하기 위한 분배제도다. 그러나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이들의 의견과 달리, 현실에서 기본소득은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첫째, 기본소득은 노동시장의 낮은 임금을 보완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자본의 이윤추구에 기여할 수 있다. 만약 노동자가 임금인상을 요구하지 않는 대신 기본소득을 받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중화된 노동시장은 고착화되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실현하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둘째, 기본소득은 복지국가의 복잡한 급여구조를 단순화하여 국가개입과 복지행정비용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2012년 일본 우파정치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은 총선공약으로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대신 복지에 사용되는 행정비용을 삭감하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개인별로 복지에 대한 수요가 다양하다는 점을 미뤄보았을 때 기본소득만으로 모든 사람들의 복지수요를 만족하게 할 수 없다. 만약 이러한 방식으로 기본소득이 시행된다면 국가는 개인마다 다양한 복지 수요를 충족하는 대신 공공복지를 최소화하여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작은 국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기본소득이 한국에서 갖는 의미 : 사회수당으로서의 기본소득?

 

담론은 누가 어떠한 위치에서 발화하는지에 따라 다른 효과를 지닌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기본소득 담론은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을 개선하려는 급진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보수 세력에 의해서 기존 체제를 공고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기본소득 자체로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없기에, 우리는 현실에서 이것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기본소득은 군소 진보 야당들에 의해 당론으로 채택되었다. 20대 총선에서 노동당은 만 18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월 30만 원을, 녹색당은 청년·장애인·농어민·노인에게 월 40만 원을 우선 지급할 것을 공약으로 주장하였다. 최근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원내정당들 또한 이를 정책적인 의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의당은 작년 9월 아동·청년·노인을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 도입을 제안하였고, 심상정 대선후보는 이를 대선 공약으로 주장하였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올해 초 김부겸 의원 대표로 청년 중 비정규직 취업자와 실업자를 대상으로 월 20만 원을 지급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성남시에서 청년배당 정책을 폈던 이재명 성남시장은 올해 대선 공약으로 특정 연령대 및 농어민과 장애인에게 각각 연 10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기본소득의 특징은 ‘무조건성’에 있으나, 정치권에서 제시되는 기본소득 정책은 특정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지급되는 사회수당의 성격이 강하다. 사회수당은 기여 및 자산조사와 관계없이 일정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에게 일정 기간 정기적으로 현금급여를 지급하는 사회보장제도다. 예로 노령수당, 아동수당, 가족수당 등이 있으며, 한국에서는 월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그러나 기초연금은 소득 하위 70% 대상에게만 지급되며, 국민연금 가입 기간 등에 따라 수급액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수당 제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국에서 복지제도는 1997년 외환위기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뒤늦게 확대되었다. 복지제도가 발전함과 동시에 급속한 신자유주의화가 이뤄져 삶의 불평등이 확산되었지만, 한국은 복지국가의 전통이 짧아 변화하는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또한 한국의 저부담·저복지 구조는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지 못할뿐더러, 공공부조제도가 자산조사를 강화하면서 국가가 보호해야 할 빈곤층마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2014년 기준 10.4%로, OECD 평균(21.6%)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미뤄봤을 때 한국의 복지제도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편적 복지체제로 이끄는 동력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기본소득은 전통적인 사회보장제도의 패러다임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구분되지만, 복지가 미발달한 한국의 맥락에 서 사회수당이라는 보편적 복지제도로 도입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는 작년 성남시에서 실시했던 청년배당 정책에서 어느 정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청년배당, 기본소득의 경험

 

성남시 청년배당은 2016년 1월부터 시행된 정책으로, 성남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살 청년에게 연 100만 원을 지역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의 형태로 지급하는 제도다. 기본소득이 현실에서 실현되었을 때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부분적 기본소득 제도로 맨 처음 도입되었다는 것은 많은 함의를 지닌다.

그간 청년정책은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치중하느라 청년빈곤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오늘날 청년은 높은 주거비 부담과 학자금 대출 상환 압력, 취약한 복지제도 등 여러 문제에 직면하고 있지만, 국가는 청년들에게 취업을 종용함으로써 삶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치환한다. 정부는 매년 약 15조 원의 예산을 일자리 창출 사업에, 약 5조 원의 예산을 청년 일자리 정책에 지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청년 정책은 단기적인 성과 중심의 일자리 사업에 많은 비중이 투자된다. 수조 원의 비용을 들였지만 정작 많은 수의 청년들은 정책을 인지하거나 체감하지 못한다.

이에 비해 청년에게 소득을 보장하는 정책은 노동시장과 사회보장 제도 모두로부터 배제된 청년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할뿐더러, 청년정책의 패러다임을 ‘투자’에서 ‘보장’으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청년에게 매달 얼마간의 기본소득이 제공된다면 비록 그들의 문제가 한순간에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어느 정도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청년배당은 한국 복지제도에 포괄되지 않은 사회수당 제도가 확대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기본소득을 위해서는 우선 재원을 확보하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국민 모두에게 1인당 월 30만 원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연 180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한 해 정부예산이 400조 원이라는 점을 미뤄보면 바로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실시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것보다 복지가 필요한 인구집단을 포괄하는 소득보장제도로 도입되는 것이 더욱 현실성이 높다.

 

기본소득 하나로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일거에 해결될 것이라는 순전한 발상은 위험하다. 하지만 현재 기본소득은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의제이며, 그것을 열망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모아 사회를 바꾸는 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기본소득 정책이 사회수당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것이 보편적 복지제도가 미발달한 한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마냥 기본소득을 ‘정치인들이 표 얻으려고 하는 짓’이라는 식으로 외면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기본소득 담론이 어떤 이들에 의해 어떤 식으로 다뤄지고 있는가이다. 그것이 어떻게 현실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인지 끝까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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