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S] 웹툰 <며느라기>, 답답함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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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 년 전 내가 어렸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 때다. 그 시절 엄마는 밥상에 가장 늦게 앉았다. 밥을 차려야 했기 때문에. 엄마는 밥상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야 했다. 과일을 깎아야 해서. 할아버지의 기침, 할머니의 눈짓, 아빠의 재채기에 엄마는 몇 번이고 부엌과 거실 사이를 오갔다.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그러나 달음질하듯 재빠른 걸음이었다. 바쁜 그녀를 뒤로하고, 식탁은 평온했다. 모두가 눈을 뜨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녀의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했다. 밥상머리의 화제는 사촌의 사촌부터 양당제 정치, 지역감정까지 아울렀지만, 엄마는 어느 것에 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문 엄마가 바랬던 하나의 해방이 있다면, 그것은 시월드로부터였다.

2017년 웹툰 <며느라기>의 2번째 에피소드 “생신 아침” 3화는 내 어릴 적 환장의 밥상 위를 만화로 변주한다. 같이 밥을 먹지만, 시댁 식구(여기에는 남편이 포함된다)만이 알 수 있는 사촌 이야기, 친구 이야기가 계속된다. 주인공 ‘민사린’은 묵묵히 밥을 먹고, 사과를 깎으러 자리를 뜬다 간다. 아. 이때 울리는 휴대폰. 친정엄마다. 남의 집에서 겪는 소외 가운데서 우리 엄마의 연락. 또 엄마는 나를 걱정한다. 시댁에서 더 잘해서, 우리 집 욕 먹이지 말아야지.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갑갑하다. 어떻게 주인공을 향해 외치지 않을 수 있는가. 열심히 하지 말아줘. 환장의 시집살이로 들어가지 말아줘. 거기서 멈춰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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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며느라기>

웹툰은 동명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통해 연재 중이다. 회차마다 시부모, 주인공 ‘며느라기’, 그리고 남편이 등장한다. 6월 28일 기준으로 시어머니의 생신에 관해서 세 편, 시부모님의 결혼기념일에 관해 한 편이 올라와 있다. 이 웹툰에는 외도, 혹은 시어머니의 횡포(정도는 다르지만)같이 ‘사건’이 없다. 되려 이 웹툰이 문제제기 하는 것은 문제 제기에 대한 문제 제기다. 문제 제기의 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 아직까지도 문제가 되지 못한 ‘억압’, 이름붙여지지 않은 문제, 작품 속 캐릭터의 표정과 수용자의 감상 역시 답답함에 가깝다. 그런데, 이 답답함의 역설이란, 참말로 며느리와 시어머니에 대해 말해온 끊임없는 지난한 역사에 있다. 오늘날 시월드라는 신조어가 증명하듯 시집살이란 하나의 화두여 왔지 않는가. 시월드가 문제라고 다들 말하지 않던가. 그래서 수많은 문화적재현물은 이를 재현해오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이리 답답할까. 2017년 웹툰<며느라기>가 던지는 질문이다.

가족이라는 공간에 ‘여자의 적은 여자다’(여적여)와, ‘세대’를 겹치면, 우리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발견한다. 다른 세대와 같은 지정 성별이 만들어내는 이 대립 관계의 재현물은 무수하다. 특히 TV 프로그램을 통해 다뤄져 왔다. 찬밥, 제사, 명절, 친정 부모의 생신, 시집살이 등이 소재였다면, 그 갈등은 ‘여적여’ 혹은 전통 대 현대의 양상을 따랐다. 한쪽이 ‘며늘아 요즘 애들은’ 하고 뱉으면, 다른 쪽은 ‘아니, 어머님 요즘 시대에 누가’라고 답한다. 물론 후자와 같이 답하는 모습은 찾기 힘들다. 때문에 대환장 가족드라마의 핫타임인 지상파 주말 9시, <아버지가 이상해> 이유리(변혜영 역)가 터뜨리는 사이다는 귀중한 예시이지만, 시댁을 향해 자신있게 할말하는  그 발언권이 변호사로서 주인공의 경제력과 전문성에 근거한다는 점은  여전히 이 사이다가 현실에선 불가한-그래서 인기있는 판타지임을 증명한다. 되받아치는 것은 경제-사회적 힘과 무리한듯한 용기를 필요로 하고, 오늘 사회는 쉽게 며느리에게 사회 경제적 힘을 거머쥘 기회나, 용기의 바탕이 될 승리의 경험을 허락하지 않으니 말이다.

이렇든 저렇든 결말은 대부분 봉합이다. 가족으로의 봉합. 기-승-전-가족. 그래도 여전히 소중한 가족이라나 뭐라나, 확대하자면 공동체. 공동체, 공동체, 공동체! 기승전-가족의 서사, 그리고 소재, 갈등 양상, 역할까지 시월드에 대한 재현은 일종의 전형성을 지닌다. 전형성 아래에는 주말 9시 대환장 가족드라마도, 2015년까지 2년 동안 방영되었던 <웰컴 투 시월드>로 대표되는 시부모-남편-며느리 패널 토크쇼도 있다. 여기에 시골로 배경을 옮겨 노모에게 전통, 혹은 구시대를 몇스푼 더 끼얹고, 며느리 앞에 국제결혼을 붙이면 EBS<다문화 고부 열전>로 변한다. 주로 시어머니의 ‘횡포’를 강조하는 이 프로그램과 동시대에 “요즘 세상”을 거론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뽑는 오디션 <며느리 모시기>가 방영 중인 것은 이 기만적인 월드(세계)의 또 다른 아이러니다.

<다문화 고부 열전>에서는 시어머니가 외국인 며느리와 함께 서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웰컴 투 시월드>에서는 프로그램 내부 ‘소통전문가’라는 중재자를 통해, 그러니까 소탈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프로그램은 내부에서 갈등을 해결해버린다. 이것은 ‘그래도 역시 가족뿐’이라는 결말로 눈물을 쏙 빼놓으며 가족공동체 자체와 질서를 재확립하는 주말 9시 드라마의 문법이기도 하다. 소통이라는 해결책은 역설적으로 갈등의 지속됨을 막고, 억압의 경험에 대한 공적 발화에 대한 시간을 주지 않으며,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서로 다른 이들을 묶어낸다. ‘시월드로 오라’고 호소하는 프로그램은 ‘진솔한 소통’을 해결책으로 문제를 다루는 듯 보이지만, 반대편의 진실은 해당 프로그램의 장르가 설명하듯 고부갈등이 우리가 웃고 즐길 수 있는 ‘예능’과 ‘휴머니즘 극’의 테마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고부갈등은 체험되는 일상이자, 동시에 진지하게 발화되지 않는 유머 코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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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며느라기>

반면, 웹툰 <며느라기> 속에서는 그 갈등 내부에서 방관자 남편과 인자한(혹은 조연으로) 시아버지를 주목한다. 그 과정에서 ‘전통과 현대’라는 문제 틀, 그리고 해결책으로의 ‘소통’과는 단절한다. ‘이것’이 문제라며 서로 대립하는 시어머니-며느리의 갈등 뒤에서, 끊임없이 ‘그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시아버지-남편의 구도. ‘이것’과 ‘저것’의 거리감. ‘결혼기념일’편 6번째 에피소드 속에서 아내와 남편 간 사이의 의사소통 불가능성이 보여주는 문제가 그렇다. “나(며느리) 출장 가면 새신랑이 밥 굶어서 어쩌냐고 하셔서 깜짝 놀랐어”라는 아내와 무심한 남편의 “신경 쓰지 마” 가 보여주는 대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전달되지 못하는 억압의 경험.  시월드는 분명 문제다, 허나 시월드가 진정 문제된적 있던가. 가족이라는 의사소통의 불가능성 영역. 고통에 대한 아무 말 대잔치 속에서 속 편한 자와 답답한 얼굴은 누구에게 배분되는가. 주인공 ‘민사린’의 답답한 표정은 시월드에 대한 이야기와 소통의 홍수가, 어떤 효과를 내고 있는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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