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나에 관한, 너를 향한 자치

익숙한 세계를 벗어나 타자의 세계로 들어갔을 때, 나의 행위와 일상의 리듬에 변화를 주었을 때, 우리는 더 많이 살고 더 크게 움직일 날개를 달 수 있을 것이다. | 짱큰콩 꽤 많은 것들을 유예하고 걸어왔을 당신과 나는 지금 이렇게 우연히, 불쑥 마주쳐버렸다. 새로 지은 건물과, 새 건물을 위해 허물어져야하는 건물들로 이뤄진 이곳의 이름은 ‘대학’이며, 그 건물을 아직... Read More

[페미니즘S] 더 킹, ‘남성’ 국가의 노래

팬트하우스, 황금빛 샴페인이 찰랑이는 잔, 스테이크, 그리고 ‘여자’. 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말하지 않는 육체들로 출현한다.   조윤  박태수는 ‘양아치였던 아버지’ 밑에서 양아치처럼 살아왔다. 무서울 것 없어 보였던 아버지가 검사에게 무릎을 꿇고 ‘살려 달라’ 애원하는 모습을 보며, 권력을 가진 검사가 되겠노라 다짐한다. 박태수는 검사가 되지만, 검사의 세계는 99%의 “정상적인” 사람들과 1%의 권력자로 나누어져 있다는... Read More

[페미니즘S] 당신은 나의 공간을 ‘보고’ 있고, 나는 그 공간에 ‘살고’ 있다

나는 기억한다. 친밀한 관계에서 느꼈던 그 공포, 분노, 두려움, 무력함, 울분을. 그리고 실감한다. 파트너의 지정성별(그리고/혹은 젠더 표현)에 따라 나와 ‘우리’의 ‘안전’이 얼마나 쉽게 달라졌는지를. 이게, ‘여성’으로서 내가 겪은, 자취방이다. | 마리안 아마 21살 때부터는 늘 애인과 함께 살았던 것 같다. 한 때 ‘여자’애인과 같이 살던 자취방은 대문 하나, 유리문 하나, 계단 하나를 지나야 현관문이 나오는... Read More

[페미니즘S] 나의 빈곤, 그리고 페미니즘

무지와 가해의 조건을 이해하는 것과 그것들을 정당화하는 것은 구분되어야만 한다. ‘가난해서 몰랐다’ 혹은 ‘못 배워서 모를 수밖에 없다’는 말은 현실의 조건을 지적하고 있기도 하지만, ‘빈곤층’을 타자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말들이기도 하다. 무지를 빈곤으로 정당화하는 논리는 빈곤을 무지와 연결 짓고 빈곤층을 혐오하고 타자화하는 논리의 양면이다.(‘못 배우고 가난하니 모를 수도 있다’가 ‘가난해서 저렇게 몰라’라는 말의 양면인 것처럼) 그렇기에... Read More

[페미니즘S] 그럼에도 이퀄리즘이 아닌, 페미니즘이어야 하는 이유

다른 누구의 지적 때문이 아니라, 운동과 이론, 삶의 당사자들이 그 문제를 자각했다. | 해경   ‘평등을 위한다면서 왜 평등주의(이퀄리즘)가 아니라, 여성주의(페미니즘)인가?’ 이는 페미니즘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말들 중 하나다. 성평등을 위한 운동이 ‘여성주의’로 불리는 것에 대해 어떤 이들은 의아함을, 더 많은 이들은 적대감을 드러낸다. 누군가는 ‘이퀄리즘’이라는 겉으로 보기엔 아주 매끈하고... Read More