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S] 어제 그 ‘데일리 메이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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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우린 서로를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물론 그게 교차된 성차별이라는 것만 빼면 더 멀쩡한 선망이 되었겠지만 말이다. 그건 화장을 하지 않은 내가, 화장을 한 남자인 친구와 나란히 앉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대게 화두는 친구가 그린 아이라인에 맞춰지고 이에 나의 맨얼굴은 주로 그 얇은 선을 모욕하기 위한 대비 효과 정도로 쓰인다. 성별을 바꾸며 시작되는 그 놀라운 훈계는 “요즘은 남자도 꾸며야 해”라며 말끝을 흐린 친구의 대답으로 마무리된다. 이는 앞에 앉은 안 ‘꾸민’ 남자와 함께 기본전제조차 이행하지 않은 여자인 내게도 완벽한 죄를 씌우는 재주를 가졌다.

 
 자의 반 타의 반 어쨌든 지금 화장은 내게 ‘진짜’ 즐거운 과정이자 표현 중 하나이다. 여전히 그렇지만 동시에 세상 가장 귀찮은 일이기도 한데 문제는 그럼에도 반드시 해야 하던 의무라는 모순이 과거의 나를 항상 어렵게 했다. 여기서 타의가 만들어낸 의무는 앞선 친구와의 경험과 같은 선상에 있다. 내가 화장을 하지 않는 건 그 자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신호로 여겨졌고 그건 종종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 같았다. 모든 자리가 그렇진 않았지만 내가 나이가 어리고 가깝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일수록 그런 상황은 더 자주 반복되었다. 이 기억들은 스스로 화장을 타인에 대한 일종의 ‘매너’를 지키는 방법으로 만들었고 매일 습관처럼 거울 앞에 서 얼굴에 붓을 가져다 댔다.

 
 기계처럼 움직인 손이 검은색 립스틱을 집는 순간은 내가 유일하게 화장을 ‘생각’할 때였다. 그러나 이 역시 거울에 비친 나 이외의 시선들에 의해 금세 지워지고 마는데 다양한 경로로 주입된 그 시선이라는 건 보통 여자인 내가 ‘여성스러운’ 화장을 했는가가 기준이다. 그건 정말이지 화장의 사소한 과정까지 모두 관여하는데 눈썹 모양부터 입술 색까지 사회가 정해놓은 성별의 미덕과 함께한다. ‘데일리 메이크업’ 같이 매일 할 수 있다는 상대적으로 ‘정상’이라 분류되는 화장법이 특히 인기가 있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이 화장의 대체적인 특징인 강해 보이지 않는 눈매와 ‘여리여리’하다는 발색들 사이엔 일상 속 여성은 뭐든지 이해해줄 것 같은 눈을 가진, 도움이 필요한 존재처럼 여려 보여야 한다는 규칙이 숨어 있다.

 
 내 경우엔 그렇다. 페미니즘은 여러 의미로 해방의 기회와 함께 내 삶의 크고 작은 부분들을 의식적으로 불편해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부당해서 불편한 것들을 찾아 중단했고 비록 작은 시도들로 가득하지만 결국 그것이 내 삶에서 소멸해야 한다는 궁극적인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부당하지만 동시에 개인적인 선택의 영역에 함께 놓여있는 것들이 분명 존재하는데 나에겐 ‘화장’이 그렇다. 분명 여성에 외적 억압으로써 여전히 큰 역할을 하지만 성별에 지정된 억압에서 자유롭다면, 이 역시 온전히 자의적인 선택으로도 무방하다. 그러나 말 그대로 여자인 내가 화장을 하는 게 너무 당연했었기에 어떻게 그 억압과 멀어져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사회의 미적 기준에 가까워진다는 안정감과 상대에 대한 감정을 외적으로 아주 간단히 표현하는 데 지나치게 충실했던 과거는 성 평등이란 ‘만국 인류 공동목표’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해서 어쩐지 화장대에 앉을 때마다 무언가 배신하고 있다는 자책감은 계속 커지기만 했다.

 
 뒤늦게 서야 그 불편한 정체를 위한 타협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타인의 시선과 화장에 대한 단순한 흥미 사이, 타협은 결국 끝이 없다는 걸 깨달았고 그래서 그냥 타인의 시선을 저울에서 완전히 빼버렸다. 화장대에 앉고 싶으면 앉고 그게 아니라면 애초에 그만두기로 했다. 이제 더 이상 이상하거나 지나친 화장은 없다. 여성스럽기 위한 색깔도 여성스럽지 않은 색 역시 없다. 검은색 입술을 바른 내 얼굴이 내가 맘에 들고 그걸로 그만일 때 페미니즘 이론과 나란히 놓인 화장품에 더 이상 죄책감을 갖지 않을 수 있었다. 여전히 마주하는 ‘신경 좀 쓰라’는 수많은 지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알아차리는 건 생각보다 훨씬 재미에 가깝다.

 
 한 가지 정답은 없고 어쩌면 너무 당연한 사실처럼 보일 수도 있다. 간단해 보였지만 진짜 내 선택이 되기까지도 한쪽 손을 넘는 해가 걸렸다. 이제야 진짜 즐거움이 된 화장을 하고 싶지 않을 때 하지 않을 수 있어서 늦은 약속에 사과할 필요도 없어졌다. 함께 있는 자리 안 누군가의 맨얼굴이나 반듯한 눈썹이 불편하다면 당신은 이미 내 앞에 앉은 것만으로 불편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사진 출처 : http://www.cntraveler.com/story/should-you-wear-makeup-on-a-pl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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