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l 자유인문캠프 기획단 단오

 

9월 25일 중앙대학교 100주년 기념관(310관)에서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저자 채효정 강사가 북토크를 진행했다.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인 강의실에서 얼굴을 몰라도 친숙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아마 대학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공유했기 때문이었다. 대학의 주인에 대한 물음은 중앙대학교의 현실과 직결된다. 특히 자유인문캠프가 대여한 강의실을 강의 하루 전에 취소한 사건은 이번 북토크를 주최한 계기였다. 

대학이 학생의 공간이 아니라 기업의 이익을 위한 공간이 되어가는 문제는 대학가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경희대가 공들여 빚은 교양 대학, 후마니타스칼리지의 해고 강사인 채효정 강사는 2015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메일로 일괄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후 대학의 기업화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며 경희대의 부당한 일괄 해고에 반대해 8주간 경희대 잔디밭 앞마당에서 강연을 열었다.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빼앗긴 자들을 위한 탈환의 정치학‘은 8주간의 강연 내용을 담은 책으로 학교를 빼앗긴 이들의 고민과 의문을 담고 있다. 이번 북토크에서도 대학에 대한 학생들의 의문에 답하며 네 가지 쟁점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1. 대학 공간의 사유화

 대학은 공간을 사유화한다. 강사는 경희대의 제도를 예시로 들면서 제도를 통해 구성원들이 학교를 사적 공간이라고 내면화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학교에 등록된 정식 부서만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제도를 만들고 청소의 어려움과 도난의 가능성을 이유로 드는 식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규칙에 스스로가 순응한다. 학생들의 활동은 효과적으로 차단되고, 대학공간과 학생의 거리감은 커진다. 이렇게 행정적인 부분에 책임을 전가하면서 자연스럽게 학생 점유 공간의 비율은 하락된다. 영국에서 농민들을 쫓아냈던 인클로저 운동이 대학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2. 대학을 고립시키는 담론을 쏟아내는 대학

학생 중심제도, 교육 혁신 등을 명목으로 사유화를 정당화시키는 이론을 대학에서 만들어내고 있다. 실제로 대학들은 정치세력과 힘의 관계에서 갈등관리와 협치를 위한 ‘거버넌스‘라는 개념을 등장시켰다. 거버넌스는 각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 회의 내에서 동일한 발언권을 갖는 민주적 기구로 여겨지지만 실제로 거버넌스를 소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주체는 대학 본부이고 결국 본부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소집할 가능성이 커진다. 과거에는 학생총회를 통해 과에서부터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대학 내 TF(Task Force)는 학교가 선정한 학내 구성원의 대표가 들어간다. TF에서는 소집권력을 가진 본부의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이 커짐과 동시에 문제가 생겼을 때  대표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최근 중앙대에서 논란이 된 QS평가 진상조사위의 소집권은 본부의 권한이었다. 결국, 잘못된 결과는 구성원들이 떠안게 되고 TF의 구성원들은 대학사회에서 분리되어간다.

3. 담론을 빼앗긴 학생들

또한 진보적인 단어는 영리적인 담론으로 전치되고 있다. 미래, 창조, 혁신 등의 수사는 자본의 언어로 변모했다. 대표적으로 경희대의 경희 ‘미래창조 스쿨’과 중앙대를 인수한 두산의 슬로건인 ‘사람이 미래다’를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말하는 미래는 대체 무엇일까? 과거에는 현재를 비판하며 발전하는 진보 담론이 미래였다. 그러나 현재의 미래는 자본이 원하는 미래다. 대학에서는 미래에 올 지식기반 4차 산업이 엄청난 부를 창출할 것이라고 말하며, 뒤처지면 안 된다고 겁주지만 창출된 부는 자본이 독점하게 되고 오히려 지식의 계급화를 심화시킨다.

창조와 혁신도 마찬가지다. 빼앗긴 담론들은 갈등은 묻어두게 하고, 과거를 이야기하면 구시대적이고 뒤처진 사람으로 취급하는 기재가 된다. 학생들에게서 옳은 방향을 고민할 여유를 빼앗아 무조건 새로운 것을 따르게 한다. 그리고 그 새로운 것, 미래 산업들은 학생들을 노동에서 해방하는 역할이 아니라 주체성을 빼앗는 역할을 한다. 앞서 언급한 담론을 통해 학생들의 방향성을 훔쳐가는 역할을 대학이 앞서서 시행하고 있다. 이처럼 대학 내에서 자본가가 원하는, 친자본적 담론들을 생산해 낸다. 따라서 학생들은 빼앗긴 언어를 되찾아야 한다. 학생이 주체가 되어 담론을 형성하고 과거의 잘못들을 성찰하며 미래를 설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담론, 즉 이데올로기 투쟁이 필수적이다.

4. 대학 구성원이 없는 소유구조

대학의 존재를 유지하는 구성원은 누구일까? 대학은 연구와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연구를 진행하고 가르치는 교수와 가르침을 받고 연구에 기여하는 학생은 반드시 필요하다. 또 학교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식당, 청소, 전기 등 건물들을 관리하는 필수 노동자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대학의 존재 유지를 위해 이사회와 이사장, 총장 등은 이들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현재 대학은 대학에 없어도 되는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구조다. 실제로 학교의 일을 결정하는 이사회는 전혀 학교와 무관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학교의 일은 학생의 손을 떠나게 된다. 대학의 주인은 첫 번째로, 앞서 언급했던 교수와 학생, 학교의 필수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대학 구성원이어야한다. 그리고 대학은 좁게는 지역의, 넓게는 국민의 공공자원이 되어야 한다. 대학이 엄청난 공적 자원을 지원받으면서 사적 자본처럼 여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학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학교 구성원이 아니니까 의사결정의 책임은 학교 내의 사람들, 특히 학생이 지게 된다. 과거에는 학생들의 정치 세력이 강력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사회를 견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학생 사회는 사실상 무력해졌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지금 대학을 바꾸기 위한 직접적 방법은 없을까요? 해결책에 대한 강사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라는 질문에 답하며 채효정 강사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우리의 방향성

 애초에 대학이 생길 때부터 대학은 이상적인 지식의 배움터가 아니었다. 부르주아들의 특권을 재생산하는 공간으로 큰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고 지금도 특권 계급의 대물림을 손쉽게 만들어주는 측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진정한 학문의 전당, 구성원을 위한 공간이라는 대학의 이상적 모델을 가지는 것은 목표 지점을 분명히 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대학은 사적 재산이 아니라 지역사회, 시민사회가 개입하는 공공재로서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 대학이 배움을 이어나가는 공간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되찾고 지역 사회의 도움을 얻는 것은 학생들의 공간 탈환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지역 사회뿐만 아니라 대학 내에서도 교수, 학교 노조가 학생의 편에 서서 학교를 구성원들의 것으로 탈환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학생들은 학교 내에서 고립된 상태다. 학교 밖에서는 지역 사회의 합의를 얻지 못해서 제도 수정의 싸움도 어려움에 부닥쳐 있다.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결국 답은 학생들의 실천 활동의 회복이다.

최근 대학은 폭군과 같은 총장의 폭정보다는 규칙을 통해 학생들을 규율한다. 가시적이지 않은 규칙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반감을 갖기 어려워지고 이를 내면화하기 쉽다. 이때 필요한 것이 ‘상상력을 가진 직접행동’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채효정 강사는 일괄 해고에 대한 반발로 8주간 잔디밭에서 강의를 진행했다. 시위의 장소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던 학교 건물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처음엔 무관심할거라 여겼지만 학생들도 점차 참여했다. 그리고 학생들은 잔디밭과 건물 앞에서 학교에 저항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결국 그 공간의 성격을 바꿔냈다. 행동을 먼저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작은 행동이라도 대학의 주인은 학교 구성원과 시민사회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이라면 무엇이라도 좋다. 규칙으로만 여겼던 대학의 전략들에 균열을 주자.

질문에 대한 답으로 세 시간여의 강연을 마무리했다. 사유화된 대학에서 밀려나고, 담론을 빼앗기고, 연대의 고리는 약해져 고립된 우리의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불분명하게 여기던 문제를 구체화 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을 탈환하려는 시도와 행동들이 대학을 대학답게 만드는 초석이 된다는 것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강연의 마무리 말씀을 적으며 글도 이만 마친다.

“실패는 두려운 것이 아니다. 실패는 도전했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내가 진짜로 무서운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실패조차 하지 않고 사라지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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