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X 페미니즘] 중앙대에 ‘반성폭력 회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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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은 2005년 서울캠퍼스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통과된 회칙입니다. 하지만 12년이 지난 지금, 어디에서도 이 회칙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총학생회 홈페이지 ‘중대중심’에서도, 전학대회마다 나눠주는 자료집에서도 말입니다. 찾을 수 없으니, 없다고 생각해도 될까 싶지만, 폐지 절차를 밟은 적이 없으니 지금까지 줄곧 존재해온 셈입니다.

221명 참석으로 정족 수를 훌쩍 넘겨 통과한 이 회칙, 누락된 게 이상합니다. 관련 보도도 당시 전학대회와 관련된 중대신문의 기사와 여성주의 교지 <녹지>의 기획 뿐입니다. 회칙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 다룬 것은 그나마 <녹지>가 유일합니다. 회칙 전문도 온라인 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서울캠 총여학생회의 홈페이지( www.cauwom.net)가 사라지고, 총학생회 홈페이지가 개편되면서 당시 업로드 되었던 자료는 모두 유실되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총학생회 홈페이지 <중대중심>은 2017년 7월 이후 자료만 존재합니다.

회칙의 행방은 성평등위원회에 보관되어 있던 2005년 전학대회 자료집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10개의 조항으로 구성된 회칙은 대부분은 성폭력 사건 해결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회칙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선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 알아야합니다. 시작은 2003년, 기숙사 야유회에서 사건이 발생합니다. 당시 기숙사에는 학생들로 구성된 자치위원회가 있었고, 정기적으로 꼭 참여해야 하는 야유회도 존재했는데요. 2003년 야유회에서는 군복을 입은 남학생들이 얼차려를 주도하고, 남녀의 신체접촉이 필요한 게임을 강요했습니다. 여기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의견도 받아들이지 않았구요.

이후 몇몇 학생은 이를 서울캠 17대 총여학생회에 신고합니다. 총여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뒤 이 사건을 ‘환경적 성폭력’ 사건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신고자와 총여는 큰 비난을 받게 됩니다. 심지어 신고자의 신상이 알려져 기숙사 방으로 욕설을 퍼붓는 전화가 오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건해결이 더 어려웠던 것은 학생사회 내에 정당성을 얻은 반성폭력 자치규약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숙사 야유회 사건을 계기로 총여학생회는 반성폭력 학생회칙을 만들어 2003년 2학기 전학대회 안건으로 상정합니다. 하지만 2년간 전학대회는 정족수 부족으로 성사되지 않았고, 결국 2005년에서야 수정을 거친 회칙은 통과됩니다.

 애초에 반성폭력 회칙이 제정된 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학생 자치활동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처리할 공동체 내 규칙은 기본 조건입니다. 축제, 주점, 농활, 엠티나 동아리, 과 소모임 까지 학생자치는 중앙대 학생들의 일상을 구성합니다. 활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도, 자격 상으로 총학생회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무관할 수 없습니다. 자치활동은 개별 공동체 및 학생사회의 문화를 구성하고 우리는 이 문화에 의해 영향 받고 있습니다.

 현재 중앙대 학칙에는 ‘성희롱. 성폭력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이 존재합니다. 회칙이 학생회의 규칙이라면, 학칙은 학교 전체의 규칙입니다. 현재의 학칙은 1999년부터 이어져온 학생과 구성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관련 기사) 학칙에 따라 중앙대학교 모든 구성원은 인권센터에 사건을 신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책위를 구성해 필요할 경우 가해자에게 징계처분이 내려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권센터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마법의 지팡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인권센터는 본부의 행정기관이고 그 역할과 범위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타학교에서 수차례 발생해 이슈가 된 카톡성폭력 사건을 떠올려봅시다. 남자 동기 단체 채팅방이나 학과 소모임 채팅방에서 특정 여학생, 혹은 전체 여학생을 대상으로 오간 성희롱적 발언이 드러나 난리가 난 경우가 많죠. 만약 이 사건의 피해자가 인권센터에 신고한다면, 접수 받은 센터는 필요에 따라 대책위 구성을 요청하고, 대책위 위원들의 결정으로 해당 발언을 한 몇몇 학생에게 징계가 내려질 것입니다. 그 수위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학기 근신 등의 처분이 발생하겠지요.

그런데 찝찝함이 남습니다. 이렇게 이 사건이 해결되었다! 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정말 몇 명의 가해자에게 그 모든 책임이 다 있고, 그 사람들만 처벌 받으면 이 문제가 끝나는 걸까요? 평소에 “00이는 먹고 버린다” “00이 가슴 뽕좀 봐라” 같은 말이 술을 먹었어도, 장난이어도, 상대가 없어도 해서는 안된다는 합의가 있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요. ‘해당 단체방, 특정인이 한, 그 발언’의 문제는 그 단톡을 둘러싼 사회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자 이제 발언을 한 사람은 처벌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가 속한 사회의 문제가 남았습니다. 단톡방에서, 술자리에서 성희롱적 발언이 공공연하게 이뤄졌다는 사실이 공론화된 이후에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얼굴을 마주할 수 없습니다. 공동체 내에서 사건에 대해 논의하고, 더 나아진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결국 피해를 호소한 사람이 떠나고 문제는 다시 반복될 것입니다. 이 부분은 인권센터가 처리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생사회의 문제는 학생사회에서 해결해야합니다. 다른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성폭력 학생회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고려대 법학과, 서울대 사회과학대에는 반성폭력 회칙이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서울대의 경우1998년 제정돼, 2002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개정되기도 했습니다. 개정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자치규약이 전수되고, 또 논쟁한다는 점만 봐도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새롭게 당선된 ‘온 총학생회’는 선거 전 공청회에서 반성폭력 학생회칙에 대해 “존재를 다시 부활시키는 것에 대해서 동의한다”고 말했습니다. 유실된 회칙을 복원하고, 개정을 위한 논의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학생사회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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